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호 납치 사건 모티브 영화 ‘굿뉴스’
진실로 설계된 거짓…관료주의·이념 풍자
“모든 믿은 것들에 대한 배신감·냉소 담아”
배우 설경구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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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진실은 달에 뒷면에 있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트루먼 셰이디’라는 사람의 명언으로 시작한다. 의미도, 맥락도 알 수 없는 이 한 줄의 명언은, 거짓을 진실처럼 설계하는 영화의 줄기와 이어지더니 결국 결말에서 관객들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친다. “명언을 만들어 놓고, 이 명언이 ‘거짓’이라는 것에서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변성현) 1970년 3월 발생한 일본항공 351편, 일명 ‘요도호’의 납치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한 블랙코미디 ‘굿뉴스’는 그렇게 출발한다.
영화는 반전에 반전, 반짝이는 위트와 풍자로 관객들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훤히 드러난 야망들이 춤추듯 뒤섞이고, 얼렁뚱땅 부딪히는 것을 지켜보는 소소한 웃음을 즐기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 만나는 건 복잡해진 생각들이다. 빈틈없는 대사와 연기, 현실과 만화를 오가는 미장센 등 영화의 모든 요소는 감독의 의도대로 기능하며 웃기지만 불편하고, 통쾌하지만 씁쓸한 ‘블랙 코미디’를 완벽히 구현한다.
“처음에는 감독이 걱정됐죠. 대본을 보니 너무 할 게 많은 영화로 느껴졌거든요. 게다가 블랙 코미디라는 것이 진입 장벽이 높잖아요. 안 웃기면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설경구)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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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잘하는 것들을 마음껏 펼쳐낸 작품으로 결국 자신의 대표작을 새롭게 써낸 ‘굿뉴스’의 변성현 감독, 그리고 어김없이 그의 작품 안에서 가장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하며 또 한 번 베테랑 배우의 진가를 보여준 ‘아무개’ 역의 설경구. 두 사람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각각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부터 ‘킹메이커’(2022)와 넷플릭스 ‘길복순’(2023)까지 두 사람이 맞춘 네 번째 호흡이다.
“70년대의 이야기, 하지만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
“제가 그냥 설경구 배우를 너무 좋아해요. 엄청 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번 영화에 들어가면서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도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내야 하고, 배우 역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으니까요. 제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죠.”(변성현)
변성현 감독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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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의 큰 줄기는 일본에서 반정부·반자본주의 무장 괴한에게 여객기가 납치된 상황에서 북한 평양으로 향하는 여객기를 한국에 착륙시키려는 무모한 작전을 둘러싼 이야기다. 그 가운데 ‘아무개’는 출입금지 구역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정체불명의 인물로, 김포를 평양으로 속이는 거대한 ‘거짓말’을 설계한다.
반면 볼품없는 행세와 구부정한 걸음걸이, 또렷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무개’의 정체성은 정작 그의 이름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 변 감독이 내놓은 설경구 활용법은 홀로 극에 섞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아무개’를 맡기는 것이었다. 설경구는 “이런 캐릭터는 다른 감독이 하라고 했으면 안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연기자에게 가장 악평은 ‘상대 배우와 따로 논다’, ‘안 섞인다’라는 것인데, 그것을 대놓고 하려니 어려웠다. 섞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투명인간 같기도 하고 관찰자 같기도 한 느낌도 들었다”면서 “많은 고민 끝에 감독과 내린 결론은 대놓고 못하는 ‘연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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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감독은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굿뉴스’를 큰 오케스트라 세션에 비유하면서, ‘아무개’는 시간 여행자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다”면서 “어쩌면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기도, 어쩌면 감독을 대신해 들어가서 관객과 소통하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다짜고짜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밀어놓고선, 이어 벌어지는 소란스러운 ‘난리통’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정부와 관료주의, 이념과 사상들의 민낯을 망설임 없이 비추고 비튼다. 뭐 해보지도 못하고 ‘최선을 다했다’며 자찬하는 정부와, 수백 명의 운명을 그저 다수결로 결정하려는 민주주의, 평등한 세상을 바란다면서 정작 대장을 떠받드는 공산주의자. 이 모든 것들에는 오늘날의 세상을 바라보는 변 감독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있다.
변 감독은 “진실에 대한 명언은 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고, 그 안에는 이제까지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도 있었다”면서 “이념이나 사상, 국가에 대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1970년은 이념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탈냉전 시대였지만, 지금도 세상은 ‘이념’이 다르다는 같은 이유로 부딪힌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념을 지킨다는 사람들이 그것과 상당히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많이 봤다. 그것에 대한 나의 냉소가 (영화에) 담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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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도 1970년의 이야기를 하는 ‘굿뉴스’가 결국엔 오늘의 이야기라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진실과 같은 거짓이 있고, 거짓 같은 진실도 있다”면서 “70년대가 배경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무개’와 함께 영화를 이끄는 것은 중앙정보부장 ‘박상현’과 그의 지시에 따라 비행 중인 여객기를 또 납치하는 ‘더블 하이재킹’ 임무를 맡은 공군 중위 ‘서고명’이다. 권력과 비겁함을 동시에 가진 상현, 이름을 드높이려는 야망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고명의 역할에는 류승범과 홍경이 낙점됐다.
변 감독은 “관료들만 나오는 신이 늘어질 수 있는데, 블랙 코미디에 맞게 그 신을 책임져줄 사람이 필요했고, 적임자로 류승범밖에 생각나지 않았다”라면서 “홍경은 개인적으로 그 나이 또래 중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많이 담을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서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재미있으면 주제도 필요없어…웃고 생각하는 영화”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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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주는 블랙 코미디의 맛은 배우들 간의 연기 앙상블에서 나온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풍성한 상차림을 실컷 맛보고 즐기는 것도 ‘굿뉴스’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설경구는 “이상하게 호흡을 맞추니 잘 안되더라. 결국에는 ‘호흡을 맞추지 말자’고 하고 갔다”면서 “류승범과도 네 갈 길 가자고 하면서 연기했다. 서로 믿고 하는 연기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영화에는 박해수, 윤경호, 김성오 등 한국 배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유명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전차남’의 야마다 타카유키는 한국으로 급파된 운수정무차관 ‘신이치’ 역을, 그리고 ‘냉정과 열정 사이’, ‘암살교실’의 시니아 깃페이는 납치된 여객기 기장 ‘쿠보’로 등장한다. 여객기를 납치한 적군파의 리더와 부리더는 카사마츠 쇼, 야마모토 나이루가 분했다.
변 감독은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일본 배우들에게 연락했는데, 다행히 내 존재를 알고 흔쾌히 승낙을 해줬다”면서 “야마다 타카유키는 일본에서 주연 배우임에도 작은 역할을 맡아줘서 고마웠다. 이유를 물었더니 ‘재미있고 안 해본 영화여서’라고 하더라”라고 밝혔다.
변성현 감독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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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는 여타 다른 블랙 코미디 작품들과 비교해도 어딘가 분명히 다르다. 비장한 결전의 순간이 갑자기 서부극의 한 장면으로 치환되는가 하면, 극 속에서 별일 없이 움직이던 ‘아무개’가 갑자기 카메라를 보고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갑자기 렌즈를 보고 이야기하라니 뭔가 잘못된 것 같았어요.”(설경구) 이를 통한 감독의 의도는 관객들이 객관적인 관찰자적 입장에서 한 편의 소동극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변 감독은 “관객들이 순간 고명에게 자꾸 몰입하려고 하면, 그 안에서 아무개가 ‘어떤 꼬락서니로 일처리를 하는지 지켜봐 주세요’하면서 거리를 두길 바랐다. 물론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는 연출이라고는 생각했다”면서 “영화를 끝내고 나면 늘 아쉬운 것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도 그때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 같아서, 이번에는 ‘하고 싶은 것 다 했다’, ‘100%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굿뉴스’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요도호 납치 사건의 이야기이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변함없이 시대를 지배하려는 관료주의와 이념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동시에 영화는 기대와 좌절을 겪는 ‘고명’이라는 인물을 통해 오늘날 젊은 세대의 현실을 함께 비춘다. 감독과 배우가 가장 영화에서 주목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지점도 여기다.
배우 설경구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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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는 “서고명을 통해서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노력하는 젊은 세대가 좌절하고 찌그러지고를 반복한다”면서 “이것은 그 시대만이 아니라 이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변 감독은 “사실 영화에 한 가지의 로그 라인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재미있으면 주제도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전작 ‘킹메이커’를 다시 보면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르치려 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번에는 관객들이 웃으면서 보고, 생각할 거리를 안고 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다음 행보에 관한 질문을 건넸다. 두 사람의 ‘다섯 번째’ 호흡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함께다. 두 사람 모두 손사래를 치면서도 잔뜩 가능성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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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했던 이야기, 안 했던 배역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반복돼 나오는 저만의 표정을 보는 것이 괴롭거든요. 이전에 했던 것을 또 써먹는 것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잖아요. 변 감독과는 부산에서 마지막에 결별 선언하고 헤어졌는데,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설경구)
“아직 차기작은 생각 해놓은 것이 없어요. 개인적으로도 안 쉬고 빨리 생각이 났으면 좋겠네요. 설경구 선배와는 다음에 만나지 말자고 단도리를 치긴 쳐놨는데요, 사실 여전히 제일 믿음이 가는 배우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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