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의 연극무대 ‘헤다 가블러’
무대 부담감 커도 동료 있어 ‘큰 힘’
이혜영과 같은 역…“비교해 봐달라”
배우 이영애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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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단 한 번도 같은 여성은 없었다. 누구 하나 평이하지도, 전형적이지도 않았다.
대문자 T(이성형)일 것 같은 냉철한 수사관(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이었고, 서늘하고 기괴한 ’복수의 환신‘(2005년 친정한 금자씨’)이었다. 또 시대와 조응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간 조선판 셰프(2003년 ‘대장금’)였으며,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희대의 명대사로 첫사랑을 사로잡는 구여친(2001년 ‘봄날은 간다’)이었다. ‘구경이’, ‘마에스트라’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변화는 더 극적이었다. 시대극과 현대극을 오가며 다양한 여성상을 만들어온 배우 이영애(54)가 이번엔 ‘여성 햄릿’이 됐다. 연극 ‘헤다 가블러’를 통해서다.
“헤다는 여배우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인물이에요. 이런 역할을 통해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희열을 느껴요. 새로운 모습을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 제겐 매력적이더라고요.”
이전의 작품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개관작이면서 김상수 극작, 연출의 ‘짜장면’이다. 당시 20대 초반이던 이영애는 그 작품 이후 언제나 연극 무대를 그리워했다. 그는 “어렸지만 굉장히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이라며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 주고 포스터도 붙이며 재미있게 작업했던 기억이 오래 남았다”고 했다.
‘헤다 가블러’는 독특한 작품이다. 1890년에 쓰인 이 희곡에서 입센은 억압된 시대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린다. 특히 이영애가 연기할 헤다는 남성들의 시선과 흠모를 받지만, 시대의 한계에 부딪혀 자유를 찾아 나서는 인물이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에 행동하지 못하고, 이는 내적 갈등으로 번지며 다층적 심리와 파괴적 성격으로 드러난다. 헤다가 안고 있는 ‘존재의 모순’과 자유의지를 향한 고민이 ‘입센 버전의 햄릿’이라 할 만 하다. 세계 무대에서 매기 스미스, 아네트 베닝, 이자벨 위페르, 케이트 블란쳇 등이 연기했고, 한국의 대표 헤다는 배우 이혜영(2012 국립극단)이었다.
배우 이영애와 백지원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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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는 “헤다는 하나의 색을 가진 역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여자”라며 “작품에선 우리가 기존에 알던 색깔을 바꿔보고 싶었다. 밝은 모습이 있어야 이면의 어둠이 보인다고 생각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헤다를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많은 배우, 창작진과 ‘공동 작업’을 하며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 이영애에게 배우로서 충만감을 줬다. 그는 “드라마가 끝나면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며 “좀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목마름이었다.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연기 이상으로 큰 힘을 주고 있다”고 만족해했다.
이와 함께 이영애는 그간 배우로서는 물론, 아내와 엄마로의 삶을 살며 무수한 감정의 변화를 마주했기에 ‘바로 지금’이 헤다를 만나기에 적기라고 말한다.
그는 “결혼하고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여성으로서 다양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됐을 때 만난 작품”이라며 “20~30대에 만났다면 이렇게 공감하며 연기했을까 싶다”고 돌아봤다.
이영애는 “개인적으로 친분은 없지만 팬으로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배우이자 선배님”이라며 “‘헤다 가블러’를 하고 싶었던 것도 이혜영 선배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같은 시기에 공연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혜영의 색깔과 이영애의 색깔을 비교해 봐도 좋다”며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면 좋은 일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왼쪽부터), 전인철 연출, 배우 김정호, 이영애, 백지원, 지현준, 이승주가 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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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맡은 전인철은 “국립극단과 같은 시기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당황스럽지만 부담도 생겼다”며 “1500석 규모의 LG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가로 16m, 높이 10m의 거대한 무대 세트를 마련했고 대규모 스크린을 활용한 라이브 영상을 활용해 연극과 영상이 스펙터클하게 표현되는 장면들을 구성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인철 연출가는 “19세기 노르웨이 상류 사회가 배경이지만 2025년의 동시대 관객들이 본다는 것을 기준점으로 삼았다”며 “각 인물의 심리 상태와 욕망, 감정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를 바랐다. 헤다를 비롯해 모든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같은 시기 ‘헤다 가블러’의 무대가 오르고, 올 하반기엔 미국에서 이 작품이 드라마로도 만들어진다.
연극을 기획한 이현정 LG아트센터 센터장은 “지금 이 시대가 ‘헤다 가블러’를 불러내고 있다”며 “시대와 남녀를 떠나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담고 있고 내면의 공허, 선택 앞의 좌절을 잘 담고 있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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