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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베트남 영웅' 박항서, 베트남 훈장에 카퍼레이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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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23세 이하(U-23)대표팀을 이끌고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달성한 박항서 감독. /사진제공= 뉴시스



‘박항서 매직’이 베트남을 뒤흔들었다.

지난 27일 중국 창저우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 베트남 23세 이하(U-23) 대표팀은 눈보라 속에서도 ‘악바리’처럼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경기 막판 결승골을 내주고 1대2로 패했다. 우승 길목에서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베트남 관중들은 아쉬움을 달래고 곧바로 "박항서"를 외쳤다. 믿을 수 없는 자국 대표팀의 선전에 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매직’에 푹 빠져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2위인 베트남은 그동안 축구 변방인 아시아에서도 변방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끈질긴 승부욕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더 이상 축구변방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박항서 감독이 자리하고 있다.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 부임 3개월만에 팀을 아시아 정상권으로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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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에 열광하며 연일 박 감독의 기사를 쏟아내는 베트남 현지 언론. /사진제공= OSEN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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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가 걸어온 길은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했던 베트남 축구와 꼭 닮았다. 현역시절 박 감독은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1981년 실업팀에서 축구를 시작해 84년 럭키금성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박 감독은 ‘악바리’로 불리며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다 88년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의 지도자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96년 LG 치타스(현 FC 서울)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한 박 감독은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의 조력자로 월드컵 4강 진출을 도우며 지도자로서의 공로를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해 히딩크 감독의 뒤를 이어 대표팀 감독에 올랐으나 성적 부진을 이유로 3개월 만에 경질당했다.

이후 2005년 경남 FC에서 프로팀 지휘봉을 다시 잡은 박 감독은 전남 드래곤즈(2007~2010), 상주 상무(2012~2015) 등에서 경력을 이어갔으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큰 무대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뒤 결국 2017년 내셔널리그(3부리그)에서 창원시청을 지도하며 지도자 생활을 마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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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U-23대표팀을 지휘하며 3개월만에 아시아 정상권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 /사진제공= 뉴시스



이런 박 감독에게 다시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은 이는 부인 최상아씨다. 30년간 박 감독을 내조한 최씨는 베트남의 뜨거운 축구 열기에 반해 박 감독에게 새로운 도전을 권유했다. 축구에 대한 박 감독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축구 변방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박 감독은 97세 노모와 부인을 한국에 남겨두고 베트남으로 향했다. 기자회견에서 “97세인 어머니가 시골에 계신다.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박 감독은 악바리 정신과 축구에 대한 특유의 열정을 바탕으로 베트남 축구를 단숨에 아시아 정상권으로 올려놓았다.

박 감독 부임 당시 현지 언론과 축구팬들은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를 수행한 경력 외에 감독으로서는 별다른 발자취가 없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는 박 감독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박 감독의 공로를 인정해 3급 노동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선수단이 귀국하면 대규모 카퍼레이드도 벌일 예정이다. 이제 박 감독은 U-23 대표뿐 아니라 성인대표팀도 지도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박 감독은 “우리가 지금까지 얻은 것을 즐기고 싶다. 기적이 계속되든, 아니든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그의 모습에서 2002년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뒤 “나는 아직 배고프다”라고 외친 히딩크 감독이 오버랩된다.

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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