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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이슈 [연재] 매일경제 '쇼미 더 스포츠'

승부차기의 역설···한 경기도 못이기고 월드컵 우승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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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이반 라키티치(왼쪽)가 7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의 피시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전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준결승 진출을 결정짓는 마지막 승부차기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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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더 스포츠-103] 러시아와 크로아티아와의 8강 마지막 경기는 이번 러시아월드컵의 백미였다. 두 팀은 90분간의 정규시간은 물론이고 연장에서도 골을 주고받으며 경기의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차기에서 승리의 여신은 개최국 러시아가 아닌 크로아티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러시아는 16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8강에 올랐지만, 8강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승부차기의 영문 표현은 'Penalty Shoot-out'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페널티 킥과 형식은 거의 동일하지만, 그 의미와 내용이 좀 다르다. 페널티 킥은 골에어리어 내에서 수비팀의 반칙에 대한 벌칙으로 주어지며, 성공 시 다른 필드골과 동일한 골로 인정된다. 때문에 성공시킨 키커 또한 페널티 킥으로 인한 득점을 개인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반면 승부차기는 토너먼트에서 다음 스테이지로 가기 위해 치르는 하나의 절차이다. FIFA는 연장전 종료 시 양 팀의 득점이 같을 경우, 공식적으로 해당 경기를 무승부로 간주한다. 때문에 승부차기에서의 골 또한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승부차기는 어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속된 표현으로 '쪼는 맛'이 있다. 때문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엄청난 흥분과 긴장감을 만들어 준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키커나 골키퍼가 갖는 부담은 엄청나다. 잘하면 본전이지만, 못하면 순식간에 역적을 만드는 게 승부차기이다.

축구는 승리와 패배 외에 무승부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경기이다. 사실, 다른 구기 스포츠 종목에서 무승부가 있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경기에서 승패를 가리는 것은 어쩌면 스포츠의 가장 큰 본질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글로벌하고,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에서 무승부가 있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각국의 축구리그가 승점에 의해 순위를 가리는 방식으로 운영되기에 무승부가 있어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게다가 축구는 점수의 발생빈도가 무척 낮고, 체력 소모는 매우 큰 경기이다. 선수 보호 측면에서도 무승부의 '제도화'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월드컵과 같이 단기간에 치러지는 대회에서는 무승부는 난감한 상황을 발생시킨다. 조별예선에서야 크게 상관없지만, 결승 토너먼트는 특히 그렇다. 클럽들 간의 대회인 챔피언스리그처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고, 원정 다득점 승리방식을 취하면야 좋겠지만, 3~4일 간격으로 매우 빡빡한 경기일정을 소화하는 월드컵에서는 이 제도의 적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도입된 것이 바로 승부차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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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에릭 다이어(오른쪽)가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승부차기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이 골로 잉글랜드는 4-3으로 콜롬비아를 물리치고 8강에 합류했다. /사진=모스크바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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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승부차기가 도입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1978년 월드컵 때부터이니, 이제 40년차가 되었다. 그럼 그 이전까지는 어떻게 승부를 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승부를 반드시 내야 하는 주요 경기에서 정규시간 및 연장 승부가 나지 않았을 때는 재경기를 실시했다. 심지어는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내는 것이 공식 룰인 때도 있었다.

승부차기가 도입은 사실 월드컵의 상업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디어의 발전으로 경기장의 관중뿐 아니라 전 세계 TV시청자들이 소비자가 된 이상, FIFA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경기방식인 결승 토너먼트의 활성화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승부가 정규시간에 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납득할 만한' 안전 장치가 있어야 했다. 그 장치가 바로 승부차기였다.

그렇게 시작된 승부차기는 이제 월드컵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1982 스페인월드컵 4강전에서 서독과 프랑스가 월드컵 역사상 첫 승부차기를 실시한 이후, 금번 러시아월드컵 8강까지 총 30번의 승부차기가 있었다. 기간 중 결승 토너먼트 전체 경기가 146경기였으니, 전체의 5분의 1 정도 되는 셈이다.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는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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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차기 하기 전까지 해당 경기의 최종 스코어는 1대1이 15경기로 가장 많았고, 0대0 경기도 11경기나 되었다. 반면에 양 팀이 2점 이상 주고받은 경기는 4경기에 불과했다. 달리 해석하면, 승부차기로 이어지는 경기는 대개의 경우, 양 팀이 수비에 치중해 보수적인 경기 운영을 했을 때가 많았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나 정규시간 90분이 종료된 후 연장전에서 양 팀이 골을 주고받은 경기는 이번 러시아와 크로아티아전을 포함해 전체 30경기 중 3경기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27경기는 연장전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채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같은 기간 월드컵에서 연장경기가 총 49경기였음을 감안하면, 연장에서 승부가 가려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월드컵은 유독 승부차기 경기가 많이 나오는 대회이다. 8강까지 벌써 4경기나 나왔는데, 이는 역대 월드컵 승부차기 최다 경기 수와 타이기록이다. 아직 4강과 결승 및 3·4위전 등 총 4경기가 남았으니, 새로운 기록이 나올 가능성도 꽤 높다.

승부차기가 양 팀 간의 치열한 공방의 산물이고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해 이로 인해 발생되는 재미가 꽤 쏠쏠하지만, 승부차기가 점점 더 빈번하게 양산되고 있는 것은 축구경기 본연의 가치라는 점에서 봤을 때 그다지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선수들에게 있어서 90분, 아니 120분간의 전쟁 같은 혈투와 땀의 결과가 '11m 러시안룰렛'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공평하지도 않고 때로는 좀 잔인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월드컵 같은 세계 최고의 스포츠대회에서 공식적으로 한 경기도 이기지 않아도 이론상 우승이 가능하다는 점은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때로는 형식으로 인해 본질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런 일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어떤 팀이 조별예선 3경기에서 모두 무승부를 기록해 극적으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고, 16강부터 결승까지 승부차기로만 계속해서 이겨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현재 월드컵 제도에서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이럴 경우, 그 팀은 공식 기록상 단 한 경기도 승리하지 않고도 우승하는 셈이 된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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