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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9 (수)

이슈 [연재] 조선일보 '민학수의 All That Golf'

[민학수의 All That Golf] 68번 현장취재… 마스터스 '터줏대감'이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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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남자 골프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가 열리는 4월 초순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골프의 천국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아름드리 조지아 소나무와 융단 같은 잔디가 펼쳐진 골프장에 봄을 맞아 만발한 꽃들이 울긋불긋 수를 놓는다.

1928년생인 댄 젱킨스 기자는 이 골프 천국의 터줏대감이었다. 68번이나 마스터스를 현장 취재했다. 지난해까지도 약간 굽은 등에 돋보기 안경을 쓰고 동료 기자들과 담소를 나누곤 했다. 그는 US오픈 63번, PGA챔피언십 56번, 디오픈 45번을 포함해 골프 메이저대회를 모두 232차례 취재했다.

마스터스 기간 오거스타 내셔널의 프레스센터에는 미국골프기자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우수 골프기사' 선집(選集)을 배포하는데, 1957년 피처 스토리 부문 수상자가 젱킨스였다. 당시 그는 출생지인 포트워스 프레스 소속이었다. 미식축구와 골프에 조예가 깊던 그는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와 골프다이제스트를 옮겨 가며 스포츠 저널리즘의 '전설'로 인정받았다.

지난 7일 젱킨스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뉴욕타임스와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등 여러 미국 언론이 장문의 부음 기사를 통해 그의 일생을 돌아보았다. 그중에서도 워싱턴포스트의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일하는 딸 샌린 젱킨스는 '기막힌 조크로 딸을 웃게 해주시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토로했다.

대학 시절 골프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동향 출신의 벤 호건, 바이런 넬슨과 막역한 사이였다. 교통사고로 골반과 쇄골, 발목뼈 등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도 이듬해인 1950년 US오픈에서 우승하는 호건의 모습을 기사로 쓰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거침없는 기사로 골퍼들을 공포에 빠트리곤 했다.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에 "우즈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부상과 잘못된 결혼뿐"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들어맞았다. '냉혹한 운명의 피해자' '세미 터프' 등 20여 권의 책을 펴내 골프와 스포츠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 기자로는 세 번째로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젱킨스는 논란도 적지 않게 일으켰다. 양용은이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 트위터를 통해 양용은과 중국 음식 체인점을 빗대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2014년에는 골프다이제스트에 '타이거 우즈와의 가짜 인터뷰'란 글을 게재해 우즈 측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우즈가 팁에 인색하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그의 글은 여러 논란에도 벤 호건부터 조던 스피스까지 골프 근현대사가 담겨 있는 '골프의 도서관' 같은 존재였다. 시골의 이름 없는 대회로 시작해 최고급 골프 대회로 성장한 마스터스도 그의 글에 적잖은 빚을 지고 있다. 터줏대감이 사라진 마스터스는 어떤 풍경일지 궁금하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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