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개봉 뮤지컬 실사 영화 ‘백설공주’
인종 다양성 표면에 그친 ‘PC주의’ 비판
실사화 영화서 일곱 난쟁이는 CG로 대체
‘인어공주’ 이어 빌런이 더 인기가 많아
2025년 3월19일 개봉한 디즈니 실사화 뮤지컬 영화 ‘백설공주’에서 라틴계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스노우 화이트’를 연기한다. [디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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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배우 갤 가돗이 제 옷을 입었다. ‘백설공주’의 이블 퀸 ‘그림하일드’를 만화 작화보다 더 그림같이 표현해냈다. 오만한 표정으로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누구지?!”라고 물었을 때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거울이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건 한 치의 거짓이 없는 듯 보일 정도다. 레이첼 지글러가 연기한 백설공주도 아름답지만, 갤 가돗의 그림하일드가 어쩐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19일 개봉한 ‘백설공주’는 90년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를 실사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앞선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2017), ‘알라딘’(2019), ‘인어 공주’(2023) 등에 이어 누구나 아는 고전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진짜 원조’가 실제 배우들의 춤과 연기로 생생히 살아났다.
이블 퀸 ‘그림하일드’를 배우 갤 가돗이 연기했다. 가돗은 아름답지만 사악한 여왕으로 분했다. [디즈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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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소녀만이 주인공이 된다는, 공주가 될 수 있다는 편견을 타파하려는 디즈니의 선택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다양성이 ‘마케팅의 수단에 그치지 않느냐’는 지적은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이번 ‘백설공주’에서 디즈니가 보여준 행보 역시 ‘안전한 취사선택’으로 보였기에 이같은 비판은 지속될 전망이다.
주인공 백설공주 레이첼 지글러를 제외하고 이 영화에 유색인종 중(댄스 앙상블을 제외하고) 이름이 있는 역을 맡은 사람은 단 두 사람이다. 사냥꾼 ‘헌츠맨’을 연기한 흑인 배우 안수 카비아와 백설공주의 친엄마 왕비역의 라틴계 배우 로레나 안드레아다.
이블 퀸 ‘그림하일드’ 통치 하에서 ‘백설공주’는 무력하게 하인 신분으로 전락하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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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의 얼굴은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이블 퀸 그림하일드의 명령에 따라 백설공주를 포박하는 근위병 한 명으로 처음 크게 등장한다.
백마 탄 왕자 대신 백마 탄 도적단 두목 ‘조나단’이 백설공주의 진실한 사랑으로 나온다. 배우는 앤드류 버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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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난쟁이 설정은 더욱 작위적이다. 실사화 영화에 컴퓨터그래픽(CG)으로 난쟁이 캐릭터를 그려 넣으면서 ‘난쟁이가 아니고 마법 생물체(요정)’라는 설정을 추가했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캐는 이 난쟁이 ‘요정’들은 손에서 빛이 나와서 어디에 다이아몬드 원석이 묻혀있는지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곱 난쟁이 중 ‘멍청이(Dopey)’ 실사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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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디즈니가 보여주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은 어쩔 수 없이 줄거리 그 자체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중세 시대 왕과 왕비의 혈육인 공주가 핏줄로서 왕위 정당성을 가진다는 이야기가 애초에 현대의 PC적 관점과 어떻게 양립이 되느냐는 비판이다.
무남독녀 외동딸 백설공주는 매일 왕과 왕비의 손을 잡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왕은 그녀에게 일찍이 제왕의 교육도 시킨다. ‘네가 바로 이 왕국을 이끌어가게 될 거야’라면서 리더의 덕목 ‘친절’, ‘용기’ 등을 주입시킨다. 훗날 그림하일드에 쫓겨 숲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성으로 돌아와 왕좌를 탈환할 때 백설공주는 어릴 때부터 배워온 이같은 가치들을 잘 활용한다. 그렇다. 결말은 ‘공주가 왕자와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에서 ‘공주가 원래 자신의 것인 왕좌를 탈환한다’로 바뀌었다.
일곱 난쟁이 캐릭터는 ‘실사화’ 영화에서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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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당한 핏줄’을 가진 백설공주가 숲에서 돌아오자마자 백성들이 그녀의 뒤를 따르며 왕궁으로 전진하는 고전적 설정은 디즈니의 ‘PC적 세계관’과 부딪힌다. 그림하일드 통치 하에서 백설공주는 성안에 갇혀 청소만 해왔다. 수년간 백성들 앞에 나선 적이 없어 모두가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갔다. 통치 능력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공주가 단지 왕의 핏줄이란 이유만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다니. 역시나 ‘간편한 취사선택’이다.
영화 곳곳에 포진한 수많은 작위성과 모순이 신경 쓰이다 보니 레이첼 지글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를 노래해도 어딘가 마음이 불편하다. 그녀가 바로 이 다양성을 표방한 영화의 기수(旗手)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림하일드는 원작을 그대로 답습한 캐릭터다. ‘아름답지만 사악한 여왕’. 이 묘사를 갤 가돗이 문자 그대로 표현해냈다. 배우는 해야 할 일을 해냈고, 관객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그림하일드를 매력적으로 느꼈다.
주인공 공주 역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디즈니의 행보에 팬들은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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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에 이어 ‘백설공주’까지 어찌 된 일인지 빌런들이 더 호평받는다. 오는 2026년 개봉 예정인 ‘모아나’ 실사화는 실제로 오세아니아 혈통을 지닌 배우들을 캐스팅했다고 알려졌다. 디즈니 팬들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캐스팅을 했다’며 기대를 보내고 있다.
이쯤 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주인공 공주‘만’ 유색인종으로 캐스팅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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