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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갈라파고스의 섬'에 다리를 놓다! …체육문화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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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한국 사회에서 체육은 ‘갈라파고스의 섬’으로 불린다. 관행과 특수성의 뿌리가 워낙 고착돼있는데다 변화에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체육은 시민사회의 눈높이와 큰 격차를 보이며 사회와 유리된 채 낡은 패러다임에 목을 매왔다.

체육이 ‘갈라파고스의 섬’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가치를 압도하는 거대 담론 하나가 똬리를 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타자와의 대결에서 오로지 이겨야 한다는 승리 지상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압축성장시대에서 체육이 국위선양의 도구로 활용되면서 체육의 본질적이면서도 다양한 가치는 사장됐다. 스포츠국가주의(state amateurism)의 미명하에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기형적인 문화 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공정성과 정정당당함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맨십보다 더 우위에 섰던 기계적 성과주의는 어느 순간부터 한국 체육의 선진화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돼버렸다. 시대정신과 파열음을 토해낸 성적지상주의는 체육의 가치가 중심부로 진입하는데 제동을 걸었고 체육의 외연 확장에도 큰 장애가 됐다.

그러한 체육의 기형적인 문화가 최근 균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반갑다.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 더 깊이 파고들어가면 시대정신인 공정성이 체육 문화의 중심가치로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로 급작스레 추진했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서 터져나온 국민적 반발은 조직과 집단에 억눌렸던 자아의 분출이요, 더 나아가 체육에서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기폭제가 됐다. 그동안 체육계에서 등한시 됐던 과정의 중요성은 얼마 전 막을 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여지없이 떠올랐다. 나란히 금메달을 따냈던 야구와 축구가 극명한 희비쌍곡선을 그리며 이 같은 국내 체육문화의 변화를 그대로 입증했다. 선수 선발과정에서 뒷말이 많았던 야구가 금메달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냉대를 받은 것은 물론 아시안게임 이후 재개된 리그 흥행에서도 그 여파가 고스란히 이어졌다. 성적이 모든 걸 덮어준다는 과거의 체육 프레임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체육문화의 결정적 변화를 입증하고도 남았다.

그동안 체육은 너무나도 많은 걸 국민에게 선물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국민적 자부심이라는 정신적 가치는 체육의 위대함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줬다. 그 결과 국제대회에서의 경기력은 체육의 가장 큰 가치로 올라서며 체육의 다양한 가치들을 압도하고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국제대회 성적에 집착하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비민주적이면서 비인권적인인 수단조차도 정당화되곤 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더이상 과거의 패더다임은 유효하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됐다. 물론 지난날의 정책을 현재의 시각으로 재단해서는 곤란하겠지만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새롭게 바꾸는 게 옳다.

영구불변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이다. 체육은 아쉽게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둔감했다. 아니, 눈을 질끈 감았다. 늘 결과에만 집착하던 한국 체육의 낡은 틀을 바꿀 때가 됐다.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개혁은 지속가능한 동력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체육문화 변화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좋은 징조다. 마침내 ‘갈라파고스의 섬’에도 다리가 놓여지고 있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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