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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차별 상징 아멘코너의 여성 골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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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 최종라운드 13번 홀에서 제니퍼 컵초가 그린을 읽고 있다. [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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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7년 전인 2012년 얘기다. 마스터스 개막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뉴욕 타임스의 여기자 캐런 크라우스는 20분 동안 손을 번쩍 들고 시위를 했다.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사회자는 결국 그를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

크라우스는 마스터스를 주관하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 왜 여성 회원이 없냐고 질문했다.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한 그는 “여성 회원이 생길 때까지 취재를 보이콧하겠다”고 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는 미국 백인 남성 보수층의 성역 같은 곳이다. 미국 남북전쟁을 그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볼 수 있듯, 남부의 수도 애틀랜타는 북군에 의해 초토화됐지만 그 보수적 정서는 인근 오거스타 같은 곳에 살아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1990년 흑인을 회원으로 받아들였지만 22년이 지난 2012년까지도 여성 회원은 받지 않았다. 골프에서 성차별의 뿌리는 인종차별보다 깊다.

골프의 고향인 세인트 앤드루스에 있는 로열&에인션트 클럽에는 2007년 여자 브리티시오픈을 열기 직전까지 ‘여자와 개는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있었다. 남성 골퍼들은 라운드 후 “GOLF는 gentleman only, ladies forbidden(남성 전용, 여성 금지)의 약자”라는 농담을 안주로 위스키를 마시며 낄낄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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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 입구에 '회원만 입장가능 하다'는 푯말이 붙어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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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 내셔널은 양성평등 투쟁에 가장 강렬히 저항한 곳이다. 2003년 여성단체를 이끄는 마사 버크는 “여성 회원을 받으라”며 마스터스 대회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클럽 측은 “여성 단체의 캐비넷에 올라갈 전리품은 되지 않겠다”며 버텼다. 당시엔 마스터스의 금녀 정책을 옹호한 사람도 많았다. 마사 버크는 “살해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방탄복을 입고, 경호원을 고용한 상태로 시위했다”고 말했다.

여성 단체는 집요했다. 마스터스 중계방송에 광고를 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했다.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도 물러서지 않았다. 광고를 받지 못하는 방송사를 위해 중계권을 공짜로 주면서 버텼다.

2012년 마스터스 후원사인 IBM이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해 다시 논란이 생겼다. 이전까지 오거스타 내셔널은 대회 후원사 CEO에겐 대부분 회원 자격을 줬는데 여성이라 제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뉴욕 타임스 여기자 보이콧 사건이 발생했다. 백악관 대변인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견은 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라는 등 미국 여야가 모두 오거스타를 압박했다. 마사 버크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회원인 CEO들을 겨냥, 기업들이 성차별적 시설을 이용한다며 7900만 달러(약 900억원)짜리 소송을 걸었다.

도도한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은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해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등 여성 2명을 ‘조용히’ 회원으로 초청해 금녀 클럽의 전통을 깼다.

7일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여자 아마추어 대회가 열렸다, 여성 회원을 받은지 7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빠른 변화다. 현재 클럽 체어맨인 프레드 리들리가 딸만 셋을 둔 것도 여자 대회 창설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박세리, 안니카 소렌스탐 등이 시구자로 초청됐다. 참가 선수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비판도 있다. 여자 프로 골프계에선 “LPGA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 대회 기간에 오거스타 여자 대회를 열어 LPGA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켰다”는 불만이 나왔다. 미국 NBC에서 오거스타 여자 대회를, 케이블 채널에서 ANA를 중계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또 오거스타 여자 아마추어 대회는 3라운드 중 최종라운드만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치렀다. 그 것도 딱 30명만 추려서 나오게 했다. 제대로 된 정식 대회가 아니라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거스타 저격수 마사 버크는 “여자 아마추어 대회는 전진이기는 하지만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며, 기본적으론 성차별적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홍보 행사”라고 비난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거스타에 올해도 변함없이 초록색 융단같은 페어웨이가 깔렸고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아멘코너에서 샷을 하는 여성 선수는 매우 낯설면서도 어울렸다. ‘깃발 꽂힌 천국’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오거스타에서>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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