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슬립'(감독 김태훈)
영화 '빅슬립' 스틸컷. 찬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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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타인을 오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또 쉽게 잊게 된다.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발아된 '빅슬립'은 오해하고 낙인찍는 것이 쉬운 세상에서 '이해'라는 어려운 길을 함께 가보자고 손 내미는 진정성 있고 사려 깊은 영화다.
오늘도 거리를 헤매던 길호(최준우)는 우연히 만난 기영(김영성)의 호의로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다. 단지 하룻밤이지만 길호는 기영의 거친 태도 속에 다정함을, 기영은 길호의 믿지 못할 행실 속에 연약한 결심을 눈치챈다. 하지만 각자 지리멸렬한 낮을 지나 뜬눈으로 밤을 지켜낸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야 만다.
영화 '빅슬립' 스틸컷. 찬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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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은 김태훈 감독이 예술 강사로 학교 밖 청소년들을 가르칠 당시, 술에 취한 아버지를 피해 밤길을 헤매느라 잠을 자지 못한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영화다.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자 한 마음에서 싹을 틔운 이 영화는 단잠 같은 다정한 엔딩을 향해 나아가는 기영과 길호의 여정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여정은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를 오해하기는 쉽지만, 이해하기는 어렵기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바라볼 때 이해보다 오해로 다가가기 십상이다. 영화는 '이해'라는 어려운 길을 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쫓으며 서로가 서로의 단잠이 되는 과정을 더듬어 간다.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가 선입견으로 시작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빛무리는 알고 보면 잠잘 곳을 찾아 밤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이 머리에 쓴 랜턴 불빛이다. 빛이 걷히며 나타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길 위의 청소년임을 인지한 순간, 우리가 가졌던 선입견에 아주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길 위의 청소년들은 이런 모습일 거야'라는, 우리 사회가 흔히 갖고 있는 선입견 말이다.
영화 '빅슬립' 스틸컷. 찬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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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거칠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기영과 그의 호의로 인해 잠잘 곳을 찾은 소년 길호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기영과 길호는 닮은꼴 인물이다. 겉보기에는 거칠 거 같은 두 사람은 아버지에서부터 파생한 내·외적인 문제, 불법적인 일에 대한 거리낌 등 여러 면에서 닮았다. 기영이 처음 본 길호를 집 안으로 들여 잠잘 공간을 내어준 것 역시 자신과 닮은 면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길호를 향한 기영의 대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기영은 아버지의 굴레와 낙인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저항하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러한 기영은 자신과 닮은 길호 역시 아버지와 사회가 찍은 낙인과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길 바랄 수밖에 없다. 또한 기영은 길호를 보며 자신을 투영하고 동시에 자신도 여전히 갇혀 있고 또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서로를 닮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하고 함께하며 벗어나고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지를 되새긴다.
감독은 영화 속 길호를 중심으로 한 소년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쉽게 그들을 오해하고 있진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저 "잠만 잤을 뿐"이라는 말처럼 소년들은 그저 자기 한 몸 누이고 잠잘 곳이 필요했을 뿐인데,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밤의 일부분으로 방치한 채 함부로 '불량하다' '불행하다'는 틀 안에 가둬버렸다.
그렇기에 소년들의 랜턴 불빛은 단순히 그들을 선입견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영화적인 표현일 뿐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봐달라는 신호가 된다. 그동안 무심결에 지나친 수많은 밤거리 속에 존재했지만 보지 못했던 조용한 외침은 랜턴 빛이 되어 관객들을 향해 무수한 신호를 던지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더라도 반복되는 불빛은 우리가 놓쳤던 그 신호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결국 알게 한다.
영화 '빅슬립' 스틸컷. 찬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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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랜턴 불빛처럼 스크린 속 아이들 모습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그들이 카메라를 그리고 관객들을 응시하며 자신들의 눈에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응시의 주체가 뒤바뀐다는 건, 누군가를 담아내고 '응시'한다는 데서부터 나오는 권력을 전복시킨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소년들과 동등한 시선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평화로운 순간은 잠을 자는 시간이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잠잘 때만큼은 순수해 보이고, 영화 속 잠든 아이들 모습 역시 그러하다. 그렇게 감독과 영화는 하나하나 사려 깊은 방식으로 조금씩 마음의 틈을 넓혀 나간다. 그렇게 다다른 영화의 마지막, 밝고 따뜻한 빛이 가득한 거실에서 평화롭게 잠든 기영과 길호의 모습은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잠 잘 곳을 헤맨 모든 이를 다정하게 위로한다.
통계나 보고서는 가정불화나 폭력으로 인해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을 그러한 삶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수치화한다. 또 그들의 삶이 당연하게도 불행할 것이라 쉽게 짐작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통계가 담아낼 수 없는 그들의 삶이 고되고 힘들지언정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불행하지는 않으며 그들의 삶이 앞으로도 통계처럼 박제된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영화 '빅슬립' 스틸컷. 찬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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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을 찍는 것은 쉽지만 손을 내미는 것은 어렵다. 통계 밖으로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건 기영이 내민 것처럼 진심이 담긴 작은 손길이다. '빅슬립'은 결국 통계와 오해로 둘러싸인 마음에 작은 틈을 내는 여정이다. 영화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위로와 희망은 건넬 수 있다. 여기에 영화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영화가 낸 작은 틈,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스크린을 통해 목도한 우리의 몫이다.
배우 김영성과 최준우의 호연은 기영과 길호를 현실에 발 디딘 인물로 만들었고, 순식간에 눈과 마음을 스크린에 붙잡아 뒀다. 그들의 호연이 있었기에 '빅슬립'이 보여주고자 한 것들은 오롯이 관객들에게 전달됐다. 두 배우는 가장 배우다운 방식, 즉 연기로 세상의 모든 기영과 길호를 위로한다.
많은 창작자가 자주 언급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진정성'일 것이다. 김태훈 감독은 영화가 그려내고자 하는 '진정성'이 무엇인지 '빅슬립'을 통해 선명하게 입증했다. 영화 내내 느껴진 건 감독이 아이들을 쉽게 담아내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하고자 한 흔적이다. 사려 깊고 다정한 마음의 소유자인 감독이 그려나갈 세상이 기다려지고 궁금해지는 이유다.
113분 상영, 11월 22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빅슬립' 메인 포스터. 찬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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