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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이슈 [연재] 매일경제 '쇼미 더 스포츠'

한국 축구, 멕시코 압도한 올림픽의 기억이 필요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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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더 스포츠-99] 대한민국 축구사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주저 없이 2002 한일월드컵을 꼽을 것이다. 월드컵 첫 승과 조별예선 통과를 넘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세계 최강팀들을 상대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던 것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국민 가슴속에 가장 행복했던 추억으로 기억된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10년의 세월이 흐른 2012년, 대한민국 축구는 또 한 번의 신화를 일군다. 바로 런던올림픽에서의 동메달 획득이다. 2012년 받은 동메달은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자 영원한 라이벌 일본을 이겼던 터라 그 가치가 더욱 컸다.

비록 올림픽에서 축구는 23세 이하 선수들과 일부 와일드카드 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어 최고 무대인 월드컵과 비교해 볼 때 그 무게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유망주들 기량을 확인하고 해당 국가와 세계 축구의 미래를 점쳐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 중 하나다.

'21세' 메시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브라질과 나이지리아를 차례로 이기며 조국 아르헨티나에 2년 연속 올림픽 축구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브라질 최고이자 세계 최고 몸값 선수 중 한 명인 네이마르 또한 2012 런던올림픽 멤버다. 또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성인 무대 최강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과 독일이 올림픽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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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2012 올림픽 동메달은 대한민국 축구에 황금 세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시그널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병역 혜택이라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있었기에 더욱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대표팀 주축이라 할 수 있는 기성용, 구자철, 김영권, 정우영 등이 모두 당시 멤버였으며, 비록 질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대부분 선수가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 당시 조별예선 1차전에서 맞붙은 팀이 멕시코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경기에서 양팀은 모두 득점에 실패하며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조별예선을 사이좋게 통과한 두 팀은 메달 획득이라는 최상의 성과를 이루는데 멕시코는 결승에서 '네이마르'가 있는 브라질에 승리하며 감격스러운 올림픽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멕시코는 런던올림픽을 기점으로 새로운 황금 세대가 열렸으며 그 결과 지금 2018 월드컵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현 대표팀 23명 중 무려 7명이 2012 런던올림픽 멤버다. 한 가지 흥미로운점은 당시 멕시코의 전체 전적이 5승 1무였는데, 멕시코가 이기지 못한 유일한 팀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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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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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멕시코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맞붙은 적이 한 번밖에 없었지만, 최근 올림픽 무대에서 멕시코는 우리에게 단골손님이다. 더군다나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2012년에는 0대0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2016년 1대0로 승리했고 결국 '디펜딩 챔피언' 멕시코를 예선에서 탈락시켰다. 당시 대한민국은 독일마저 제치며 조 1위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현재 대표팀 감독인 신태용이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8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의 기억은 강렬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축구 변방이었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월드컵 무대에서 주눅 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북중미 강팀이었던 멕시코를 상대로 하석주가 그림 같은 프리킥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우리가 월드컵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간 것은 처음이었기에 온 대한민국이 흥분했다. 비록 아쉽게 하석주가 퇴장하며 동점과 역전골을 허용했고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지만, 1998년 멕시코전에 대한 기억은 축구팬들 머리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그 강력했던 기억과는 별개로 월드컵 무대에서 멕시코와 경기는 그 한 번이 전부였으며, 이제 20년 만에 다시 본선 조별 무대에서 그들과 맞붙는다. 멕시코는 여전히 북중미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당시에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최강이었던 대한민국의 위상은 많이 달라졌다. 월드컵 아시아 최고 성적(4위)은 여전히 대한민국 것이지만, 아시아 1등은 이미 다른 팀들에 넘겨준 지 오래다.

더군다나 이번 월드컵에서 24일 우리 상대인 멕시코는 FIFA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을 이기며 그야말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고, 우리는 스웨덴과 첫 경기에서 유효슈팅 '0' 이라는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였다. 게다가 20년 전인 1998년에는 해볼 만하다는 희망, 국민 기대와 응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냉소와 조롱이 더 많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누가 알았을까? 1998년 수모를 당했던 대한민국이 불과 4년 뒤 2002 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또 한편으로는 2012 런던올림픽 '황금 세대' 탄생 이후 눈부시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 경기력이 6년 뒤 이렇게 실망을 안겨줄 것을.

축구공은 둥글고, 많은 스포츠 종목이 그러하듯 축구 승부는 마지막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은 약팀이 강팀을 꺾는 이변을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만을 얘기하는 말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고 나태해진다면, 언제든 더 깊은 수렁으로 추락할 수 있다. 심지어 '세계 최강' 브라질조차도 4년 전 자신들의 안방에서 7실점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강 자리를 내준 지 이미 오래됐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한다면 옛 영광을 회복하기는커녕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6년 전 런던올림픽 4강에 올랐던 팀은 멕시코(금), 브라질(은), 대한민국(동), 일본이었고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머지 팀은 모두 이번 월드컵 첫 경기에서 승리했다. 또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와 같은 조인 F조 4개 팀은 16년 전 2002 한일월드컵에서 모두 각 조 1위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와 나머지 3개 팀과의 차이는 무척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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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 시상식=올림픽 사진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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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월드컵에서 혹은 국제 대회에서 축구 성적이 좋다고 나라가 부강하거나 국력이 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스포츠와 그 시스템이 그 국가 문화와 사회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축구는 전 세계인에게 가장 사랑받고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더욱 아쉬운지 모르겠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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