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데뷔한 14년 차 슈퍼스타
분노에서 고백까지…6단계 진화론
‘글로벌 전략’으로 돌아온 ‘아리랑’
완전체 컴백을 앞둔 방탄소년단의 2026년 모습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3년 9개월 전, 방탄소년단(BTS)은 데뷔 9년의 궤적을 갈무리한 앨범을 내며 ‘완전체’로서 활동에 쉼표를 찍었다. 타이틀곡은 ‘옛 투 컴(Yet To Come)’. 정상에 선 ‘21세기 비틀스’가 K-팝 사상 유례없는 기록들을 만들며 느낀 ‘심경 고백서’였다.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선언한 이들은 국방의 의무와 눈부신 솔로 활동을 마치고 다시 한자리에 섰다.
방탄소년단이 걸어온 길은 ‘자기 증명의 역사’였다. ‘흙수저 아이돌’이라 불렸고, ‘K-팝 센세이션’이라며 주목받았다. 그러더니 ‘21세기 비틀스’로 추앙받게 된 지금은 팝 음악계의 아이콘이 됐다. ‘맨몸’으로 덤빈 자본주의 음악계에서 방탄소년단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이자 ‘이정표’로 존재를 입증했다.
이들의 가장 큰 성과는 아시아에 갇혀 있던 K-팝 시장을 북미와 유럽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숫자로만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이들의 음악엔 시대와 호흡하며 진화한 ‘정교한 구조’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백 디데이’를 맞은 지금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 위에서 새로운 질문들을 마주하고 있다.
21세기 비틀스의 어제와 오늘 : 진화하는 아이콘
2013년 서울 강남 신사역 1번 출구, 오르막길을 오르다 두리번거려야 찾을 수 있는 언덕 위 청구빌딩. 이곳에 있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하이브의 전신)에서 7명의 소년이 태어났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내러티브는 ‘언더독(Underdog)’의 승리다. 턱없이 부족한 자본력의 중소 기획사, 의미를 곱씹기 힘든 ‘촌스러운 이름’이라는 비웃음까지 받아냈다. 바다인 줄 알았던 곳이 사막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사막을 바다( LOVE YOURSELF 承 ‘Her’ 속 히든 트랙 ‘바다’ 중)로 바꾼 날들이었다. ‘중소 아이돌’이라는 비주류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그들의 태도는 현대 사회의 무한 경쟁 속에서 좌절하던 전 세계 청년들에게 강력한 감정적 지지와 연대감을 가져왔다. 방탄소년단이 쌓아 올린 6단계의 진화 기록이다.
2013년 데뷔 앨범 ‘2 쿨 4 스쿨(2 COOL 4 SKOOL)’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방탄소년단의 태생은 ‘저항’에 있었다. 2013년 데뷔 앨범 ‘2 쿨 4 스쿨(2 COOL 4 SKOOL)’로 시작된 ‘학교 3부작’은 10대들의 억눌린 꿈을 직설적으로 쏟아냈다. ‘네 꿈은 뭐니?’라고 물으면 ‘에브리바디 세이 노(Everybody say NO)’라고 답하며 기성세대의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데뷔곡 ‘노 모어 드림(No More Dream)’에서다. 입시 위주의 교육 체계와 사회적 편견이라는 억압을 향한 소년들의 거친 분노였다. 중소 기획사 출신이라는 결핍을 동력 삼아 주체성을 확인해 가는 첫 번째 증명의 과정이었다.
2014년 미니 3집 ‘화양연화’ 당시의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② 2단계: 청춘의 균열…위태로운 화양연화
1.5평짜리 지하 연습실에서 ‘가내수공업 프로덕션’을 꾸려 앨범을 만들던 시기, 멤버들의 내밀한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소년의 껍질을 벗고 청춘의 복판으로 들어선 때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노래하면서도, 그 이면에 숨겨진 불안과 위태로움, 상실의 균열을 포착했다. 방탄소년단과 빅히트가 처음으로 성공 가도에 오른 때다.
2016년 ‘윙즈(WINGS)’ 앨범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모티브로 했다.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16년 이어진 ‘윙즈(WINGS)’ 앨범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모티브로 세계관을 짰다. 치열한 성장통을 치열하게 묘사하며, 갈등 속에서도 날아오르려는 청춘의 서사를 완성했다. 타이틀곡 ‘피 땀 눈물’로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대중의 귀에 안착했고, 수록곡 ‘봄날’은 ‘봄의 캐럴’로 지금도 자리하게 됐다. RM은 멜로디를 쓰자마자 ‘이거다!’라고 확신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갈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RM의 바람이 이뤄졌다.
2017년 미니 5집 ‘러브 유어셀프 승 ‘허’ (LOVE YOURSELF 承 ‘Her’)’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③ 3단계: 자기 수용…“나 자신을 사랑하라”
2017년 개인의 서사는 인류 보편의 메시지로 확장됐다.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시리즈다. 그해 9월 발매한 미니 5집 ‘러브 유어셀프 승 ‘허’ (LOVE YOURSELF 承 ‘Her’)’를 시작으로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3집 리패키지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LOVE YOURSELF 結 ‘Answer’)’로 2년 6개월간 이어진다.
2017년 아메리칸뮤직어워드에서의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시기 방탄소년단의 팬덤은 주류 사회 속의 비주류, 소수자들을 단단히 묶었다.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는 성별, 연령, 인종, 장애 넘어 소수자를 포용했다. 당시 캔디스 앱스 로버트슨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교수는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메시지는 인권, 사회정의, 다양성 등을 장려하는 글로벌 시민의 정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의 모습을 한 이들은 세계적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를 꺾고 K-팝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톱 소셜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이후 2022년, 이 부문 시상이 폐지될 때까지 방탄소년단은 이 상의 5년 연속 주인공이었다.
2019년 시작된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시리즈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④ 4단계: 자아 해부…영혼의 지도를 그리다
성공의 정점에서 다시 그들은 ‘내면’을 향해 메스를 들었다. 2019년이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을 빌려온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시리즈에서 이들은 자신의 ‘페르소나(가면)’, ‘섀도(그림자)’, ‘에고(자아)’를 해부했다. 스스로를 이카로스에 빗대 높은 곳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추락의 공포를 고백했다. 다시금 자신들의 뿌리를 되짚으며 ‘내면의 지도’를 그리는 앨범이었다.
당시 그룹은 이미 ‘거인’의 자리로 향해갔다. ‘페르소나’ 앨범이 세상에 나온 2019년 4월 12일, 음원 플랫폼 멜론은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됐다. 그해 방탄소년단은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K-팝 그룹 최초로 역사적 공연을 열었다.
2021년 그래미 어워즈 레드카펫 직후 찍은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⑤ 5단계: 전략적 팝…팬데믹의 위로와 침투
전 세계가 고립된 시기, 방탄소년단은 영리한 ‘글로벌 전략’으로 선회했다. 주류 팝 시장을 본격적으로 겨냥하기 시작한 때다. 목표는 명확했다. 빌보드와 그래미의 입성. 진지한 메시지 대신 경쾌한 디스코와 팝 장르를 선택하고 영문 가사로 K-팝의 정체성을 다시 썼다. 영미권 라디오 방송망을 뚫고 주류 팝 시장의 핵심부에 안착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 동시에, 우울함에 빠진 대중에게 가장 필요한 ‘건강한 희망’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대중성을 겨냥한 뒤 작품성으로 이동하는 보통의 팝스타와 달리 역행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팬데믹 3부작’으로 불리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 ‘버터(Butte)’,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로 이어지는 ‘팬데믹 3부작’은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갔다. 2020년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방탄소년단은 내놓는 신곡마다 빌보드 ‘핫 100’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그다음 해인 2021년엔 불과 3개월 새 ‘핫 100’ 1위에 세 곡이나 올렸다. 이는 1964년 비틀스 이후 가장 빠른 속도였다. 이 시기 곡으로는 총 6곡, 횟수로는 17번 ‘핫100’ 1위의 주인공이 됐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빅히트 뮤직]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⑥ 6단계: 고백과 멈춤…“최고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데뷔 9주년을 맞아 공개한 앤솔러지 앨범 ‘프루프(Proof)’와 ‘찐 방탄회식’은 이들의 인간적인 고뇌를 담은 ‘고백’의 시간이었다. 쉴 틈 없이 달려온 끝에 마주한 번아웃과 창작의 고통을 털어놓으며, 그룹 활동의 ‘쉼표’를 선언했다. “아직 최고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Yet To Come)”는 약속과 함께 멤버들은 군 입대와 개인 활동이라는 각자의 길을 걸으며 재도약을 준비했다.
2021년 방탄소년단의 ‘퍼미션 투 댄스’ 월드투어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26년, 방탄소년단이 마주한 질문들
다시 ‘증명할 시간’이다. 방탄소년단이 자리를 비운 사이 K-팝의 지형도는 급변했다. 이제 방탄소년단은 ‘최초’의 기록자가 아닌 ‘최고’의 자리를 되찾아 할 도전자가 됐다.
이미 방탄소년단을 대체할 기록들이 쏟아졌다. 실질적 수치 면에서 세븐틴과 스트레이 키즈가 방탄소년단의 과거 앨범 판매량을 뛰어넘었다.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가 K-팝 최초로 전 세계 차트를 지배하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는 K-팝 최초의 그라모폰(그래미어워즈 트로피)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름값과 브랜드가 커진 것에 비해 방탄소년단은 음악적으로 보여준 게 부족하다”며 “이번 앨범은 방탄소년단이 팬덤의 화력을 넘어 음악성으로 평가받거나 장기적 히트곡을 내는 등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봤다.
새 앨범을 들고 돌아올 방탄소년단은 실제로 기로에 서있다. ‘국가적 자산’으로 승격되며 K-팝 가수 이상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상황에서 방탄소년단의 정체성과 지속성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빅스타’로의 화제성에만 만족할 것인지, 시대의 흐름을 지배하는 음악적 이정표를 다시 세울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나온 음반이 바로 ‘아리랑’이다.
방탄소년단(BTS) [넷플릭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방탄소년단이 기존 K-팝 그룹과의 차별점이라면 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데에 있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투박하지만 솔직하게 전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방탄소년단의 큰 강점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팬데믹 3부작이 시작되며 방탄소년단은 ‘보편성’을 지향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멈췄다.
돌아온 방탄소년단이 찾은 해답은 ‘뿌리’다. 3년 9개월 만에 내놓는 방탄소년단의 ‘완전체 앨범’은 군 복무, 솔로 활동, 긴 공백기를 거쳐 달라진 7명의 이야기를 빼곡하게 담았다. 이는 가장 한국적인 서사이자, 그룹의 본질을 담은 서사이기도 하다. 멤버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예정인 다큐멘터리에서 “유행하는 것들이 달라지니 계속 똑같은 것을 할 수는 없다”, “변화를 주려면 지금밖에 없다”며 깊은 고민을 드러냈다.
총 14곡을 빼곡하게 채운 앨범은 라이언 테더, 디 플로, 엘 긴초 등 세계적인 프로듀서들이 참여해 명확한 ‘글로벌 지향’을 그렸다. 하지만 그 중심엔 RM이 작사에 참여한 타이틀곡 ‘스윔(Swim)’과 ‘아리랑’이라는 한국적 서사가 자리한다. 전문가들은 전성기를 지나온 작곡가들의 참여에 아쉬움을 비추면서도, 이들의 노련함과 방탄소년단의 진솔함이 만들어낼 단단한 균형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도헌 평론가는 “BTS의 진솔함과 함께 최첨단 사운드로 글로벌 지향을 보여주며 고해상도 음악을 뽑아내는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했다.
비틀스가 활동 후반기, 실험적인 음악으로 팝의 경계를 확장했듯, 방탄소년단은 숫자의 굴레에서 벗어던져야 할 시점을 마주했다. ‘아리랑’은 단순히 기록을 경신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과정에 선 앨범이다.
2022년 그래미어워즈에서의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도헌 평론가는 “요즘 팝스타들은 다들 힘이 빠져 컴백을 한다고 이렇게까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며 “서투르고 유치할지라도 진솔함이 강점이었던 초기와 달리, 어느 순간 국가대표라는 무거운 이미지가 덧입혀진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은 BTS가 BTS로 존재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앨범이 될 것“이라고 봤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지금의 컴백은 방탄소년단 7명의 멤버가 단순히 군 제대 이후 내는 앨범이 아니다”라며 “그 사이 솔로 활동을 통해 저마다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었기에 각자 하고 싶은 음악이 분명해지고 음악적 성숙도 역시 올라갔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 문화재 같았던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나 영국의 비틀스처럼 방탄소년단 역시 비슷한 부담과 짐을 안은 상황”이라며 “자신들의 예술적 목소리를 내는 자유를 갖는 것은 점점 어렵겠지만, 단순히 방송 무대용이나 뮤직비디오용 퍼포먼스가 아닌 스타디움급 월드투어를 돌 수 있는 글로벌 빅스타의 위치에 맞는 깊이 있는 음악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