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희 이란 U-23(23세 이하) 여자배구 감독이 이란 배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젊은 선수를 육성하면서 이란 여자배구를 아시아 5위권으로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사진=김두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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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란행 비행기를 탔는데, 너무 떨려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지금은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도자로서 욕심도 나고, 보람도 느끼네요.”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하고, 그 해 열린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선수권 대회 4위에 올랐다. 소속팀에서는 대통령배 4회 우승을 이끌었고, 슈퍼리그로 전환한 뒤에는 2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을 차지한 해에는 모두 베스트 6에 이름을 올렸고, 제9회(1992년) 대통령배에서는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했다. 지도자로 변신한 후에도 정규리그 우승(코로나19로 챔피언결정전이 열리지 않음)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정상에 올랐던 한국 여자배구 최고의 세터, 바로 이도희 이란 배구대표팀 감독이다.
이 감독은 지난해 주위의 걱정을 뒤로 한 채 혈혈단신 이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단 6개월만 해보자는 심정으로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감독은 “외국에서 지도자를 하고 싶다”며 그 열망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전했다. 어느덧 9개월이 지났다. 1년도 안 된 길지 않은 기간. 한국 배구의 DNA를 심어놓은 효과일까. 이란 여자배구의 잠재력이 조금씩 폭발하고 있다. 이 감독은 “한국에서 배구로 할 수 있는 경험을 다 해봤다고 생각했고 기회가 아무한테나 오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이란행을 결심한 이유를 전했다. 인생 후반전을 레전드의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도희 이란 U-23(23세 이하) 여자배구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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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2주도 안 돼 출전한 첫 대회서 동메달
경력이 풍부한 이 감독은 이란배구연맹의 선택을 받았다. 이란배구연맹은 이 감독이 아직 세계 변방인 이란 여자배구를 깨워주길 바라고 있다. 이 감독이 U-23 대표팀 감독과 U-17, U-19 대표팀 선수 육성 어드바이저 역할까지 맡긴 이유다.
이 감독은 “기본기가 한국배구보다 부족했다. (시간이 없어서) 서브와 서브 리시브, 블로킹만 훈련하고 출전했다. 막상 첫 경기에서 선수들이 훈련한 걸 다 발휘 못했다. 실수해도 괜찮으니 코트 안에서 있는 감정을 표현하면서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했다. 두 번째 경기부터 사기가 살아나더니 이기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이 감독의 다음 무대는 2024~2025시즌 이란 프리미어리그였다. 이란배구연맹은 유망주를 성장시키겠다는 기치 아래 U-20 대표팀을 자국 리그에 투입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정규리그에서는 9개 팀 중 2위에 올랐다.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 결승 티켓을 따진 못했지만 3위에 오르는 값진 결과를 이뤘다.
이 감독은 “예전에 팀 스폰서를 구해서 대회에 나섰다가 꼴찌를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연맹 예산으로 겨우겨우 출전했다. 대회 1라운드 시작 열흘을 앞두고 겨우 선수들을 모았다. 속공 전술만 갖춰서 경기에 나섰고 중간마다 전술만 조금씩 바꿨다”며 “다행히 일주일에 한 경기밖에 하지 않아서 반복 훈련을 할 시간이 있었다. 점점 수비와 전체적인 테크닉이 좋아졌다. 1라운드에서 4위를 하더니 2라운드에서는 1위 팀을 제외하고 다 이겼다”고 활짝 웃었다.
이도희 이란 U-23(23세 이하) 여자배구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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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의 적극적인 표현에 마음이 쏙
이란 선수들은 대부분 기본기가 약하다. 대신 흡수력은 빠르다. 조금만 가르쳐도 재미있어한다.
이 감독은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 실력이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인다”고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U-16 선수들을 선발하기 위해 지방을 몇 달 동안 돌아다니면서 1000명 가까이 지켜봤다”며 “추리고 추려서 30명을 선발해 훈련을 시켰다. 크로스 스텝, 사이드 스텝 등을 시켰는데 처음에는 잘 모르다가 따라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훈련을 하니 다들 재미있어했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도 흐뭇하게 한다. 이 감독은 “발리볼네이션스리그 대회에서 우리 팀 두 명이 처음으로 개인상을 받았다. 자기 이름이 호명되니까 나를 찾더니 ‘감독님 덕분에 상을 받았다’라고 고마워했다. 수훈 선수로 뽑히면 꼭 내 덕분이라고 말해준다”며 “선수들이 순수하고 감성적이다. 사실 저는 약간 이성적인 편인데, 선수들은 대화를 하고 나면 한 번 안아 보면 안 되겠냐고 한다. 감독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 사령탑 시절 이도희 감독. 사진=KOVO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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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모르게 겪었던 시련
선수들이 이 감독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연 이유가 있다. 이 감독은 “절대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하지 않는다. 훈련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설명해 준다”며 “훈련 이외의 시간에는 터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감독이 선수들을 잘 이해하는 이유가 있다. 명세터 출신이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모를 시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업팀에 와서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선배에게 밀리기도 했고 후배의 가파른 성장에 긴장하기도 했다. 슬럼프가 왔을 때는 머릿속에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초중고 때 계속 주전이었는데 실업팀 벤치에 앉아 있으니까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사실 누가 쳐다봤을까. 그런데 모두가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였다면 선수들의 마음을 잘 몰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여자배구의 기틀을 잡아라
이 감독은 올해도 이란 배구계를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03년생 미만 젊은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성장시키면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최우선 과제다. 그는 “이란 여자배구를 아시아 5위권으로 키우는 게 첫 번째 목표”라며 “내년에 U-20 아시아선수권대회는 3위 안에 드는 것도 목표다. U-18 아시아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글로벌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많이 만들겠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 감독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장기적인 개인 목표는 미국프로리그 지휘봉을 잡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배구는 여성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다. 대학이나 프로리그에 여자 감독들이 많다. 스태프로라도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김진수 기자 kjlf200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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