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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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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원작의 매력 뭐길래…뮤지컬 이어 이혜영 주연 영화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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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원작 소설 ‘파과’ 흡인력 강한 작품

뮤지컬에선 ‘류’와 ‘강 선생’ 1인 2역으로

영화선 ‘조각’과 ‘투우’의 감정선 ‘기대’

배우 이혜영이 구병모의 원작소설 ‘파과’를 민규동 감독이 스크린에 올린 영화 ‘파과’에서 주인공 ‘조각’을 연기한다. 전무후무한 60대 여성 킬러를 보여줄 예정이다.[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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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방역은 누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가 왜 누군가에게 구제(驅除)해야 할 해충이나 소탕해야 할 쥐새끼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방역 대상이 구제됨으로써 누가 무슨 이득을 취하는지, 그의 죽음이 창출하는 이윤을 방역업자는 계산하지 않는다. 」(소설 ‘파과’, 구병모)

주요 등장인물의 직업이 모두 방역업자, 그러니까 살인 청부업자인 작품 ‘파과’(흠집난 과일)가 지난해 뮤지컬로 탄생한 데 이어 이달 30일엔 민규동 감독, 이혜영 주연의 영화로 살아 움직일 예정이다.

342페이지 분량의 원작 소설은 주인공 65세 킬러 ‘조각’의 가난한 어린 소녀 시절부터, 후원자이자 조각에게 살인 기술을 알려주는 남자 ‘류’를 만나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65세가 되어 최고령 방역업자로 일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서사를 담고 있다.

배우 이혜영이 60대 킬러, ‘신성방역’의 대모 ‘조각’으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다.[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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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은 배우 이혜영을 조각 역에 캐스팅하면서 “보기 드문 인물을 소화해야 하면서 고전영화의 아우라를 가진 분이어야 했다”며 “처음 이혜영 배우를 만났을 때 ‘오랫동안 파과를 준비해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운명적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소설 1페이지에서 60대의 조각이 뜸도 들이지 않고 등장하는데, 그녀를 향한 묘사는 이렇다.

“아이보리 펠트 모자로 잿빛 머리를 가리고 잔잔한 플라워 프린트 셔츠에 수수한 카키색 리넨 코트와 검정 일자바지 차림의 이 여성은 짧은 손잡이의 중간 크기 갈색 보스턴백을 팔에 건 차림으로 실제 연령 65세이나 얼굴 주름 개수와 깊이만으로는 여든 가까이 되어 보인다. 일반적인 중산층 노인이라면 딱 그럴 법한, 그야말로 노년의 정석에 가까워 모자라지도 튀지도 않은.”

그렇게 금요일 밤 시간대, 취객으로 가득 찬 지하철에 올라탄 그녀의 외양이 소개된다. 노약자석으로 곧장 향해 자리를 잡은 조각이 “모자챙을 내리누르고 가방에서 꺼낸 것은 인조가죽 장정의 지퍼 색 핸디 성경”으로, 그녀는 “무릎에 성경을 펼쳐놓고 루페를 그 위에 올려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간다. 이 모든 자태가 혐오스럽지도 이색적이지도 않아서 타인들이 원하는 기준치에 들어맞아 어떤 이목도 끌지 않는다.”

그리고 조각은 일수 가방을 들고 페라가모 구두를 신은 한 남자 뒤에 바짝 붙어 서서 지하철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내리는 사람보다 앞서 비집고 들어오는 한 승객이 이 남자의 어깨를 툭 밀쳤을 때 남자는 눈이 텅 빈 채로 역사 플랫폼에 처박힌다. 그의 등에는 아무도 모르게 긴 칼날이 그어져 있다.

배우 이혜영 [블루드래곤 엔터테인먼트]



이에 반해 지난해 초연한 뮤지컬에서는 ‘투우’의 서사가 오프닝에서 먼저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배우 김성철이 30대 초반의 전성기를 맞은 방역업자 투우를 연기한다. 투우는 스무해 전 즈음 40대의 조각을 만났다. 그때 소년은 “섬세하게 가루를 낸 약을 받아 들다가 그녀의 얼굴을 꽤 오랜 시간 올려다보곤 했으며, 항상 반드럽게 세팅된 어머니의 대외 학술제용 머리와는 다른 일상의 부드럽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에 때론 손을 뻗어보고 싶은 충동마저 들곤” 했다.

아버지는 건설업자, 어머니는 교수였던 투우는 자주 가사도우미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하루는 급하게 학술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서 면접도 한번 없이 임시 고용한 도우미, 즉 조각이 투우의 집에 왔다. 각종 알레르기를 앓으면서도 알약은 기어코 삼키지 못하는 소년을 위해 손절구로 알약을 빻아 가루 내 먹여주는 정성에 감동한다. 하지만 어느 하굣길, 투우가 현관문을 열자 아버지가 정수리가 뚫린 채 피를 뿜어내며 쓰러진다. 집 안으로 달려가 마주한 것은 베란다 밖으로 도망갈 준비 중인 흰 블라우스를 입은 임시 가사도우미, 조각의 뒷모습. 그녀는 소년에게 입 모양으로 ‘잊어버려’라고 말하고 뛰어내린다. 그날부터 투우는 조각을 찾기 위해 같은 방역업자의 길로 들어설 준비를 한다.

배우 김성철이 영화 ‘파과’에서 30대 초반의 절정을 맞은 킬러 ‘투우’를 연기한다.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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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녀를 킬러 ‘손톱’으로 입문시켜 ‘조각’으로 거듭나게 하는 ‘류’는 원작 속에서 30대를 산다. 영화에서는 배우 김무열이 그를 연기한다. 소녀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입을 하나라도 줄이고자 부잣집 당숙네로 입양(이라고 쓰고 ‘식모살이’라고 읽는다)을 간다. 하지만 이 집에서 도둑으로 몰리고 친척 오빠를 엎어 쳐 뼈마디를 작살내는 바람에 그 길로 도망친다. 돌아간 집은 이미 식구들이 쪽지 한장 남기지 않고 이사나간 뒤다. 류는 갈 곳 없는 천애 고아를 발견하고, 호프집에서 설거지하는 일자리를 주선해 준다. 이 호프집은 류의 단골집이기도 해서 소녀는 오가며 류를 보는데,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그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영화에서는 배우 신시아가 소녀를 ‘설화’라는 이름으로 연기한다.

소녀를 ‘손톱’으로, 이어 ‘조각’으로 인도하는 남자 ‘류’는 배우 김무열이 연기한다.[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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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호프집에 온 미군이 소녀를 강간하려는 사건이 일어난다. 소녀는 죽을힘을 다해 저항하다 마침 주변에 있던 쇠꼬챙이로 자기 몸집의 3배에 달하는 거구 남자의 목구멍을 찔러 외마디 비명도, 낭자한 핏자국도 없이 깔끔하게 해치운다. 류는 그런 소녀의 작품을 보고 “이거 소질 있네”라며 눈을 반짝인다. 그렇게 소녀는 ‘손톱’이 되어 류와 함께 방역업을 하는 파트너로 성장한다. 점점 업계에서 평판이 나고 성공률 100%에 달하는 명성을 얻으면서 이름을 ‘조각’으로 한 번 더 개명한다.

하지만 업계에서 류와 조각이 명성을 날릴수록 그들의 허점을 노리는 적들도 급속히 늘었다. 류가 조각과 함께 출장을 다녀온 사이, 다섯살 연하인 류의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는 이름 모를 적에 의해 희생된다.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자” 란 말은 류가 조각에게 늘 상기시키는 말이다. 영화에서도 김무열이 신시아에게, 이혜영이 스스로에게 이 말을 전할 테다. 원작에서 류는 그 이후로 얼마 안 가 새로운 집에서 적이 설치한 폭탄에 당해 하반신이 날아가 조각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혼자 남은 조각은 더욱더 방역에 정진하고 회사를 키워나간다.

‘조각’과 ‘투우’는 무슨 인연일까. 둘은 공존할 수 없는 사이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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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중반의 조각은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평균적인 한국 60대 여성과 비교하면 ‘너무나 근육질’이기 때문에 헬스장에 나가면 모두가 그녀를 주목해 산스장(산 중턱에 마련된 간이 체육시설)에서 인적 드문 시간을 골라 운동한다. 나이가 들면서 몸만 변한 게 아니다. 그녀의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방역 작업에 자꾸만 인간적인 면모가 끼어든다. 결국 방심한 그녀는 방역 대상에 의해 머리를 크게 다치게 된다. 가까스로 평소 다니던 병원에 피투성이가 되어 도착,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배우 신시아가 ‘설화’를 거쳐 ‘손톱’을 연기한다.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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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조각이 본 것은 그녀 회사와 계약해 치료를 전담하던 50대 장 원장이 아닌, 페이닥터로 일하는 30대의 강 선생이다. 영화에서는 배우 연우진이 강 선생을 연기한다. 각종 칼과 꼬챙이 등 방역에 필요한 연장을 담아둔 조끼는 벗겨져 있고 조각은 상처를 봉합하느라 옷이 벗겨진 상태다. 자신의 정체가 들통났다고 생각하고 강 선생을 당장이라도 죽이기 위해 목을 조르지만, 강 선생의 태도는 올곧기에 그지없다. 그저 의사라서 죽어가는 환자를 치료했을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원작에선 조각이 왜 서른 살이나 어린 강 선생에게 인생 두 번째로 연정을 품게 되었는지 설명도, 실마리도 주지 않는다. 그저 강 선생의 덤덤한 성격과 직업적 윤리의식을 묘사할 뿐이다. 추정컨대, 아마도 조각은 강 선생에게서 옛날 류를 떠올린 듯하다. 지난해 뮤지컬에서는 류와 강 박사(강 선생)를 한 배우가 1인 2역을 하면서 이같은 추론에 힘을 불어넣었다.

강 선생의 등장으로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자”는 조각의 생활신조에 균열이 생긴다. 투우는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회사를 오가며 조각을 볼 때마다 ‘할머니’, ‘할망구’라고 말하며 조각을 의도적으로 도발했던 그다. 강 선생이 이혼 후 혼자 키우고 있는 여섯살 딸 ‘해니’를 납치해 조각을 유인한다.

페이닥터로 이 병원, 저 병원 옮겨다니는 ‘강 선생’을 배우 연우진이 연기한다.[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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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예고편에서 소개된 이혜영과 김성철이 서로 맞붙는 신은 아마 이 결말 부분에 나오는 둘의 생사를 건 결투 장면이지 않을까 한다. 원작에서는 조각이 왼손을 총알에 잃고, 투우는 사타구니부터 위쪽으로 복부가 칼에 찢겨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투우가 가는 길은 조각이 그를 품에 안고, 드디어 그가 스무해 전 그 소년이었음을 기억해 낸다. “이제 알약 먹을 줄 아니”라는 조각의 혼잣말과 함께 투우는 눈을 감는다.

이 액션 장면에 민규동 감독이 엄청나게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파과’ 제작보고회 현장에서 배우 김성철은 “너무 힘들었다. 롱테이크로 가면서 오케이를 안 내줘 17번의 테이크를 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파과’ 제작보고회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혜영(왼쪽부터), 김성철, 민규동 감독이 참석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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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가 조각에게 이토록 집착한 이유 역시 원작에서는 미루어 짐작할 뿐인데, 아버지를 죽인 것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품었던 어떠한 연모의 마음이 섞여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민 감독이 “감성 액션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 대로, 영화에서는 투우와 조각이 맞붙는 장면이 좀 더 직관적으로, 명료하게 이 둘이 서로에 대해 갖는 감정을 표면에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챕터 구분이 전혀 없이, 약 400페이지의 원작 소설은 물 흐르듯 이어진다. 그러나 중간에 도무지 끊을 수가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고, 미스테리하다. 주인공 조각의 방역 솜씨를 묘사한 부분을 비롯해 각 장면을 자꾸만 영화의 실제 캐스팅에 대입해 상상해 보는 묘미가 있다. 그 묘미는 30일 영화가 개봉하면 끝난다. 이때는 살아 움직이는 ‘파과’를 만나게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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