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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내 아이를 리모컨으로 조종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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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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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 대만 드라마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

중년의 천수리(커쑤윈)는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이다. 남편은 뻔뻔하게도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어린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며 수리와 아들 페이웨이(류쯔취안)를 버리고 집을 떠났다. 남편의 배신으로 아들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 수리는 한 신비한 교육업체를 통해 자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을 전수받는다. 리모컨 버튼 하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신기의 비법이다. 다음날부터 페이웨이에게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엄마의 표정은 무언가를 감춘 듯 낯설기만 하다.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원제 ‘?的孩子不是?的孩子’)는 지난주부터 방영을 시작한 대만의 신작 드라마다. 넷플릭스가 글로벌 배급을 담당해 국내에서도 동시간대에 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국내에는 청춘 멜로물 위주로 소개됐던 대만 드라마의 다양성과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독립적인 에피소드 안에 현대 사회상을 에스에프적 상상력으로 담아내, 대만판 <블랙 미러> 시리즈라고 불리기도 한다. 총 다섯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일관되게 대만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가족관계에 투영하고 있다. 장르는 독특해도, 우리나라와 사회문화적 배경이 비슷해 하나같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첫번째로 공개된 ‘엄마의 리모컨’은 엄마가 생계를 담당하는 한부모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핵심 인물은 엄마와 아들 단둘뿐이나, 그 단순한 인물 관계 안에 입시 지옥, 학벌 사회, 무한경쟁 시스템, 여성 억압, 아동 학대 등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회문제가 녹아들어가 있다. 페이웨이가 엄마의 기이한 리모컨을 통해 반복하게 되는 하루하루는 실제로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을 오가며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는 십대 학생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엄마 천수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페이웨이가 아침마다 제일 먼저 만나는 비슷비슷한 식탁 풍경 안에는 수리의 반복적인 돌봄노동이 포함되어 있다. 드라마는 주로 어린 페이웨이의 절망과 우울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와 수리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서로 연결된 증상이다. ‘대치동맘’으로 상징되는 한국 엄마들의 과도한 교육열과 자녀 학대가 실은 중년 여성의 사회적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엄마와 자녀의 억압과 상처는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다.

수려한 연출도 눈길을 잡아끈다. 한정된 공간과 인물 구도에,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의 이야기임에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드라마는 대사를 극도로 절제하고 시적인 미장센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를 압축적으로 담아내며 극의 밀도를 높인다. 뛰어난 가족극이자 사회극이며, 비극적인 멜로인 동시에 탁월한 장르물을 이 한편으로 만나볼 수 있다.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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