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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민희진과 하이브 분쟁을 창작의 성격 차이로 바라보는 시각[서병기 연예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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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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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의 갈등은 평행선을 달리며 지리한 법적 공방을 예고하면서도 벌써 막바지에 이른 감이 있다.

민 대표는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하이브를 배신한 게 아니라 하이브가 저를 배신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를 써먹을 만큼 다 써먹고 찍어 누르기 위한 프레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하이브는 반박 보도자료를 통해 "민 대표가 주장한 내용은 사실이 아닌 내용이 너무나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라면서 "이미 경영자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한만큼 어도어의 정상적 경영을 위해 속히 사임할 것을 촉구합니다"라고 밝혔다. 하이브는 자회사인 어도어 민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의 경영권 탈취 시도 정황을 파악하고 감사에 착수했고, 민 대표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민희진과 하이브의 분쟁은 승부가 이미 정해진 게임이다. 다만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확인된 게 있다. 양쪽이 '차원'(dimension)이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 마치 '극F'와 '극T'의 싸움 만큼이나 간극이 커 보인다. 민희진은 논리적 해명보다는 감성적으로 팩폭을 하며 오너의 부당함을 토로했다.

물론 SM 시절과 하이브 소속 레이블인 어도어 대표로서의 민희진의 역할은 다르긴 하다. SM에서는 이수만 전 총괄이 컨펌하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직원일 뿐이었지만, 하이브에서는 방시혁 의장의 멀티 레이블 운영 정책에 따라 방시혁의 간섭 없이 크리에이터 민희진이 뉴진스의 최종 결정권자 같은 위치에 있게 됐다.

"그런데 나는 왜 오너십이 없지?" 민희진은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절 믿어요"라는 박지원 하이브 CEO 말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건 민희진이다. 지분과 계약관계를 잘 모르면 변호사에게 의뢰해 조항을 살펴보고 법률적 검토를 한 후 도장을 찍었어야 했다.

이제 와서 "나 혼자는 안죽어"라는 식으로 물귀신 작전을 쓰면 상장사가 어떻게 될지는 너무도 뻔하다. 하이버 주식 가치가 하루에 수천억원씩 쪼그라 들었다.

멀티 레이블 체제라는 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한 회사에서 레이블들이 독립적으로 운용되면서 다양한 색깔의 콘텐츠가 나올 수 있지만, 음반을 발매하는 시점 등을 조정해야 하는 등 마케팅에는 불리한 점도 있다. SM과 자회사 울림엔터테인먼트는 그런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 민 대표는 뉴진스도 르세라핌으로 인해 음반 발매시기 등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은 창작자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민희진의 경우 그 댓가를 월급으로 받기 때문에 업무상 저작물 개념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도 뮤직비디오 등 표현의 단계에서 보호되는 것이지, 아이디어를 보호받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민희진은 저작권은 잘 모르겠지만 "뉴진스, 아이디어는 내가 다 내고, 내 새끼처럼 키웠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민희진의 이런 식의 주장은 가슴으로는 일견 이해될 수는 있어도 머리로는 이해되기 어렵다.

2시간이 넘는 기자회견동안 털어놓은 이야기속에서 자신이 키우는 가수에 대한 마음가짐, 그리고 근면성, 자신감, 진정성, 열정에 대해서는 인정받을 수 있다. 월급쟁이 사장도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게 일하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다. "대표도 까라면 까야 되는구나"는 식으로, 하이브가 무서운 곳이구나 하는 걸 알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극소수의 '갑'(甲)을 제외하면 연봉 5억의 CEO까지 포함시키는, 이 세상 '을'(乙)들에게 카타르시스는 안겼다. 하지만 민 대표의 이야기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무리가 있다. 상장회사에서 그렇게 싸우다가는 '민폐희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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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뉴진스.


콘텐츠는 자본과 크리에이터, 스타가 합쳐진 상태로 존재한다. 크리에어터 민희진이 자기 것만 떼어내려고 하다가는 떼어내 지지도 않고 자본과 스타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더구나 뉴진스가 소속된 어도어의 80%를 민희진이 아닌 하이브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싸움에도 배려가 필요하고 매너를 지켜야 한다. 민 대표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빌리프랩 소속 신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의 콘셉트를 표절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민 대표가 제기한 것과 다른 사람이 제기한 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

민희진과 하이브의 갈등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규모를 키워가다가 생긴 부작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K-POP innovation'을 영문 서적으로 낸 이장우 세계문화산업포럼 의장의 견해다.

K-팝 산업은 25년 정도 지나면서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 혁신으로 따지면 K-팝은 이미 세계적이다. 이를 성공시킨 주역은 메이저 이노베이터(혁신가)들이다. 거의 발명 수준의 메이저 이노베이션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산업화가 되려면 이들 외에도 스핀오프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 스핀오프 이노베이션은 K-팝 산업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스핀오프 이노베이션이 점점 K-팝 산업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는데, 민희진이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콘텐츠업은 일반 제조업과 달라 자신이 발명한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다는 것.

소녀시대에게 진바지를 입혔다고, 샤이니에게 교복을 입혔다고 메인 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장우 의장은 이번 사건을 스핀오프(민희진)와 메인 이노베이터(방시혁)간의 충돌로 봤다.

스핀오프 이노베이션은 메이저가 있어야 한다. 자본력과 조직력, 브랜드의 힘을 빌어야 한다. 뉴진스가 출범할 때에도 BTS의 여동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하이브에 도움을 받은 민희진은 아직 스타트업 단계임에도 메인 주주와 대등하게 맞서는 것도 무리다.

스핀오프 이노베이터 민희진은 메인 이노베이터(인벤터) 옆에서 빠른 학습과 유일한 학습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이를 따라갈 수 없다. 새벽 3시에도 일하는 민희진의 열정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민희진이 "내가 다 만들었다"며 메인 이노베이터로 착각하는 순간 기업 실패의 나락으로 빠지는 것은 기업 혁신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이장우 의장은 설명한다.

이장우 의장은 "18%의 지분을 가진 CEO가 80%의 대주주와 갈등을 일으키는 건 곤란하다"면서 "K-팝 산업에서 건전한 스핀오프 이노베이터가 비즈니스 논리에 적합한 형태를 보여야 지속적인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길게는 SES, 그리고 소녀시대, 에프엑스 등을 보고, 경험하며 감을 축적했다고 해서 자신이 발명가는 아니다. K-팝 발전 논리로 볼때 민희진 같은 스핀오프 이노베이터가 많이 나와 두꺼운 층을 형성해야 한다. 하지만 비즈니스 논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비즈니스 논리를 망각하면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이장우 의장은 "스핀오프 이노베이터에게 중요한 것은 학습된 노하우와 창업 능력이다. 기술력과 경영능력, 자금력을 보완하면서 역량을 키워나가야는 게 당면과제다"면서 "뉴진스는 하이브를 통해 자금 부족 등을 일시에 해결했다. 그런 고마움을 모르고 세 가지(기술력, 경영능력, 자금력)를 자신이 다 가진 양 해서는 안된다. 아직 제한된 학습이기 때문에 겸손한 자세로 꾸준히 보완해나가야 한다. 민희진은 이 같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면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뉴진스도 후속 작품이 성공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벌써 성공 확률이 떨어진다. 이게 이번 스핀오프 이노베이터 민희진 사건이 시사하는 바다"고 강조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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