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무대' 마스터스(현지 시각 11~14일) 개막을 앞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의 그린을 볼 때마다 호기심이 고개를 쳐든다. "마스터스는 사실상 퍼팅 게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거스타내셔널 그린은 명성 높은 곳이다. 빠르고 단단하고 가파른 경사에 구겨 놓은 것처럼 굴곡도 심하다. 프레드 커플스(미국)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의 알 수 없는 그린을 읽기 위해선 '제6의 감각(sixth sense)'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구경꾼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여기서 악몽을 꾼 당대의 골퍼들은 부지기수다. 어니 엘스가 60㎝ 거리에서 6퍼트를 하고, 브랜트 스니데커가 1m를 남겨 놓고 5퍼팅을 할 때는 보는 이도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올해는 전혀 색다른 변수가 등장한다. 달라진 골프 룰에 따라 홀에 깃대를 꽂은 채 퍼팅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선수마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8일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고진영은 '깃대 퍼팅' 옹호론자다. 버디로 이어진 마지막 18번 홀 퍼팅도 깃대를 꽂고 해 상징적이었다. 그는 대회당 퍼팅에서만 3~4타를 줄였다. 그런데 고진영이 깃대 퍼팅을 옹호하는 건 주로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는 "홀보다 폭이 작은 깃대를 목표로 하면 심리적으로 더 잘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필드 위 물리학자'라 불리는 괴짜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를 비롯해 PGA투어에서 적극적으로 깃대 퍼팅을 하는 프로들은 깃대가 먼 거리 퍼팅에서는 뚜렷한 목표 역할을 해주고, 내리막 퍼팅을 할 때는 방어벽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론도 그만한 설득력이 있다. 퍼팅은 대부분 홀을 직접 노리는 게 아니라 퍼팅 라인을 읽고 가상의 목표를 정해서 스트로크를 해야 하는데 깃대가 오히려 집중력을 분산시키지 않을까? 그리고 경기 중 깃대는 바람에 흔들리거나 기울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들어가는 퍼팅을 튕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이 같은 논쟁에 오거스타내셔널은 최고의 실험실이다. 2005년 타이거 우즈의 칩샷이 그린에서 거의 90도로 꺾여 들어간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자. 공이 전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얼마나 굴러갈지 알 수 없는 곳이 오거스타 그린이다. 이 유리알 그린에서 깃대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지켜보는 것도 올해 마스터스의 재미난 감상법이 될 것 같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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