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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섹시한데 혐오스러운’ 천우희가 만든 요물 같은 두 얼굴 [SS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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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천우희. 사진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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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영화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은 “신이 있다면 천우희 같이 생겼을 것 같다”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위엄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하고 감정이 크게 엿보이지 않고 정의롭고 강직한, 미스터리한 이미지가 담겨 있는 외형으로 천우희를 꼽은 듯했다. 사실상 ‘천의 얼굴’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영화 ‘써니’에서 광기에 취한 여고생을 연기하면서 대중에 얼굴을 알린 천우희는 2014년 개봉작 ‘한공주’로 영화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후 무너지고 있던 중에 그래도 한줄기 희망을 찾는 여고생의 얼굴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호평이 이어지면서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다. 이를 바탕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 혹은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표현해야 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여러 장르를 오가는 중에서도 천우희는 대체로 선한 인물을 연기했다. 신을 표현한 천우희가 악한 목습을 연기한다는 게 상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특히 JTBC ‘멜로가 체질’을 성공시킨 이후로는 밝고 명랑한 이미지를 더해 더욱 착하고 인간적인 여주인공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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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지난 17일 공개된 ‘더 에이트 쇼(THE 8 SHOW)’의 천우희는 커다란 도전에 가깝다. 우연히 고른 번호가 부와 권력을 주는 세상에서 천우희는 세계관 최강자 8층을 맡았다. 귀엽고 천진난만한 가운데 타인의 고통을 느낄 줄 모르는 광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섹시하고 귀여운데 궁극적으로는 지나치게 불쾌해 혐오감까지는 느끼게 한다.

‘더 에이트 쇼’ 안에 담긴 천우의의 얼굴은 모든 것이 새롭다. 주최 측이 만든 공간에서 아무런 룰도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재미를 추구하는 8층은 본능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온라인 세상을 의인화한 느낌이다. 끊임없이 의상을 바꿔가며 그간 꽁꽁 숨겨왔던 섹시한 매력을 드러내는가 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잠자리를 ‘장기자랑’이라고 터놓으며 남자를 고르는 모습도 새롭다.

몸이 묶여서 괴롭힘을 당하는 중에도 너무 즐겁다며 활짝 웃거나, 사람들이 혈흔이 낭자하며 피를 흘리는 걸 보면서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기도 하다. 단순하게 재미만 목적으로 살아가는 중에 타인을 고통으로 밀어 넣으면서도 조금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8층에게 관객은 결국 불쾌함과 혐오를 느끼게 된다. 늘 올바르고 인간적인 태도로 대중과 마주한 그에게 ‘혐오’란 수식어는 색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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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 사진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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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할 것 같으면서도 직관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로 접근했다”는 천우희는 밝고 명랑하면서도 혐오스러운 얼굴을 동시에 내비쳤다. 8층 때문에 너무 많은 분노가 치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벌을 받지 않는 것은 용납하기 힘든 묘한 포지션의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켰다. 이제껏 연기적인 면에서 큰 비판을 받은 적 없을 정도로 늘 관객을 설득해온 천우희는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현장에서의 집중력으로 8층에 요물 같은 매력을 부여했다.

천우희는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도 활약 중이다. 음흉한 속내를 들고 초능력 집안에 들어갔다가 진정 사랑을 느끼는 인물이다. 장르조차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관계성 사이에서 의도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도다해를 다양한 무기로 풀어내고 있다. 베테랑 연기자답게 어려운 캐릭터임에도 쉽게 소화하고 있다. 불편하거나 답답한 포인트가 단 한 순간도 없다. 도다해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더 커지고 있다.

요즘 각종 웹예능에 나온 천우희는 인간적으로도 더 단단해진 모습이다. ‘한공주’ 이후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관심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실력에 누구보다 가혹하게 대했고, 내면을 더 내밀하게 들여다봤다. 공식석상이나 인터뷰 현장에서 매사 조심스러웠다.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뱉었다. 그 과정에선 다소 불안한 점도 있었으며 긴장한 느낌도 짙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서도 예민한 면모가 문득문득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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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더 에이트 쇼’로 공식석상에 오른 천우희는 알에서 깨어나온 모습이었다. 사진을 촬영할 때 포즈도 더 자연스러워졌으며, 주최 측이나 취재진의 질문에 더 유연한 태도와 유려한 언어로 응대했다. “드디어 제가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는 천우희의 말에서는 그간 보이지 않았던 강한 자신감도 엿보였다.

천우희는 2022년 tvN ‘이로운 사기’와 ‘더 에이트 쇼’를 동시에 촬영했다고 했다. 두 작품에서 연기한 인물 모두 독특하고 어려우며 주어진 숙제도 많은 작품이다. 고된 스케줄이었음에도 무리없이 이겨냈고, 천우희는 비로소 자신을 인정하게 됐다고 했다. 노력으로 일군 성취로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이미 기술력으로는 국내 탑티어에 오른 천우희가 높은 자존감이라는 날개까지 단 셈이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과 ‘더 에이트 쇼’는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배우에게 두 작품이 동시에 공개되는 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너무 비슷하면 동어반복이고, 너무 다르면 괴리감을 준다. 도다해와 8층은 전혀 다른 이미지이자 포지션이지만, 동시에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다른 연기와 확실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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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내는 좋은 배우의 덕목이 천우희를 통해 발현되고 있다. 어려운 숙제도 뚝딱뚝딱 해낼 뿐 아니라, 그 안에 자신보단 작품을 더 위하는 존중과 겸손마저 엿보인다. 30대 베테랑 연기자 천우희의 미래가 더 기대될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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