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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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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은 가장 진실한 땅”…故 윤석화의 불꽃 같은 생, 대학로에서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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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동료 70명 참석해 영결식

    배우 박상원 “불꽃 같은 삶 살았다”

    마음의 고향 대학로 찾아 노제도

    헤럴드경제

    21일 서울 종로구 한예극장 앞에서 열린 배우 윤석화의 노제에서 유가족이 영정을 들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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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곱씹어 퍼지는 노랫말이 고인을 닮았다. 애달픈 후렴구에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가족과 지인도, 대학로를 오가는 시민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관객은 늘 나의 친구”라고 했던 고인처럼 공연을 사랑하는 이들 모두 그의 친구였다.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배우로 남고 싶다”던 배우 윤석화가 그의 영원한 고향인 대학로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배우이자 연출가, 제작자로 활동하며 한국 공연예술계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고인이 떠나는 길엔 오랜 인연들이 나와 배웅했다.

    21일 오전 8시께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서 교회 예배 형식으로 치러진 고인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유족과 동료 예술인 70여명이 참석한 영결식에선 3년여의 뇌종양 투병 끝에 생을 다한 고인의 안식을 바라는 기도와 찬송이 이어졌다.

    조사를 맡은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영결식이) ‘윤석화 권사 천국환송예배’라는 제목이 연극 같아서 믿어지지 않는다”며 “잠시 후에 어디선가 등장해 대사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두 사람은 1985년 뮤지컬 ‘애니’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어 “윤석화 누나는 누구보다도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누구보다도 솔직했고, 멋졌다”며 “3년간의 투병과 아팠던 기억은 다 버리고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뛰어노시길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영결식에선 노숙인 대상 ‘밥퍼’ 봉사로 알려진 최일도 다일공동체 목사가 집례를 맡았다. 최 목사는 “35년 전 몹시도 추운 겨울, 고인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치마를 두르고 나타났다”며 “청량리뿐 아니라 탄자니아ㆍ네팔까지, 낮고 낮은 곳에서 배고픈 형제들에게 밥을 퍼주던 고운 손길, 밥 짓는 솥 앞이 당신의 무대였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영결식에 이어 유족과 동료들은 오전 10시께 고인이 2002∼2019년 직접 운영했던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현 한예극장)로 자리를 옮겼다. 고인이 2017∼2020년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주관하는 노제로 향하기 위해서다. 이날 노제에는 배우 박정자와 손숙,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출가 손진책 등 동료 예술인 1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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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에서 진행된 고(故) 윤석화 노제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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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이 추도사를 통해 고인이 살아온 생을 관통하는 헌사를 전했다.

    그는 “무대를 삶의 중심에 두고 연극과 뮤지컬,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연출가·제작자로 한국 공연예술계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셨다”며 “선생님께서는 생전에 연극을 시작한 순간을 ‘우연이었지만, 마치 필연처럼 연극을 시작했다‘고 회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화 선생님에게 연극은 언제나 ‘가장 진실한 땅’이었다. 선생님은 연극이란 ‘대답될 수 없는 대답을 던지는 예술’이라 말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건네고, 그 질문이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투병 중에도 무대를 떠나지 않으셨던 이유 역시 그 진실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길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는 무대에 대한 열정으로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연기 인생을 사셨던 한 명의 배우이자, 한 시대의 공연계를 이끈 위대한 예술가를 떠나보낸다”며 “그러나 윤석화 선생님이 남긴 무대와 질문, 그리고 예술과 사람을 향한 사랑은 한국 공연예술의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숨 쉬며 후배 예술인들과 관객들의 길을 밝혀줄 것”이라며 추모사를 맺었다.

    노제에선 고인이 제작한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 를 함께 했고 지금은 배우, 제작자, 교수, 스태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꽃밭에서’를 불렀다. 배우 최정원, 배해선, 박건형을 비롯한 16명이 함께 했다. 고인의 남편인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도 딸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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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서울 종로구 한예극장 앞에서 배우 윤석화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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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간 차려진 빈소엔 지인, 동료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찾아와 고인이 남기고 삶을 다시 돌아왔다.

    고인이 뇌종양으로 쓰러지기 전 출연했던 연극 ‘햄릿’에 배우로 함께 출연했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연극계를 위해 한참 더 역할을 해야 할 때인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며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윤석화 씨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병상에서 털고 일어나면 작품을 꼭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고인이) 여러 차례 하기에 빨리 회복해서 좋은 작품을 하자고 약속했다”며 “제약이 없는 곳에 가서 좋은 작품을 많이 꿈꾸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햄릿’을 연출한 손진책 연출가는 “‘햄릿’을 하면서 가끔 피곤하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병의 시작일 줄은 몰랐다”며 “연극계 최초의 스타였는데 재능을 다 못 피우고 보내서 안타깝다. 본인도 아쉽겠지만, 우리도 아쉽기에 곧 만나서 좋은 작품을 할 것 같다”는 마음을 전했다.

    손 연출가의 부인이자 고인과 민중극단에서 함께 활동한 김성녀 배우도 “(고인이) 이루지 못한 것을 우리가 대신 이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착잡하다”며 “먼저 (하늘로) 가서 연극단체를 만들어 놓으면 우리가 나중에 따라가서 함께 거기서 연극을 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한다”고 애도했다.

    뮤지컬 배우 남경주는 “항상 예뻐해 주시고 늘 공연에 항상 찾아오며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셨다”며 “한 때 윤석화의 시대가 있었다. 누님이 무대에서, 그리고 삶에서도 항상 좋은 모습을 오래 보여주신 그대로 그렇게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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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연극 스타’인 배우 윤석화가 지난 2015년 6월 17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열린 임영웅 연출인생 60주년 헌정 1인극 ‘먼 그대’ 프레스 리허설에서 열연을 펼치는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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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뒤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에 출연하며 연극계 스타로 발돋움했다. ‘신의 아그네스’는 첫 공연부터 전석 매진을 기록, 당초 한 달 예정이던 공연은 해를 넘겨 이어져 10만 관객을 동원하는 한국 연극사에 유례없는 대기록을 세웠다. 연극 외에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94), ‘명성황후’(1995),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2018)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매체와 광고를 넘는 명실상부 연극계 1세대 스타 배우였다.

    2002년 서울 대학로에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개관한 정미소는 실험적 연극의 산실이었다. 2019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기까지 ‘19 그리고 80’, ‘위트’ 등을 공연하며 신선한 작품들을 올렸다.

    제작자로서도 발군의 역량을 발취했다. 그는 ‘토요일 밤의 열기’를 비롯해 여러 뮤지컬을 직접 연출·제작했고, 제작에 참여한 ‘톱 해트’는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았다. 1995년엔 엔터테인먼트사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만화영화 ‘홍길동 95’를 제작했고,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받은 여자연기상만 네 번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여자연기상, 이해랑 연극상 등도 수상했다. 2005년 대통령표창과 2009년 연극·무용부문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정부는 연극계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인정해 문화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인은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폭넓은 연기 영역을 보여줬고, 다수의 연극상·백상예술대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공연예술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평가받았다”며 “배우 활동과 더불어 연출가, 설치극장 ‘정미소’ 대표로서도 역할을 수행하고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해 연극계 발전에 다방면으로 기여했다”고 문화훈장 추서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고향 대학로로 돌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고인은 용인공원 아너스톤에서 영면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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