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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악의 꽃’ 서현우 “어르신 전문이었는데 20㎏ 빼고 첫 멜로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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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년 만에 첫 주연 김무진 기자 역

서스펜스물에서 단짠 매력으로 숨통 틔워

“대본 파는 학구파서 현장파로 변신 노력,

신체 변화 따라 연기 톤도 달라져 재밌어”

중앙일보

드라마 ‘악의 꽃’으로 첫 주연에 도전한 배우 서현우. 김무진 역할에 대해 ’진중함 속에 유머러스함이 있고, 카멜레온처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끌렸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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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연쇄살인 현장을 들쑤시고 다니다 얻어터질 때면 짠내가 풀풀 나다가도,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과 재회해 설렘을 감추지 못할 때면 단내가 솔솔 난다. 23일 종영한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극본 유정희, 연출 김철규)에서 김무진 기자로 열연한 배우 서현우(37) 얘기다. 2010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으로 데뷔한 지 10년 만에 드라마 첫 주연을 맡은 그는 서스펜스와 멜로가 결합한 ‘악의 꽃’에서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이준기ㆍ문채원ㆍ장희진 등 또래 배우들 사이에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뽐냈다.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서현우는 “첫 주연작이라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역할이라 흥미롭게 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2018년 한햇동안 ‘나의 아저씨’ 등 드라마 3편, ‘독전’ 등 영화 9편에 출연했던 그는 “쉴 새 없이 오디션을 보다가 먼저 연락이 오기 시작하니 정말 울컥했다”고 덧붙였다. “정말 만감이 교차했죠. 멜로도 처음이고, 또래랑 연기하는 것도 처음이거든요. 20대에도 학생보다 선생님 등 나이보다 많은 역할을 주로 했는데 모든 게 새로웠어요. 제 나이대 역할을 하다 보니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했고요.”



“오디션 보다가 먼저 연락 오니까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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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도현수(이준기)를 취재하다 납치돼 분노하는 모습.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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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재회한 첫사랑 도해수(장희진)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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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진 대본을 심하게 파고드는 스타일이었지만, 이번에는 현장에서 답을 찾는 데 집중했다. 주간지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만나는 사람에 따라 성격이나 대처도 유연하게 달라질 것 같았다”고. “원래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면 증조부가 누구인지까지 세세하게 전사를 설정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역할이 커질수록 현장에서 캐릭터의 질감이 바뀌더라고요. 연극이나 뮤지컬은 이미 합을 맞춰본 상태에서 공연에 들어가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현장에서 바뀌는 부분도 많고요. 최민식 선배님이 특강에서 현장에 가면 내가 앉을 자리, 기댈 테이블, 마실 음료수 등 주변 소품을 점검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신 걸 보고 저도 자꾸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게 됐어요.”

14년간 사랑한 남편의 정체를 의심해야 하는 차지원 형사(문채원), 그 눈을 피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도현수(이준기)와 자신의 죄를 뒤집어쓴 동생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도해수(장희진) 남매 사이에서 숨통을 트이게 해준 장면들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인신매매조직에 붙잡혔을 때도 그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켜서 신고를 부탁하는 등 기지를 발휘했고, 연이은 특종으로 마련된 회식에 참여해서는 ‘찐이야’를 열창하며 긴장을 이완시켰다. 도해수 대신 가방을 살포시 끌어안는 등 깨알같이 웃음을 자아내는 애드리브를 두고 소속사 풍경엔터테인먼트 송종선 대표는 “연극 ‘햄릿’(2012)에서 1인 5역을 한 적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참 바지런하다.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바지런히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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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보다 많은 역할을 맡아온 서현우는 ’외모나 목소리도 있지만 믿음을 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며 ’이번 작품을 통해 나도 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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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반장을 도맡아온 학구파 기질과도 무관하지 않다. 명문으로 손꼽히는 한일고 재학 시절 연극반 활동을 시작한 그는 대학 입학 1년 만에 공부를 때려치우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진학했다. 김동욱ㆍ이희준ㆍ정수영 등 동기들 사이에서도 ‘서 박사’라 불렸다. “연극반 담당 선생님이 대학원을 다니고 계셔서 한예종을 알게 됐는데 거기서도 반장을 했어요. 다들 자유로운 영혼이라 구속 당하는 걸 싫어했지만 저는 항상 맨 앞줄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거든요. 연기 수업하는 데 필기하는 사람 처음 본다고 하더니 나중엔 제 노트를 찾더라고요. 제 연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코멘트까지 전부 적혀 있으니까 도움이 됐던 거죠.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공부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배우에 관한 역설』을 꼽은 그는 연기에 있어서도 ‘감정’보다 ‘행위’를 중시하는 편이다. 영화 ‘그놈이다’(2015)에서 강력계 형사 역할을 위해 20kg 증량했던 그는 지난해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에서 완벽주의자 역할을 위해 12kg 감량, 이번 ‘악의 꽃’을 앞두고 8kg을 추가 감량해 예전 몸을 되찾았다. “작품에 대한 절실함도 있었지만 신체가 주는 한계를 깨부수고 싶었”단다. “몸에 따라 연기 톤도 달라지더라고요. 살이 찌면 사람이 좀 풀어지면서 편안해지고, 살이 빠지면 선이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아픈 연기를 할 때도 다리 한쪽을 못 쓴다고 설정하면 신체가 반응하고 표현도 정확해지더라고요.”



“전두환 분장 하니 주위서도 어려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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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전두혁 역할을 맡은 서현우. [사진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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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송 과장 역할을 맡은 서현우. [사진 tvN]


올 초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전두혁 캐릭터를 위해 삭발을 감행했던 그는 “분장 전에는 편하게 대해주던 스태프들도 분장하고 나오면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당시 이병헌ㆍ이성민ㆍ곽도원 등과 호흡을 맞춘 그는 “촬영 전까지는 너무 편안하게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감독님 사인이 떨어지면 보이지 않는 문으로 빨려 들어가듯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짜릿했다”며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고 공부도 많이 된 소중한 경험”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 역시 인물이다. 16부작 드라마 중 4부에 해당하는 대본을 보고 작품 전체를 판단할 순 없지만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를 촬영할 때는 매일 안전진단팀으로 출근하는 기분이었어요. 송 과장 책상 밑에 제 슬리퍼도 있고 직접 컴퓨터를 켜고 업무 파일을 열면서 진짜 직장 같은 분위기였거든요. 사람들이 드라마 같은 순간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일상이 더 드라마 같다고 생각해요. 장례식장에 가면 바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감정이 천천히 차오르는 게 더 슬픈 것처럼 배우가 먼저 다 느껴버리는 게 아니라 시청자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거죠. 그렇게 일상 속에 있는 것 같은 배우, 배우 같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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