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권 회장(오른쪽)과 김영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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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설 명절 특집으로 방송된 KBS 1TV의 다큐멘터리 두 편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배우 김영철이 진행한 재외동포 성공 휴먼다큐 ‘글로벌 한인기행 - 김영철이 간다’ 2부작이었다.
지난 17일 방송된 1부에서는 애틀랜타 뷰티 산업의 리더 박형권 회장을, 18일 방송된 2부에서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위령비 이전에 앞장선 권양백 회장을 만나 이들이 타국에서 치열하게 일궈낸 성공의 비밀과 한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조명했다.
먼저 이 프로그램의 프리젠터인 국민배우 김영철은 K-뷰티로 미국을 사로잡은 애틀란타의 뷰티 마스터(Beauty Master)의 박형권 회장과 만났다.
애틀랜타는 조지아주의 주도이자 미국 동남부의 최대도시다. 코카콜라와 CNN 본사가 있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가와 오바마대로가 있을 정도로 흑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 ‘흑인들의 성지’다.
▶미국에서 K-뷰티 산업으로 블루오션 개척
박형근 회장은 애틀란타에서 시작해 K-뷰티 산업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처음에는 가발판매점부터 시작해 관련되는 아이템을 확장시켜, 지금은 조지아주 10개, 플로리다주 5개 등 총 15개 매장을 운영하는 거대한 K-뷰티 유통 왕국을 건설했다.
뷰티 마스터 애틀란타 매장에 들어가보면 한인으로서의 자긍심은 물론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자랑스러운 재외동포의 본보기임을 금세 느낄 수 있다.
애틀란타점 매장 크기만 웬만한 경기장보다 큰 2천평(6,611㎡) 규모다. 진열대에는 색깔별, 제품별로 25만종의 헤어, 미용 제품들이 전시해 있다.
박 회장의 대형 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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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한국의 색조화장품 제품만 쓰다가 2년전쯤부터는 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과 함께 스킨 로션 등 기초화장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K-뷰티 제품을 사용해본 미국인들은 하나같이 “피부가 더 건강해지고 나이보다 젊어보인다”고 사용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형근 회장은 뷰티 마스터 매장을 단순한 미용용품 판매점을 넘어 다문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연결된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다.
박 회장은 2000년에 미국에 건너가 2001년 배달음식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8개월만에 접어야 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러다 가발 등 뷰티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부터 10년간 외식도 안하고 소비를 줄이며 이를 악물었다.
“10년간 지각 한번 안했으니,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제가 가족들의 자유를 뺏었던 것 같다.”
▶열심히 하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하자” 정신
박형근 회장의 성공스토리에는 중요한 점이 있다. 열심히 하는 것만이 아니다. “함께 하자” 정신이다. 박 회장이 제일 잘하는 영어도 “I can do it”이 아니라 “We can do it”이다. 이 정신은 인종과 문화의 장벽도 거뜬하게 넘게 했다.
비싼 제품을 매장 밖에 내놓으면 “위험하다” “망한다”고 했지만, 박 회장의 ‘뷰티 마스터’에는 한번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박 회장은 평소 고객들과의 신뢰를 중시했다.
비오는 날에는 우산도 받쳐주고, 무엇이든 도와준다. 고객들이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다. 집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게 했다.
박 회장이 선물을 가득 들고 직원 집을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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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직원들이 박 회장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신뢰관계가 얼마만큼 튼튼하게 구축됐는지를 짐작케한다. “꼼꼼하지만 좋은 상사다. 그의 지적은 ‘더 잘해보자는’ 것이어서 좋다.”(매장 매니저) “힘든 순간마다 그가 있었다. 저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살면서 맞는 모든 기쁜 순간에 그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세네갈 매장 직원)
뷰티 마스터 직원인 마마둔은 미국 10위권에 드는 대학인 조지아 공대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주말에는 ‘뷰티 마스터’에서 근무하며 함께 하고 있다.
“직원들이 나를 도와줘 내가 이 자리까지 왔는데, 권위적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 모든 직원들에게 고맙다.”(박형근 회장)
박 회장은 2018년부터 지금까지 150여명의 청년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흑인역사기념의 달’ 행사에는 의상 등을 기부한다. 주변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그의 모습은 그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그는 돈을 많이 버는 게 성공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다 같이 성장하는 게 성공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박 회장이 지역사회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람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사업 트렌드 읽기는 계속된다…흑인들은 머리 가꾸기 위해 수입 30% 쓴다
박 회장은 성공한 후에도 사업 트렌드를 읽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흑인들은 머리를 가꾸기 위해 수입의 30%를 쓴다는 말이 있다. 요즘도 헤어숍을 자주 찾아 미용사와 손님들과 대화하며 유행 스타일을 분석하고 있다. 박 회장은 K-뷰티 스타트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뷰티 전시회인 코스모프로드에 참석해 “좋은 회사 있으면 같이 투자해, 홍보도 하겠다”고 말했다.
박형근 회장(왼쪽)과 김영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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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철이 “애틀랜타 파더!”라고 부른 박형권 회장의 성공 키워드인 ‘윈윈’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만했다. 거대한 매장, 화려한 성과, 그리고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인간적인 매력을 통해 현지 직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비결을 ‘김영철이 간다’가 잘 보여주었다.
한편, 슈가로프 골프장 안에 조성된 고급 주택단지에서 박 회장의 대저택을 찾은 김영철은 문을 열자 퍼지는 구수한 된장 냄새와 3대가 모여서 식사하는 화목한 모습에 “집은 완전히 미국식인데, 집 안에 된장 냄새가 물씬 풍기네요”라고 감탄했다.
박 회장 가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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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K-뷰티의 대부 박 회장과 함께 손님 방 침대에 누워 미국에서 인종 불문하고 가장 많이 팔린다는 K-마스크팩 체험도 했다. 성공한 재미교포 사업가의 화려함과 치열함, 그리고 소박한 가족애가 교차하는 반전 매력을 통해 ‘사업가 뷰티마스터 박형권 회장’과 ‘인간 박형권’의 진솔한 이야기도 함께 공개됐다.
직원들을 소개하는 권양백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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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사람” ‘히로시마의 거인’ 권양백 회장
2부에서는 원폭의 상처와 조선인이라는 차별을 딛고 히로시마 고액납세자 1위에 오른 재일동포 기업인 권양백 하쿠와그룹 회장(82)의 삶이 깊이 있게 조명됐다.
김영철은 ‘히로시마의 거인’ 권양백 회장을 만나기 위해 일본 삼대 절경 중의 하나로 꽃사슴이 한가로이 노니는 히로시마의 앞섬 미야지마 섬을 찾았다.
권양백 회장의 부친은 15살에 일본에 건너왔다. 아버지의 가난과 차별의 굴레는 자식에게 이어졌다. 권 회장은 “조선인은 배움과 일자리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취직할 데도 없었고 토목 아니면 위생 노동밖에 없었다. 위생 노동은 분뇨 수거 노동이나 쓰레기 소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권양백 회장의 출발도 단 한 대의 분뇨 수거차였다.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분뇨수거차를 금차로 바꾸었다.
“저는 직원들과 일심동체다. 직원이 아프면 나도 아파. 직원이 중요하다. 직원이 재산 아닙니까.”
▶출발은 단 한 대의 분뇨 수거차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따뜻한 리더였다. 정장을 입고 분뇨 차 호스를 끌어당기는 일을 직접 도와준다. 이런 노력 덕분에 권 회장은 직원 1500명에 6개의 자회사를 거느리며, 빚이 없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노무라 증권의 한 간부는 권 회장의 하쿠와 그룹을 “자금력과 신용이 좋은 회사. 무엇보다 사람을 당기는 권 회장의 판단력, 속도가 강점인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권 회장 가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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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회장은 차별과 가난, 재일동포로 살아야 했던 설움을 딛고 ‘정정당당하게 사업하자’는 철칙 하나로 히로시마시 고액납세자 1위로 등극했다. 권양백 회장은 “한국 사람이 이렇게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는 걸 내가 보여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 말 속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정정당당하게 지켜낸 한 재일동포 기업인의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손자, 며느리들을 데리고 조상의 묘가 있는 경북 청송을 방문하면서 “우리는 한국인이다”며 근본을 잊지 않도록 가족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히로시마시에서 고액납세자 1위 등극
120만여명의 인구가 사는 히로시마시의 재일교포는 6400명 정도. 권 회장은 민단 학교의 520명에 장학금을 지원했다. 히로시마 민단 부단장은 “권 회장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저희 동포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권양백 회장의 성공은 결코 개인의 부와 명예에 머물지 않았다. 재일동포 2세인 권양백 회장은 1944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악몽 같은 원폭을 겪었다. 당시 조선인 원폭 사망자만도 2만여명이나 된다고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먹고 살기위해 일본, 특히 히로시마와 오사카시 등지로 많이 갔다. 그래서 히로시마 원폭은 한국인의 비극이기도 하다.
히로시마 평화의 공원내 위령비를 참배하는 권 회장과 김영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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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이 그때 산이 움직였다고, 산이 솟아올랐다고 하시더군요”
김영철은 권양백 회장과 함께 원폭 희생자들의 아픔이 새겨진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았다.
김영철이 당시 무고한 한국인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울컥한 감정을 보이자 권양백 회장은 “히로시마에 사는 한국 사람은 왜 이렇게 불쌍하나 싶다. 위령비를 볼 때 진짜 불쌍하다”라며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이곳 땅에서 어렵게 살아오고, 이런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강제동원된 노동자, 생계를 위해 있던 한국인들이 피해자가 됐다. 죽는 것도 불쌍한데, 왜 죽어서도 차별받느냐.”
▶“한국인은 왜 죽어서도 차별받느냐”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평화공원 내로 이전
피해자임에도 피해자라 말하지 못했던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일에 꾸준하게 앞장서 온 권양백 회장은 마침내 1999년 끈질긴 설득과 노력 끝에 방치돼 있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원폭돔이 있는 ‘평화의 공원’ 안으로 이전하며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스러져간 이들이 모두 평화롭게 계시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위령비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무려 50년이 걸렸다. 초기 위령비 이전 운동을 추진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권 회장의 당시 모습은 청년 같았다.
히로시마 평화공원내에 있는 원폭 한인 희생자 위령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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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운 한국인 전설의 타자 장훈(85)과의 만남 현장도 공개됐다. 히로시마에서 나고 자란 장훈은 자신도 원폭 피해자다. ‘원폭 한인 희생자 위령비’에는 당시 12살로 사망한 장훈의 큰 누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장훈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권양백 회장은 “장훈 씨를 보면 힘을 얻는다”라며 존경심과 고마움을 드러내, 차별을 실력으로 돌파한 재일동포라는 공통점으로 통하는 두 거인의 우정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장훈도 “재일동포로서 권 회장을 존중합니다”라고 말했다.
장훈 전 야구선수(왼쪽)와 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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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회장은 하루 아침에 직업을 잃은 야구선수들을 위해 사회인 야구단을 인수하기도 했다. 매년 20억원의 손실을 보지만 권 회장은 돈보다 의리를 중시했다. 사회인 야구단은 도시대항전에서 한때 4강에 오른 적도 있다. 야구단의 한 단원은 “회사 차원에서는 손해지만 다시 야구의 꿈을 좇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 명의 기업인을 넘어 ‘인생의 선배’
하쿠와 그룹의 직원들은 권 회장을 북극성, 태양 같은 존재라고 했다. “북극성, 가장 빛나는 별이다. 목표로 삼고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모두 비춰주고 밝게 해주는 태양과 같은 존재다.”
권 회장은 사업이 되는 맨션을 짓지 않고 지역주민을 위해 18년간 적자인 호텔을 끌어안는 등 동포를 넘어 일본인들까지 감동시킨다.
권양백 회장은 이처럼 ‘원폭 한인 희생자 위령비’ 이전 사업, 장학 사업, 지역 의료와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공헌을 이어가며 한인사회의 리더로 존경받고 있다. 체구는 작아도 누구보다 의지와 배포가 큰 거인인 권양백 회장의 삶을 따라가며 어느새 그를 한 명의 재외동포, 한 명의 기업인을 넘어 ‘인생의 선배’로 존경하게 된 김영철은 “제가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권양백 회장은 “영철아, 고마워”라며 흔쾌히 답했다.
‘동생’ 김영철과 ‘형님’ 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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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으로 마련된 이날 방송은 단순히 일궈낸 부의 크기가 아닌 그 숫자 뒤에 숨은 눈물과 다짐, 재일동포로서 자기 존재의 증명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한 기업인의 삶을 통해 재외동포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짚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
세계 각국에서 한인의 자부심과 위상을 드높이며 치열하고 위대하게 살아가는 재외동포들의 삶을 만나는 여정, 세계한인총연합회(회장 고상구)와 함께하며 강한 공영성을 지닌 KBS 1TV ‘글로벌 한인기행- 김영철이 간다’는 앞으로도 쭉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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