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첫 대규모 야외 대중음악축제…자가진단 '음성' 떠야 입장
스탠딩존 폐지하고 거리두기 좌석제로…음식물 섭취도 금지
좌석은 한 칸 띄우고 |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한 줄이 나왔는데 음성인가요?", "10분이 지났는데도 줄이 나오지 않아요."
야외 대중음악 축제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1'(이하 뷰민라)이 열린 지난 26일 오후 2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 돔(체조경기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속 항원 검사를 받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주최사 민트페이퍼가 입장 전 모든 관객이 코로나19 신속 항원 검사를 받도록 해서다.
코로나19 항원 검사받는 관객들 |
◇ 체조경기장, 대형 '방역센터'로…전 관객 코로나19 자가 진단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못한 '뷰민라'가 촘촘하게 짠 방역 수칙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오프라인' 대중음악 축제다. 정부가 최근 대중음악공연 관객 제한을 100명 미만에서 4천 명까지 늘려줌에 따라 어렵사리 개최가 가능하게 됐다.
올해 '뷰민라'는 감염 예방을 위해 스탠딩 존을 폐지하고 전 객석을 거리두기 좌석으로 바꿨다.
공연이 열리는 88잔디마당 근처의 체조경기장은 거대한 '방역 센터'로 변신했다. 입구에서는 열 측정, QR코드 체크인, 신분증과 티켓 구매자 대조 등이 이뤄졌고 내부에는 100여 개의 칸막이 좌석을 설치해 신속 항원 검사를 진행했다.
코로나19 신속 항원 검사하는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1' 관객 |
기자도 자가 진단 키트와 사용법이 적힌 매뉴얼을 받았다. 막대기에 침을 뱉고 이를 키트에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1~2분이 지나자 보라색 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0분. 기자를 포함해 검사를 받은 관객들은 혹시나 하는 긴장된 마음으로 체조경기장 좌석에 앉아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선명한 보라색 한 줄만 나왔다. 음성이다.
대학생 이모(26) 씨는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 일부러 공연 시작 1시간 30분 전에 왔지만 의외로 금방 끝났다"며 "정확도가 떨어진다고는 해도 이렇게라도 음성이 확인되니 안심된다"고 말했다.
KSPO 돔, 오늘은 '방역센터'로 |
◇ 음성 확인되면 '검역 완료' 손목 밴드…공연장서도 '거리 두기' 강조
자가 진단 키트로 코로나19 음성이 확인된 관객들의 손목에는 '검역 완료'라는 문구가 적힌 하얀색 밴드가 감겼다. 이 밴드가 있어야만 공연 장소에 들어갈 수 있다.
진행요원들은 이곳에서도 "1m 거리 두기를 해달라"고 외쳤다. 동료에게 무전으로 "거리 두기를 인솔할 요원이 더 필요하다"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오후 3시, 입장이 시작됐다. 관객들은 '검역 완료' 밴드와 입장 밴드를 확인시켜주기 위해 머리 위로 번쩍 손을 들고 차례로 입구로 들어갔다.
입장 줄도 1m 두기 |
88잔디마당으로 들어서자 공연 무대와 일반 좌석에 설치된 플라스틱 의자, '피크닉 존'에 깔린 돗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의자들은 서로 케이블 타이로 묶여 관객이 임의로 좌석을 옮길 수 없게 했다.
축제의 묘미라 할 수 있는 음식물 섭취는 금지됐다. 페트병에 담긴 물과 음료만 현장에서 마실 수 있었고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은 '푸드 존'에서만 가능했다.
가족들과 피크닉 존에 앉아 있던 김모(32) 씨는 "거의 매년 '뷰민라'를 왔는데 음식을 안 싸서 오기는 올해가 처음"이라며 "축제는 먹는 재미가 절반이라 조금은 아쉽지만 오랜만에 공연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그게 어디냐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1' 무대에 오른 가수 이하이와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 |
◇ "'내적 신남' 즐겨보자"…함성은 참고 제자리서 율동하고
"우리가 환호나 '떼창'은 마음껏 할 수 없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여러 수단이 있잖아요. 지금 기분 좋은 사람들 머리 위로 손!"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에 오른 밴드 솔루션스 보컬 박솔이 이렇게 외치자 객석에서는 관객들의 양팔이 번쩍 올라갔다.
코로나19 시대 열리는 축제는 공연 모습 역시 이전과 달랐다. 약 6시간 이어진 공연에서 떼창, 함성, 기립 세 가지는 엄격히 금지됐다. 간혹 돌발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관객은 진행요원이 곧바로 다가와 제지했다.
인터미션 때는 진행요원들이 관객이 이동하는 길목에 서서 방역 수칙을 준수할 것을 상기시켰다.
출연진들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동안 관객에게 말로 하는 대답 대신 동작을 하게 했다. 이하이는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게 했고 '팁 토'(Tip Toe), '나는 달라' 무대에서는 손가락 동작이나 양팔을 움직이는 율동을 유도했다.
이하이는 "이런 형태의 공연이 낯설고 어색하니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우리 함께 '내적 신남'을 즐겨보자"고 말해 분위기를 후끈 달아 올렸다.
함성과 환호는 없었지만, 박수 소리는 그 어느 공연보다 크게 울려 퍼졌다. 일부 관객은 페퍼톤스, 설(SURL), 솔루션스 등 밴드들의 공연이 이어질 때 제자리에 앉아 작게 춤을 추기도 했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1'에 모인 관객들 |
날이 저물자 관객들은 폴킴 등이 선보인 발라드곡 무대 중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머리 위로 크게 흔들며 빛의 물결을 만들었다.
폴킴은 "어느 관객분의 손바닥이 붉은색인 제 옷보다 더 빨개졌는지 지켜보겠다"며 박수를 끌어냈다.
'뷰민라'는 27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민트페이퍼 관계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방역에 더욱더 신경 써서 공연을 안전하게 잘 마무리하겠다"며 "1년 8개월 만에 열리는 이 축제를 통해 질서 의식이 확립된 새로운 공연 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끼리는 더 가깝게 |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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