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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스타와의 인터뷰

    ‘케데헌’ 실사판 64크사나 “댄스 음악과 샤머니즘은 닮은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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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 음악과 테크노 만난 64KSANA

    수학도 준도, 연희 전공한 원재연

    국악 배우러 온 타무라 료 뭉쳐

    “댄스 음악은 샤머니즘과 닮아”

    헤럴드경제

    세종문화회관 여름 축제인 ‘싱크넥스트2024’에 출연한 64KSANA [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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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수부사제 왔네, 어떤 사제 불러줄고, 일적 월적 갑적 시적 수부사제야” (‘수부사(SUBUSA)’ 중)

    반복되는 리듬 위로 엇박자의 타악 소리가 얹어진다. 실사판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는 느낌이 스멀거린다. 때마침 가부좌를 튼 ‘그녀’가 주문 같은 주술을 왼다. 속사포 래퍼처럼 쏟아내는 알쏭달쏭한 문장 속에 영험한 기운이 피어난다. 64KSANA(64크사나)의 ‘수부사’다.

    서양의 테크노와 동양의 굿 음악이 만났다. 절묘한 만남 덕에 찰나의 시간예술은 영원을 들려준다. 이종 교합의 승리인 줄 알았더니, 64크사나의 준도는 “댄스 음악엔 샤머니즘적 측면이 있다”고 했다.

    64크사나는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음악계, 공연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 중 하나다. 스스로는 샤머닉 일렉트로닉 밴드라고 불린다. 올 여름 주요 음악 페스티벌마다 무대를 꾸몄고, 이젠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로 향한다. 세계적 음악 페스티벌인 SXSW 시드니 2025(10월 13~19일), 원더푸르트 2025(12월) 무대를 앞둔 64크사나를 만났다.

    테크노와 닮은꼴 무속 음악…클럽의 춤판도 결국 ‘샤머니즘’
    “2명의 성인 남자가 인도 카시국에서 생산된 여러 가닥의 명주실을 양 끝에서 잡아당기고 있을 때, 다른 남자가 와서 이를 단숨에 절단했다. 이때 64크사나가 경과했다.”

    ‘64KSANA’의 어원은 불교 경전 ‘대비대사론’에서 시작됐다. 산스크리트어로 ‘찰나’(아주 짧은 순간)를 뜻하는 ‘크사나’. 그것을 그룹의 이름으로 삼았다. 데뷔 앨범의 제목도 ‘순간’을 뜻하는 ‘64모먼츠(moments)’였다.

    64찰나에 동해안별신굿 잔치를 보러온 수부사자를 달래고(‘수부사’) 서울굿 대감놀이의 웃음(‘불사’)을 적는다. 반복되는 테크노 리듬 위로 미물을 유혹하는 청량한 방울 소리가 얹어지면 음악은 영원이 돼 아득하게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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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 쿼드페스타에서 단독 무대를 꾸민 64KSANA [허준호, 서울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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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크사나가 테크노와 무속음악을 결합한 신종 장르를 만든 것은 어찌 보면 ‘필연’에 가까웠다. 준도는 두 장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대 위 DJ가 리드해 같은 음악을 듣고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바이브가 공명한다고 해야 할까요. 멀리 가면 저 먼 시대에 다 함께 나선 사냥에서 멧돼지를 잡아 와 축제를 여는 공동체적 측면이 느껴졌어요. 그것이 결국 샤머니즘이 아닐까 싶었죠.” (준도)

    소위 현대의 음악과 전통이 결합하면 ‘전통의 재해석’처럼 보이기 쉽다. 64크사나의 음악은 어느 것의 재해석이라기 보다, 두 장르가 공평한 지분으로 만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이 팀은 멤버 구성부터 독특하다. 정교한 숫자의 세계에서 살던 수학과 출신 미국 유학파 준도, 경기도 이천에서 자라 거북놀이보존회에서 무동을 한 연희 전공자 원재연, 일본 전통타악을 하다 한국의 전통 타악에 반해 20여년째 한국살이 중인 타무라 료. 64크사나는 저마다의 음악 세계를 안고 뭉친 그들만의 ‘굿판’이다.

    ‘64크사나의 홍일점’ 원재연은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외도 아닌 외도’를 하게 됐다. 그는 “국악 장르의 정규교육을 받고 성인이 됐을 때,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도제식 교육에서 벗어나 내면에 집중하고 내 안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타무라 료는 64크사나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뒤늦게 합류한 멤버다. 국악을 배우러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 아내를 만나 정착하게 된 타무라 료는 “준도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무용 작업을 통해 음악을 처음 접했다. 아주 시원한 느낌이었다”며 “전자음악과 전통이 합쳐졌을 때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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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KSANA 준도, 원재연, 타무라 료 (왼쪽부터) [Chirs Isu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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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는 빌려온 것일뿐”…64KSANA가 말하는 오늘의 굿
    무턱대고 덤벼든 것도, 어설프게 끌어다 쓴 것도 아니었다. 세 사람 모두 공교롭게도 저마다 무가에 대한 탐구와 학습 시간이 길었다. 원재연의 경우 무녀로 굿을 배우기도 했다. 황해도굿, 제주도굿을 각각의 곡마다 차용해 저마다 다른 색을 내는 64크사나의 무대에서도 원재연은 마치 MZ 무당처럼 보이기도 한다.

    64크사나가 바라보는 굿은 음악으로 힘과 플랫폼으로의 힘을 모두 가진 예술적 유산이다. 타무라 료는 “각자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 모여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면 하나가 된다. 그 과정 자체가 굿이라고 생각한다”며 “굿판엔 틈이 있고, 질서 안에 무질서가 있다. 여러 주파수와 저마다의 리듬이 모여 음악으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준도 역시 “국악의 원형인 예술 장르이자 음악을 넘어 하나의 플랫폼으로 사람들을 묶어준다”며 “무대와 관객의 경계가 없다는 특징은 테크노, 댄스 음악이 플로어에서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다. ‘자연의 소리’, ‘자연의 박자’ 안에서 음악을 해온 원재연과 타무라에게 ‘칼박’을 요구하는 서양의 리듬 체계로 편입되는 것은 숨 막히는 일이었다. 타무라는 “박과 박 사이가 일정한 전자 음악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아 소모되는 느낌도 들었다”며 “서양적 사고방식이 만든 음악적 약속과 디테일 안에서 어떻게 나의 화두를 가지고 작업할 수 있을까, 일정하게 흐르는 음악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재연도 마찬가지였다. 메트로놈을 틀어놓은 듯 단 하나의 박자도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따라왔다. 그는 “기존에 연습하고 배운 장단이나 가락 이외에 무엇을 연주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며 “사물놀이를 할 때도 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데 점점 몰입하다 보면 화려한 변주도 나오게 된다. 박자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니 료와 주고받는 에너지를 재밌게 살릴 수 있었다”며 웃었다. 특히 강학벅으로 일정하게 흐르는 박자 안에서도 자유를 만끽한다는 것은 엄청난 만족감을 준다. 그는 “같은 음악이지만 나와 료의 연주는 매번 다르다. 각자의 자유도가 존재하는 음악이 바로 64크사나”라고 했다.

    64크사나의 음악엔 묘한 힘이 있다. 반복되는 리듬 위로 주술 같은 인성(人聲)과 전통의 타악 소리를 더해 일상을 비일상으로 뒤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세 사람의 굿판 위에서 현실, 혹은 속세를 벗는 듯한 초월적 감각에 요즘으로 치면 도파민이 터져 나온다. 그때마다 들려오는 신성한 주문은 때론 위로 같고, 때론 축원 같다. 종교를 소재로, 종교가 하는 이야기를 차용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나와 현재를 바라본다. 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특한 장르 안에 담아 ‘지금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준도는 “종교는 빌려온 것일 뿐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음악과 춤을 통해 현재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그 감각들이 쌓여 내가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64크사나의 음악을 듣고 이번주에도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경험과 해방감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관객과 함께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 함께 즐기고 나누고 싶다는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어요. 그게 64크사나가 하고 싶은 ‘오늘의 굿’이 아닐까 싶어요.” (64크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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