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상충된 두 가치가 충돌할 때 판단의 근거는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우선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각자의 입장을 전해듣고 큰 틀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가운데 경기장 사후 활용방안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특히 환경문제와 직결된 정선 알파인경기장은 존치와 복원이라는 상충된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상황이다.
존치를 주장하는 쪽은 정선군민을 비롯해 체육계 등 다수다. 2000여억원을 들여 지은 ‘명품 스키장’을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키워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게 대다수 정선군민들의 주장이다. 체육계 역시 존치를 위해 두팔을 걷어붙였다. 정선 알파인경기장이 올림픽 레거시(legacy)의 가치가 클 뿐더러 아시아 스키의 허브(hub)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그동안 한국 스키는 국제규모의 활강 경기장이 없어 알파인스키에서 스피드 경기를 사실상 포기하고 기술 경기에만 주력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선 알파인경기장을 살린다면 한국 스키의 균형적인 발전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스키계의 공통된 견해다.
당초 정선 알파인경기장은 올림픽을 마친 뒤 복원하기로 돼있었다. 올림픽 유치 당시 친환경 경기장 건설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비딩파일에 그렇게 명기했다. 비딩파일에 약속한대로 정선 알파인경기장의 복원을 주장하는 쪽은 산림청과 환경단체 등이다. 짐작컨대 이들의 복원 주장은 관성적인 사고의 틀에 결박당한 자신들의 특별한 상황에서 비롯됐을 터다. 사실 정선 알파인경기장은 공사부터 예정된 길을 따르지 않았다. 비딩파일에 따라 복원을 염두에 뒀다면 지금과 같은 공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정선 알파인경기장은 존치를 위한 공사였지 복원을 염두에 둔 공사가 결코 아니었음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환경 전문가들조차 정선 알파인경기장의 복원에 대해 “지금 생태 복원을 시도해봐야 원상 회복은 힘들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생태 복원은 처음부터 정교한 로드맵을 짜고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고도의 작업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도 생태 복원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례도 많다. 바로 1972 삿포로동계올림픽 에니와산 활강경기장과 1997 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 덕유산 활강경기장이 대표적이다.
두 가치가 충돌할 경우,가장 원만한 해결방식은 접점을 찾는 것이다. 정선 알파인경기장 존치와 복원에서 접점을 찾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 쪽은 경제와 체육의 가치를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환경의 가치를 앞세우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자,그렇다면 소수파인 환경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는 쪽을 설득해 보자. 경기장은 그대로 존치시키되 경기장과 조화를 이루도록 주변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가꾸는 게 어떨까. 이게 바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다.
경기장을 살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넘어야 할 더 큰 산이 버티고 있다. 막대한 국가재원이 투여된 공공자산을 어떻게 수익모델로 연결키느냐 하는 문제다. 기껏 경기장을 살려놓더라도 그게 돈을 먹는 ‘하얀 코끼리’가 된다면 낭패다. 많은 돈이 투자된 스키장인 만큼 수익창출을 위해선 민간위탁 방식이 제 격이 아닐까 싶다. 현재로선 지자체 경기단체 민간기업 등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위탁경영이 가장 합리적인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약속은 지키는 게 좋다지만 덮어놓고 명분에만 집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공공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사안에선 더욱 그렇다. 좋은 길을 새로 발견했는데도 고집스레 낡은 길을 선택해 걷는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존치와 복원의 갈림길에서 선 정선 알파인경기장의 운명을 논의할 때 반드시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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