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골프 룰 확 바뀐다는데
USGA와 R&A “이해 쉽게 현대화”
홀마다 타수 상한제 도입하기로
프로·아마추어 규칙 이원화될 듯
‘놓인대로 친다’는 원칙 깨선 안 돼
1일 히어로 월드 챌린지 2라운드 경기 도중 야자수 나무 아래에 떨어진 공을 찾는 타이거 우즈(왼쪽). 우즈는 이 홀에서 두번째 샷을 하다 투터치 논란을 빚었지만 벌타를 받지는 않았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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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부터 적용될 골프 규칙은 장점이 많다. 그러나 큰 변화 앞에서 생각해 볼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도 프로와 아마추어 골프 규칙의 이원화 조짐이 보인다. 새 규칙에는 OB가 났을 경우 공이 나간 자리 근처에서 칠 수 있게 했고, 홀마다 상한(上限) 타수를 둘 수 있다. 마치 한국의 주말 골퍼들의 룰과 비슷하다.
OB 조항은 엘리트 골프에는 적용하지 않고 일반 캐주얼 라운드로 한정했다. 상한 타수 조항을 프로 대회에서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프로골퍼와 프로를 지망하는 주니어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에는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일반 아마추어 골퍼만 이 규정을 사용하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룰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직 차이는 미미하다. 그러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최진하 경기위원장은 “분화가 시작됐다는 것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USGA 등은 공의 탄성을 포함한 골프 장비의 경우에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다르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일부 선수들은 “프로 골프의 룰은 아마추어의 규칙과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아마추어 골퍼들은 “골프 규칙이 너무 엄격하다. 9홀당 멀리건 1번 가능 같은 규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록으로 발견된 최초의 골프 규칙은 1744년 제정됐다. 그 이후 274년이 지났다. 그동안 골프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다. 앞으로 274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프로 골프와 아마추어 골프는 뿌리가 같은 두 개의 다른 스포츠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룰 개정은 프로 골프와 아마추어 골프라는 종의 분화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골프엔 헌법 같은 개념이 있다. ‘공은 놓여있는 그대로 친다’와 ‘코스에선 있는 그대로 경기한다’는 조항이다. 이 헌법은 작은 공을 매개로 자연 속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골프의 정신이었다.
새로 바뀌는 규칙에도 이 조항은 남아있다. 그러나 예외 조항이 생기면서 그 정신은 약화했다. 러프의 경우에도 땅속에 박힌 공을 꺼낼 수 있고, 그린 위의 스파이크 자국도 보수할 수 있다.
골프 규칙 현대화는 골프 경기의 스피드를 높이는 동시에 쉽고, 단순하게 만들어 대중화하겠다는 시도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골퍼가 정직하다는 전제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처럼 골프도, 인간도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대한골프협회 박노승 경기위원은 “인간이 정직하다는 전제가 맞는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구멍이 많다”고 했다. 미국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PGA 투어의 골퍼들을 대상으로 무기명 설문을 한 결과 “동료의 속임수를 본 적이 있다”는 답이 44%였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김용준 경기위원은 “새로 바뀐 규칙에 따르면 페널티 구역에서 나뭇가지를 치울 수 있고, 동료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도 공을 들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라이를 개선하거나 공을 치기 좋은 곳으로 옮겨 놓을 개연성이 있다. 규칙을 잘 지키는 신사보다 편법을 쓰는 악당들이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새 골프 규칙은 TV 화면을 통해 경기를 지켜본 시청자의 사후 제보를 받지 않는다. 나중에 중계화면에 오소 플레이 등이 드러나도 선수의 의견을 존중한다. TV 상에선 규칙 위반인데도 선수가 “고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정직이라는 골프의 중요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규칙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상식이 등장하고, 시간의 속도에 대한 관념도 바뀐다. 다른 스포츠와의 경쟁, 기술 발전도 규칙을 변하게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들도 있다.
런던이나 로마 같은 유럽의 도시들은 오래된 건물을 헐고, 고층 아파트를 짓지 않는다. 불편하지만 오랜 세월 도시가 품어온 사람들의 기억, 켜켜이 쌓인 역사는 오늘날의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 골프는 오래된 건물처럼, 고리타분해서 특별한 스포츠였다. 복잡한 규칙이 단순화된 것을 환영하면서도 골프의 독특한 정취가 사라지는 듯해서 아쉽기도 하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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