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역사는 사실(事實·fact)이 아니라 사실(史實·historical fact)이라는 탁견은 울림있는 교훈을 시사한다. 역사에는 분명 해석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팩트를 시대정신에 따라 평가하고 거기에 비전을 담아내는 게 곧 역사다. 역사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고민 없이는 밝은 미래가 담보될 수 없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역사 의식의 빈곤, 전 정권에 견줘 나아지기는커녕 퇴행하고 있는 한국 체육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에 체육계가 거는 기대감은 컸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체육에서부터 시작됐고 박근혜 정권의 엄혹한 체육 탄압은 압축성장 시대를 떠올릴 법한 관치체육의 전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정권이 출범해서도 체육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오히려 더 후퇴하고 헝클어졌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거꾸로 가고 있는 체육의 현주소는 국정감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핵심을 비껴간 보여주기식 국감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활한 경기인,이권에 결탁된 사이비언론 그리고 전문성 없는 정치인이 손을 잡은 부조리한 행태는 3류 국회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권교체 후 진행된 적폐청산의 핵심 분야인 체육이 국감에서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건 과연 우연일까? 체육 국감이 기대를 저버리고 변죽만 울리고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체육 문제가 본질을 외면한 채 정치와 진영의 논리라는 색안경을 통해 투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폐청산 책임이 있는 여당은 지지부진한 이 문제를 꺼내기가 면구스럽고,제 1야당 또한 원죄를 안고 있기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체육의 적폐청산이 다른 분야보다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정부에 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시작된 체육에서 제일 큰 책임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다. 만약 문체부가 적폐청산에 적극적인 스탠스를 취했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이기주의에 사로잡힌 그들로선 적폐를 은폐하고 청산작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체육국감은 체육계에 산적한 주요 이슈들을 처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개혁이 절실했던 국기원, 대한축구협회 문제가 공중파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잇따라 방영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국감은 관련 당사자를 증인으로 채택하지도 못했다. 국민들은 ‘맹탕 국감’에 언가슴만 쓸어내렸다. 정권 교체 후 적폐를 가려내는 골든 타임을 놓쳐버리면서 체육은 뒤죽박죽 헝클어졌다. 전 정권에 부역했던 인사들이 재빠른 분칠을 통해 개혁세력으로 둔갑하는 일도 허다했다. 더욱이 적폐가 정의의 탈을 쓰고 위선의 가면극을 연출하는 데 전문성 없는 국회의원까지 동원되는 ‘웃픈’ 현실은 한국 체육의 미래에 검은 그림자만 잔뜩 드리우게 했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알찬 체육 국감이 절실한 지금, 기대는 물거품으로 바뀌고 있다. 국감 무용론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 역사가 정치와 이념 그리고 진영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그건 비극이다. 지금 체육이 꼭 그짝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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