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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타인의 성적 지향이 ‘중요한 문제’일 이유 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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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셰어하우스’ 문제의 장면

5년 전 공동주거 예능 ‘셰어하우스'

뒤늦게 ‘성 정체성 고백 압박' 도마

“너, 남자가 좋아, 여자가 좋아?”

답변 추궁하는 분위기에

출연자 고민 끝에 성적 지향 밝혀

제작진은 사전동의 있었다지만

이성애자와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무의식중 차별적 시선 드러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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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숨긴 것도 아닌데, 어떤 논란들은 코앞에 잠복해 있다가 시차를 두고 터지곤 한다. 2014년 방영된 올리브(Olive) 채널의 예능 <셰어하우스>가 그렇다. 10명의 유명인이 한집에서 함께 살며 일어나는 일을 담은 공동주거 예능이었던 <셰어하우스>는, 에스비에스(SBS) <룸메이트>(2014)와 함께 그 무렵 미국과 일본에서 유행하던 공동주거 예능을 한국에 이식하려던 여러 시도 중 하나였다. 방영 당시에는 그리 큰 화제를 모으지 못했던 <셰어하우스>는 방영 뒤 5년이 지난 최근에 들어서야 다시 논란이 되었다.

문제가 된 장면은 2화 방영분이었다. 패션디자이너 김재웅이 여자와 영화를 보러 나갔다가 들어오자, 동거인들은 거실에 모여 데이트가 어땠는지 김재웅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방송인 이상민이 남들보다 음역대가 높고 부드러운 김재웅의 말투를 걸고넘어지며 “남자답지 못한 목소리를 여자친구가 좋아하느냐”며 질문을 던진다. “너의 그 대답이 내겐 정말 중요하다. 네가 오늘 여자친구하고 같이 들어왔다면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었을 텐데)”라며 분위기를 잡던 이상민은, 큰 결심을 한 듯 김재웅에게 묻는다. “남자가 좋아, 여자가 좋아?” 자신이 밖에서 누구를 만나고 들어왔는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고 항변하던 김재웅은, 잠시 집 밖으로 나가 생각을 정리한 뒤 들어와 카메라와 동거인들 앞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혔다. 이 장면은 5년이 지난 지금 ‘이상민 성소수자 아우팅 논란’이라 명명되어 소셜미디어에서 다시 화제를 모았다.

아우팅인가 커밍아웃인가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걸 ‘아우팅’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우팅이란 성소수자의 성적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이고, 어쨌거나 형태적으로 놓고 보면 김재웅은 본인의 입으로 직접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혔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게 온전한 커밍아웃이었을까?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는 너의 성적 지향을 의심하고 있으며, 너의 성적 지향이 이성애자이냐 아니냐가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다’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는 점에서 방송은 폭력적이었다. 누군가의 성적 지향과 연애 활동이 타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일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날 대화의 방향을 주도해서 이끌고 갔던 이상민은 5년이 지난 뒤 소셜미디어상에서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장문의 댓글로 해명문을 올렸다.

“함께 출연한 재웅이도 제작진과 자신의 개인적인 일들을 방송을 통해 공개하는 것을 동의하에 출연했다고 했고, 제작진은 촬영을 꼭!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누군가 그것을 짚어서 물어봐야 하는데 그것을 할 만한 출연진들이 없었던 거죠. 그 누구도 하기 꺼려 했고, 그걸 주저하는 출연진들과 제작진 사이에서 더욱 불편한 상황이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누군가는 해야 했고, 결국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편집된 방송분을 본 후 누가 봐도 너무 상황이 뜬금없고 갑작스럽게 거론되었고 자연스럽지 않은, 저도 재웅이도 보는 사람들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방송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재웅이에게 가장 많이 의논하고, 본인 의사도 충분히 물어봤지만, 이미 재웅이는 제작진과의 촬영 전 약속을 해서 괜찮다고 하여 촬영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촬영 이후 왜 꼭 당시 촬영을 했어야 했냐고 제작진에 물었지만, 시청률 때문에 논란이 될 만한 촬영을 해야 했다고 답변을 들었습니다. 너무 죄송하고 너무 미안합니다.”(이상민. 2019년 2월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댓글 중)

이 논란이 처음 불거진 일도 아니다. 2014년 5월 해당 방영분이 전파를 탄 다음날, 의구심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을 향해 제작진은 이렇게 해명한 바 있다. “연출된 상황이 아니다. 주변에서 부추기지도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숨길 생각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돼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촬영 후 ‘걱정해준 식구들에게 고맙다. 커밍아웃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감한 내용이라 제작진이 ‘방송에 나가도 되냐’고 묻자 ‘괜찮다’고 해줬고, 이 부분이 편집되지 않은 건 모두 합의된 내용이다.” 물론 이상민을 비롯한 다른 동거인들이 계속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는 식의 말을 건네며 분위기를 몰아간 게 화면에 버젓이 나갔음에도, “주변에서 부추기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제작진의 해명을 믿기는 어려운 일이다. 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뒤늦은 논란에서 발견한 희망

이상민과 제작진 양쪽 다 조금씩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최대한 선해해서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아마도 제작진과 김재웅이 촬영 전 미팅을 하는 과정에서 ‘방송 중 성적 지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도 괜찮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묵직한 이슈에 대해 촬영 허가를 받아둔 제작진은 이걸 최대한 자연스러운 맥락 안에 녹여낼 수 있는 기회를 원했을 테지만, 아마 그런 기회를 포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준비를 하고 안전한 환경이라 생각되는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남들이 캐물어봐서 대답하는 방식의 고백이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말이다. 결국은 방송에 나간 방식대로 촬영이 되었고, 대화의 흐름 안에 당사자의 동의를 받은 고백이 담겼으니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제작진은 ‘모두 합의된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방송을 강행했을 테니 해명이 저런 모양으로 나왔을 테고 말이다.

생판 남남인 사람들끼리 한집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 안에 성적 지향이 다른 동거인이 있고, 다른 동거인들이 그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도 그를 배척하거나 밀어내는 대신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그림. 이렇게만 놓고 보면 굉장히 바람직한 그림이겠으나,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과정 안에 있다. 설령 본인이 성적 지향을 굳이 숨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답을 안 할 수 없는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까지 용인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성애자들 또한 제 성적 지향을 숨길 필요를 느끼고 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에 “나는 이성을 좋아한다”고 공표하고 다니지도, 제 연애활동에 대한 입장 표명을 강요받지도 않는다. 그것은 엄연히 개인의 사생활이고, 그에 대해 불필요한 참견이나 침범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성소수자라고 해서 경우가 다르지 않다. 모든 동거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는 상대의 연애활동에 집착적인 의구심을 제기하며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놓고는 그걸 “자연스럽게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라 지칭하는 일 자체가, 제작진이 무의식중에 이성애자와 성소수자의 권리를 다르게 접근했다는 증거이리라.

5년 전에 전파를 탄 방송이 5년 만에 다시 논란이 된 상황. 상황이 암담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난 희망을 보고자 한다. 첫째, 처음 방송이 전파를 탔을 때보다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의 수가 늘었다. 5년 전에도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가 지금보다 적었기에 진지한 논의가 진행될 수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둘째, 늦었지만 당시 대화를 주도했던 이상민이 입장을 표명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물론 이상민의 사과문 중 상당 부분은 자신이 아니라 제작진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식의 해명에 할애되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한 일이 ‘너무 죄송하고 너무 미안’할 일이라는 입장만큼은 공식화했다. 어떤 이유로든 방송에서 호모포비아적인 언동이 허용될 수 없다는 기준을 새로 잡은 것이다. 그 5년 사이, 한국 사회의 인식이 그만큼은 진일보한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을 더 안전하고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언제나 너무 느리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영영 변하지 않는 강고한 벽처럼 느껴지는 세상도 묵묵히 싸우다가 뒤돌아보면 이만큼은 변해 있는 것이다. 이걸 작은 희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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