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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옛날의 베트남이나 필리핀이 아니야…동남아 축구 경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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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내년 1월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필리핀과 격돌

뉴스1

명장 에릭손 감독의 손을 탄 필리핀 축구가 급성장했다. 내년 1월 아시안컵에서 필리핀을 만나는 벤투호로서는 경계해야한다. © AFP=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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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그동안 동남아시아 축구는, 일부 직접적인 관계자들이 아닌 일반 팬들 입장에서는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아시아 축구에 신경을 쓰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우리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일본이나 중국 정도에 시선이 향했고 국가대항전에서 한국을 괴롭혀 온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관심의 대상이었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그저 한수 아래로만 생각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격차는 잘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만 여겼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축구 열기가 상당히 뜨겁다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인지된 사실이지만 그런 팬들의 환호가 선수들이나 대표팀의 실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만 간주했다. 하지만 안일한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의 동남아 축구가 아니다.

동남아시아 축구에 대한 시선과 관심도가 달라지고 있다. 단초는 역시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진출이었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A대표팀과 U-23 대표팀 사령탑을 동시에 맡은 박항서 감독은 1월 중국에서 열린 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꺾는 기염을 토하며 준결승까지 올라 아시아 전체를 놀라게 만들었다.

거듭되는 박항서호의 선전과 함께 베트남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국가대항전인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이 국내에서 중계되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 대회에서도 베트남은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 6일 밤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 스타디움에서 열린 필리핀과의 스즈키컵 준결승 2차전에서 2-1 승리를 거뒀다. 지난 2일 원정 1차전에서 2-1 승리를 거뒀던 베트남은 합계 4-2로 최종 승리, 우승을 차지했던 지난 2008년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두 팀의 준결승은 모두 한국 팬들에게 생중계됐는데 꽤 높은 반향을 끌어냈다. 중계방송사에 따르면 필리핀과의 준결승 1차전은 1.48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경기 VOD는 합산 100만 뷰를 훌쩍 넘기는 등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박항서 신드롬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실제 경기 내용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게 팬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 적잖은 이유다.

베트남과 필리핀의 준결승은, 과거 한국이 만나면 손쉽게 8-0, 9-0 스코어를 만들었던 과거의 동남아시아 국가가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박항서 감독이 공을 들였다는 게 느껴지던 베트남의 조직력만 돋보인 게 아니었다. 스웨덴 출신의 명장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필리핀의 전력도 녹록지 않았다.

AS로마, 피오렌티나, 라치오(이상 이탈리아) 맨체스터 시티, 레스터 시티(이상 잉글랜드) 등 빅리그 클럽과 잉글랜드, 멕시코, 코트디부아르 등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이끌었던 명장 에릭손의 손을 탄 필리핀은 베트남에 패하기 전까지 5번의 공식전에서 3승2무 순항을 이어가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베트남을 맞아서도 2경기 모두 주도권을 쥔 쪽은 필리핀이었다.

아직 선수들의 기량이 객관적으로 높은 수준에 올라있진 않아 쫓기는 배경이 만들어지자 세련미나 정교함이 떨어진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심리적 압박감이 커지자 스스로 우왕좌왕하다 기회를 날리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마냥 무시할 '동남아 축구'가 아니었다. 베트남 전에서 필리핀은 완벽한 합작품으로 득점을 올렸고 전체적으로 그런 장면들을 적잖이 만들었다.

에릭손 감독의 조련을 받은 시기가 아직 짧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한국 대표팀 입장에서는 더 이상 '남의 일'만도 아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중국과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필리핀과 함께 C조에 편성됐다. 1차전 상대가 필리핀이고, 키르기스스탄과의 2차전까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스즈키컵에서 드러난 필리핀의 전력, 향후 더 발전할 여지까지 염두에 둔다면 마냥 무시만 할 팀이 아니다. 과거 한국 축구가 '사냥감' 정도로 여겼던 필리핀이나 베트남을 떠올리면 큰코 다칠 수 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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