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사랑을 싣고' 장미화 "결혼→이혼, 양육권 위해 100억 원 빚 떠안았다" [전일야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엑스포츠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엑스포츠뉴스 이송희 기자] 가수 장미화가 자신의 슬픈 시절을 회상했다.

27일 방송된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는 가수 장미화가 등장, 함께 '톱 싱어 대회'에 출전했던 백현주 언니를 찾고 싶다고 전했다.

당시 '아마추어 톱 싱어대회'에서 백현주와 만났다는 장미화. 그는 당시 1등을 받고 데뷔를 했고 백현주 언니가 2위를 했다"고 말했다.

신중현에게 스카우트 된 장미화는 1966년 '레이디 버드' 여성 밴드를 결성한 후, 해외 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백현주와 연락이 끊어졌다고.

7자매 중 막내딸이었다는 장미화. 하지만 그의 언니들은 모두 첫 돌 무렵에 세상을 떠났다. 장미화는 "호적에 빨간 줄 6개가 있다. 1940년대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때 언니들이 계속 죽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죽을 뻔한 걸 어머니가 업고 가서 주사를 맞았다. 그래서 저만 살아남았다"고 고백했다.

그런가 하면, 6.25 전쟁으로 이별했던 아버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장미화는 "우리 아버지가 명동에서 금은방을 운영했다. 그때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했는데 5살 때 6.25 전쟁이 발생해서 이별을 해야했다. 언제나 아버지가 그리웠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외삼촌은 장미화를 위해 아버지를 찾아줬다. 장미화는 "아버지와 다시 살고 싶어서 갔는데, 아버지가 가정이 있더라. 무뚝뚝한 아버지를 보고 내가 상처를 받았다. '괜히 왔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울먹거렸다.
엑스포츠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레이디 버드'로 활동하던 장미화는 197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973년 솔로데뷔 전까지 밤무대에 올라야 했다.

이를 떠올리며 장미화는 "너무 싫더라. 돈 때문에 노래를 하는 그 자체가 싫었다. 그래서 현미 언니에게도 하소연 하기도 했다. 결국 1978년에 결혼을 하고 은퇴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혼 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3년은 재미있었는데 그 이후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큰 빚을 졌다. 그게 나를 불편하게 했다. '차라리 결혼하지 말걸'하고 후회를 했고, 이후 이혼을 했다. 하지만 아이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100억 원의 빚을 떠안고 결국 다시 밤업소를 나가야 했다"고 고백한 장미화.

밤무대가 싫어서 이를 떠났던 장미화는 생계를 위해 결국 다시 무대에 올라야 했다. 하루에 12번까지 노래를 했다는 장미화는 "저녁 6시 30분 캬바레를 시작해서 스탠드 바, 나이트 클럽도 돌았다. 집에 오면 새벽 4시였다. 그땐 너무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자존심이라는 게 없어지더라. 벌어서 갚아야 하고, 아픈 아이와 어린 아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앞만 보고 뛰었다"고 덧붙였다.

한펴 이날 장미화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백현주 언니와 55년 만에 재회했다.

winter@xportsnews.com / 사진 = KBS 1TV 방송화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