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식구 잃은 MBC, 할 말이 그것 뿐이세요?
故 오요안나. 사진| 오요안나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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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0일. 또 한 번 가짜뉴스이길 바랐던 비보를 접했다. tvN ‘유퀴즈’(2022, 170화 3사 기상캐스터 편)를 통해 대중에 얼굴을 알리고 이제 막 뜨겁게 사랑받고 있던, 고작 28살의 젊은 기상캐스터, 오요안나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더군다나 오요안나는 2021년 MBC 공채 기상캐스터로 입사해 3사 기상캐스터 대표 편에 출연했을 정도로 MBC의 새로운 얼굴 중 한 명이었는데, 고인의 사망 소식이 세 달이나 뒤인 12월에 알려졌다니 이상했다. 회사에서 부고를 띄운 것도 아니고, 동료 중 누군가가 외부에 알린 것도 없다는 게 의아했다. 기자가 가장 먼저 사실 확인을 위해 MBC에 연락을 취했지만 대응은 더욱 이상했다. 이 안타까운 소식을 알지도 못했고, 알려는 의지도 없어보였고, 너무 일찍 떠난 직원을 진심으로 추모하려는 태도도 아니었다.
이날 오후 2시 44분 MBC 콘텐츠프로모션부(홍보팀)와 연락이 닿았고,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사망 여부를 물으니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자, “보도국(아나운서국) 소속이 아니다”라며 “알아보고 확인할 수 있으면 해주겠다”고 말했다. 재차 “보도국 소속 아니냐”라고 물으니, “아니다”라더니 다시 “알 수 없다. (사망도) 개인적인 일(사생활)이라 알 수 없다. 추후 공식입장을 낼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일하던 기상캐스터의 사망이 개인적인 일인가? 모든 경조사가 사내 전산시스템을 통해 공유되는 세상이다. 백번 양보해 통화한 직원이야 몰랐을 수 있다. 그렇다면 확인해서 알려주고, 논의 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입장을 정중하게 내는 게 맞지 않나? 일부러 쉬쉬하려는 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상할 정도로 방어적이고, 그 이상으로 회피하는 듯한 MBC의 대응. 고인을 둘러싼 가슴 아픈 사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수록 그 상식 밖의 분위기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MBC는 그 이후로도 비슷한 양상으로 대처했기에 결국 ‘방임’ ‘은폐’ ‘악습’ ‘쉬쉬하는 문화’ 등 의혹에 휩싸였고, 전 MBC 기상캐스터들은 물론 대중에 계속해서 비난 받고 있지 않은가.
뭔지 모르게 이상했던 이 날의 분위기는 지난달 28일 고인의 휴대전화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와 녹취록 등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이해가 됐다. 고인이 사망 전 이 같은 피해 사실을 전 MBC 관계자 4명에게 알렸다는 정황도 나왔다. 유족의 울분 섞인 폭로, 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전 MBC 기상캐스터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고인이 당시 회사에 공식적으로 고충(직장 내 괴롭힘 등)을 신고했거나, 신고가 아니더라도 책임있는 관리자들에게 피해사실을 조금이라도 알렸다면 회사는 당연히 응당한 조사를 했을 것”이라며 “MBC는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엄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프리랜서는 물론 출연진의 신고가 접수됐거나 상담 요청이 들어올 경우에도 지체없이 조사에 착수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고인이 사망 전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언론의 보도에도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 저희에게 알려주시기 바란다. 유족들께서 새로 발견됐다는 유서를 기초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면 MBC는 최단 시간 안에 진상조사에 착수할 준비가 돼있다”며 허울 뿐인 해명만 내놓을 뿐, 이후에도 자체 조사에 돌입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큰 조직에, 그것도 보도 기능이 강력한 방송국에서, 말단 직원이 공식 담당 부서나 일면식 없는 고위 관계자에게 혼자 고발하고, 가해자들과 싸우며, 공론화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취재원 보호는 기본이거늘, 제보자를 알려달라는 공식 멘트라니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더욱 당황스러운 건 (아직 전말이 명확하게 확인된 사건은 아니지만) 피해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정확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마치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는 2차 가해에 가까운 발언을 전혀 신중하지 못하게 덧붙였다는 점이다.
故 오요안나. 사진| 오요안나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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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다 못한 이들이 MBC를 경찰과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대중과 정치권의 비판도 거세졌다. 고인이 피해를 당했다는 정황이 담긴 증거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고, 시청자 게시판 및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가해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실명도 공개됐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MBC는 지난달 31일, 마지못해 “故 오요안나 씨 사망의 원인과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외부전문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또한 자발적인 구성이 아니라 MBC의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지시에 따른 조치로 추측된다.
이러는 사이 MBC 출신 기상캐스터와 아나운서들이 입을 열었다.
MBC 전 기상캐스터 배수연은 “내가 회사를 나오던 그때도 그랬었지. 그들의 기준에서 한낱 프리랜서 기상캐스터였던 나의 목소리에는 어느 누구 하나 전혀 귀 기울이어 주지 않았었다. MBC. 보도국. 기상팀. 너무나도 사랑했던 일과 일터였지만 그때 그곳의 이면을 확실히 알게 되었었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 줄 알았는데 어쩜 여전히 이렇게나 변함이 없다니...”라고 한탄했다.
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 박은지는 “언니(박은지)도 7년이라는 모진 세월 참고 또 참고 버텨봐서 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지”라며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뿌리 깊은 직장 내 괴롭힘 문화 이제는 끝까지 밝혀져야”라고 적었다.
그런가하면 아나운서 출신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MBC에 나쁜 사내 문화가 있다. 회사에 SOS(구조요청)를 했는데 묵살된 게 제일 큰 문제다. 쉬쉬하는 문화”라고 꼬집으며 “겉으로 보면 번지르르한 가정집인데 심각한 가정폭력을 자행하는 곳과 같다. 굉장히 대학 동아리처럼 인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데 그 중에 누가 맘에 안 들면 굉장히 유치하고 폭력적인 이지메(집단 괴롭힘)가 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고인은 지난해 9월 가양대교에서 극단적 시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직장이 힘들다. 등뼈가 부러질 것 같이 아프고, 창자가 다 끊어질 것처럼 힘들어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차라리 편안해지고 싶다”고 했단다. 결국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참을 회사는 외면했다.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저지당했을 수도 있다.
비통하게도 당사자는 이미 사망했다.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진상규명이 얼마나 정확하고 투명하게 이뤄질진 모르겠으나, 최소한의 존중과 상식은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 비보를 접했을 당시 느꼈던 우려는 현실이 됐지만, 지금 휩싸인 의구심은 부디 현실이 되질 않길 간절히 바란다.
첫 비보를 접했던 당시 부적절했던 답변에 대해 재차 물으려 MBC 관계자에 다시금 연락을 취했다. 그는 “(당시엔) 보도국(소속)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그렇게 응대했을리 없다. 상식적으로 있는 팀을 거기 소속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을리 없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처음엔 (기상캐스터가) 아나운서라고 생각해 아나운서국에 연락했고, 이후 내부에서 뉴스룸 소속이란걸 찾아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내가 그랬다면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며 “그땐 아무도 몰랐지 않았나. 워딩이 빠지거나, 대응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을 순 있지만 내가 절대 그랬을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추신, 그렇죠, 본인이 생각해도 황당하죠? 그리고요,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요?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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