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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나의 해리에게’ 신혜선, 이진욱이 주워들 버려진 우산은 그만! [김재동의 나무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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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몇 번인가는 있었을 것이다. 다른 길로 접어들 수 있는 이정표를 만난 것이. 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지나쳐온 세월이 8년이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나고서야 그는 말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이정표 앞에서. “안녕, 잘 가!”

한 아이가 태어나 학교에 들어가도록의 세월을 사귀어 놓고. 그럴 거면 그냥 적당한 때에 적당한 곳에서 적당한 말로 진작 끝냈어야지. 뭐? “8년을 만났던 8주를 만났던 헤어지는 건 다 똑같은 거지. 안녕, 잘가! 하면 그만이지. 은호야.”라고?

지니 TV 오리지널 '나의 해리에게'의 주은호(신혜선 분)는 과거 어느 날 문득 닥친 어느 순간 “결혼하자!” 말했다가 정현오(이진욱 분)에게 이별 당했다.

은호는 그 불합리한 순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안녕’과 ‘잘 가’란 두 단어가 그렇게 시리고 아플 수 있는 말인 줄도 처음 알았다. 붙잡고 싶어서 매달렸다. 결혼해달라고 안할테니 헤어지지 말자고.

하지만 한 순간에 낯선 사람이 되어버린 정현오는 말했다. “아니. 너는 또다시 그런 말을 할 거고 그때는 시간이 더 지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만하자. 주은호!” 그 말 끝에 손을 뿌리치고 멀어져 가는 정현오를 은호는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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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냐? 웃으면서 하는 거야. 인사같은 건!” 정현오의 웃는 눈에서 구르기 시작해 웃는 입매까지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 때문이었을까? 주은호는 정현오를 잊을 수 없어 불행했다. 너무 너무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정현오라서 죽도록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은호에게 갑작스레 공황장애가 닥쳐온 것은 정현오와 함께 진행하던 프로에서였다. 잃어버린 동생 혜리와 자신, 둘의 이야기와 너무 닮은 사연을 소개하는 동안이었다. 자신은 동생을 잃었는데 사연 속 동생은 언니를 잃었다. 사연 속에선 짐이 되는 동생을 언니가 떠나버렸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혹시 나는 혜리가 짐이라고 생각해 떠나 보낸 건 아닐까?’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은 집에 와 있었고 그 옆을 꿈처럼 정현오가 지켜주고 있었다. 8년을 지켜봤던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다정한 채로. 꿈인가 싶었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정현오는 제 옆에 있었다. 행복했다.

정현오의 아침 외식 제안에 기쁘게 옷을 갈아입고 나서던 주현오는 다시 한번 현오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 갈게!”하고 사라지는 정현오를. “당장 만나려면 당장 헤어져야겠네. 잘가라. 주은호!”하고 사라져갔던 옛 모습 그대로다. 은호는 덜컥 멈춰버렸다. 정현오는 그때나 지금이나 저렇게 무감하게 훌쩍 떠날 수 있는 남자였다.

은호를 움직이게 한 건 요란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현오의 부르는 소리. 문을 열었을 때 정현오는 비에 젖어가며 말했다. “은호야, 아파라! 이렇게 가끔씩 아파주라 은호야! 그래 주라 은호야! 그래 줄래? 은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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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절한 정현오는 내가 가끔씩 아프길, 그리하여 결혼 해 함께 할 수 없는 자신이 날 가끔씩 친절하게 돌볼 수 있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근데 이제 알겠다. 네가 다시 돌아오면 나는 많이 아플 거야.

그래서 답해주었다. “아니. 나 절대로 아프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건강할 거야. 그렇게 보란 듯이 잘 살아 볼 거야. 잘 가! 인사는 이렇게 하는 거랬지?” 은호는 그렇게 낙담한 현오를 빗속에 세워두고 문을 닫았다. 책장에 넣어둔 채 다시는 꺼내보지 않기로 했다. 마음에는 담지만 영영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주은호는 제 인생을 고장 난 우산으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더는 버려지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은 현오의 손에 주워지지 않기로 했다.

사실 주은호는 오래도록 행복을 못느낀, 몹시도 행복해지고 싶은 여자다. 그래서 언제나 해맑게 행복했던 동생 주혜리를 동경했던 모양이다.

학사경고 맞은 것조차 재밌는 해프닝처럼 웃으며 떠들던 아이다. 자매는 먼 친척 할머니(반효정 분)의 보살핌 속에 성장했다. 그 세월 주은호는 빚 진 기분으로 살았다. 반면 동생 혜리는 사랑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주은호는 혼자 서는(독립) 게 중요했다. 주혜리는 함께 행복한 것만 관심 있었다. 주은호는 대가 분명한 인간관계의 울타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주혜리는 “나는 그냥 언니만 있으면 돼”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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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살아보고 싶었죠. 마냥 행복한 그 애처럼 살아볼 수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주은호가 주혜리란 이름으로 미디어N서울 주차장 정산소의 무급 직원이 된 이유다. 혜리가 남긴 메모에 “주차장에서 일하면 정말 행복하겠다. 주차장은 나의 꿈.”이라 적혀 있었으니.

주혜리로 살아보니 행복했냐는 상담의 이승윤(안소요 분)의 질문에 은호는 “아뇨. 3년이나 그 아이로 살아봤지만 전혀.”라 답했다.

하지만 정작 혜리는 행복했음을 알게 됐다. 녹화 영상 속 혜리는 말했다. “저는 이제 행복해졌어요. 사랑하게 됐으니까요. 저는 혜리를 버릴 수 없어요. 지금의 저는 꿈속의 은호씨보다 훨씬 행복하니까요.”

그러니 주은호나 주혜리나 키는 ‘행복’이다. 혜리가 행복할 때 꿈 속의 주은호는 삭제됐다. 정현오의 돌봄이 이어지도록 행복한 주은호의 일상에 주혜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까지 주은호의 행복에 정현오는 필수불가결의 존재였단 사실. “현오야, 나 물에 빠지면 구해줄 거야?” “현오야, 나야? 아홉시 뉴스야?” “현오야, 나야? 청소기야?”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주은호를 감당할만한 사람은 친절한 정현오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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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가 나한테 시집을 와. 할매들 수발은 나 혼자 들어야지. 여긴 나한테나 살 만하지, 다른 여자들에겐 지옥이야.” 정현오가 결혼 안하는 이유, 주은호를 제 삶에 끌어들일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주은호의 투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 즉 정현오가 친절한 이유다.

그러니 그런 정현오를 이제야 마음에서 떠나보낸 주은호는 과연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혜리는 왜 주차장에서 일하는 걸 행복해 했을까? “동생이 정말 이걸 하고 싶어했어요. 왜인진 모르겠지만.” 은호도 모르는 그 이유는 뭘까?

한가지 거슬리는 부분은 작가의 언어습관이 캐릭터 여러 사람에게서 보인다는 점. 강주연(강훈 분)도 백혜연(조혜주 분)과 말할 때 “왜? 혜연아” “응. 혜연아” “아냐 혜연아” 하더니 정현오도 “아파주라 은호야! 그래 주라 은호야! 그래 줄래? 은호야!” 한다.

어떤 효과를 의식한 설정인 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캐릭터의 차별성을 훼손하는 대사로만 보인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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