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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금)

    [스브스夜] '꼬꼬무'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깨달아" 대한민국 최악의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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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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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대한민국 최악의 교통사고의 날을 추적했다.

    1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미스트 -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라는 부제로 대한민국 최악의 교통사고가 일어난 그날을 조명했다.

    황금연휴의 시작이던 2006년 10월 3일, 고속도로 상황실에서는 서해대교를 예의주시했다. 당진과 평택을 잇는 왕복 6차로 해상 교량인 서해대교는 평소에도 안개가 심한 구간이었던 것.

    특히 이날 서해대교는 차량 식별 조차 되지 않는 정도의 해무로 고속도로 상황실에서는 안개주의 감속 운전을 권고했다.

    그런데 그때 서해대교 위를 달리던 두 대의 트럭이 접촉 사고를 일으켰고, 그 후 뒤 따르던 차량들이 연쇄 추돌을 일으킨 것.

    최초 신고 당시 3중 추돌이었던 사고는 점점 늘어나며 29중 추돌 사건이 되고 이는 대한민국 최악의 교통사고 참사로 기록되었다.

    여기저기서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고 처참한 모습의 사람들이 눈앞에 보였던 것.

    사실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아수라장, 사고 현장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가 귀가가 늦어진 조말예 씨 부부는 연쇄 추돌 사건의 피해자. 이들은 앞에 가던 차량과 부딪히며 사고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차량에서 급히 내렸다.

    카 캐리어에 차량을 잔뜩 싣고 달리던 트레일러 차량 운전자 홍 씨. 무사고 12년 차 베테랑 탁송 기사 홍 씨는 앞서간 동료의 연락을 받고 조심조심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2차선과 3차선 꽉 막혀있으니 1차로로 오라는 이야기에 1차로로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차량 앞으로 한 여성이 등장했다.

    이에 홍 씨는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 충격으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멈춰 섰다. 그리고 그는 차량 뒷바퀴에 다리가 깔린 채 쓰러진 여성을 발견했다. 이 여성은 바로 말예 씨였던 것.

    황 씨는 가까스로 말예 씨를 끌어당겼고 사고 현장에서 20미터 이상 떨어진 곳으로 그를 끌고 옮겼다.

    그런데 이때 카 캐리어 뒤를 버스가 들이받았다. 이 차량에는 민구와 어머니, 그리고 완선 씨 등이 타고 있었던 것. 그리고 이어 버스 우측면을 탱크로리가 들이받으면서 하나밖에 없는 버스 출입구가 완전히 막혀버렸다.

    불이 붙겠다는 공포 속에 완선 씨는 버스 뒤쪽 창문이 깨진 것을 발견했고 이곳으로 승객들이 하나 둘 탈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완선 씨는 피범벅이 되어 의자 밑에 쓰러져 있던 민구와 그를 끌어안고 우는 그의 어머니를 발견했다.

    카 캐리어 상판이 버스 앞 유리를 뚫고 들어오며 민구의 머리로 향했고 이에 부딪힌 민구가 의자 아래로 떨어졌던 것이다.

    완선 씨는 어머니를 도와 민구를 구조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에 더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ㅈ;만 화물 트럭의 엔진이 밖으로 튕겨 나오며 주변 차량에 불이 붙었고 버스에도 불이 서서히 옮겨 붙었다.

    민구와 최후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던 어머니.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나타난 남성이 민구를 들어 안아 밖으로 끌어내주었다.

    하행선을 지나던 한 남자가 중앙분리대를 뛰어 넘어와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고 이어 황 씨 등 사고 현장에 있던 사고 당사자들이 구조에 가세했던 것.

    최악의 상황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사람들, 진정한 영웅들의 등장이었다.

    최초 신고 시각 7시 40분. 그런데 20분이 넘도록 구조대가 도착하지 않았다.

    소방대원들도 당황할 정도로 시야 확보가 어려웠던 짙은 안갯속에서 갓길로 이동한 구조 차량. 그런데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갓길을 점령한 일반 차량에 구조대원들은 제발 길을 비켜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소방차를 따라가면 빨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소방차 뒤를 쫓는 일반 차량들 때문에 구조 차량 한 대가 앞으로 가면 뒤에 따르던 다른 구조 차량이 막히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 때문에 소중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이에 결국 구조대원들은 수십 킬로의 장비를 나눠 들고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곳곳에서 도와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이 이어졌고 구조대원들은 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사고 현장으로 향하는 도중 또 다른 피해자들을 구조했다. 이에 사고 현장에 구조대 도착 시간은 더욱 지체되었다.

    하행선, 평택 방향에서도 구조대가 출동했다. 그런데 평택 IC 도착하자마자 구조 차량은 꼼짝도 못 하고 멈추고 말았다. 사고 현장을 구경하는 사람들 때문에 차들이 모두 정차하고 있었던 것. 이에 5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약 20분 후에 도착하며 그렇게 소중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당시 구조에 참여한 구조대원은 당시 트럭에 타고 있던 운전자를 구조하지 못한 게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사람이 생으로 타는 거 보셨어요? 저는 그 현장을 목격했는데 아직까지 못 구해준 게 아쉽다. 그분한테 진짜 미안하고 서해대교 이야기를 하면 그렇다"라며 눈물을 흘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단 몇 초 사이에 엇갈린 삶과 죽음, 작은 배려가 있었다면 모두 구할 수 있던 소중한 생명이었기에 끝끝내 아쉬움이 남았다.

    첫 신고 40분 후 장비를 들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들. 그런데 이들이 구할 수 있는 생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백골이 된 시신들만 남아있었던 것. 이에 구조대가 할 수 있는 것은 할 시신을 수습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병원에 도착한 생존자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버스에서 구조되었던 중학생 민구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던 것.

    부상자 중 가장 먼저 병원에 도착했지만 구급차량에서만 무려 50분 보낸 민구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고 그대로 사망했다. 그런데 민구의 어머니는 시신조차 찾지 못한 유가족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야 하는 생존자들 때문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사망 12명, 50명이 넘는 부상자의 대참사. 이 대형 참사는 사전에 막을 수 없었을까.

    평소 가시거리 1km 이상이었던 서해대교. 그런데 사고 당일 가시거리는 61m에 불과했고 운전자 체감 가시거리 10m 정도였다.

    통제가 필요했던 상황이었지만 한국도로공사 측은 안개주의 감속주행 여섯 글자 경고만 했을 뿐이었다.

    해외의 경우 방무벽을 설치해 안개의 유입을 차단하지만 서해대교는 어떤 안전시설도 만들어져 있지 않았던 것. 이에 유가족들은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 측은 감속 운행 안내에도 사고가 난 것은 운전자 잘못이라며 책임을 피했다.

    그리고 법원도 도로공사 측에 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사고 19년 후, 그때 일을 떠올리는 것조차 괴롭고 힘들다는 생존자들과 유가족들.

    당시 트럭에 다리가 끼는 사고가 났던 조말예 씨는 가까스로 생존했지만 남편은 잃고 말았다. 신분증과 소지품이 발견되지 않아 무연고 시신으로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던 그의 남편은 뒤늦게 가족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말예 씨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롭다는 말예 씨의 딸은 "우리 가족이 대형 사고의 피해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누구도 완벽하게 안전하게 살 수는 없다"라며 사고는 당장 내일의 나에게도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이라며 이것에 대한 것을 모두가 무겁게 받아들여주길 바랐다.

    서해대교 사고 후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문제로 수차례 무산되었고 결국 2015년 2월, 영종대교 106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 사상자 65명의 안갯길 참사에 전문가들은 "9년 전 서해대교 사고 때 안전 대비책만 제대로 마련했어도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결국 정부는 또다시 예산을 들여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소중한 것을 놓친 후에야 깨닫고 마는 것. 마지막으로 방송은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며 더 이상 희생을 통한 뒤늦은 깨달음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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