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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세월이 기억하는 김호철의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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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세월은 결코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다. 섬칫하리 만큼 차곡차곡 쌓이는 게 바로 세월이다. 기억이 무서운 것도 바로 그래서다. 사건과 사고를 몸소 겪으면서 기억세포에 쌓이는 정보는 소름이 돋을 만큼 생생하다. 결국 이 정보가 축적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되곤 한다.

‘김호철 파동’으로 배구계가 시끄럽다. 사상 첫 국가대표 전임제 사령탑으로서 잔여 임기가 3년이나 남아 있는 마당에 프로구단인 OK저축은행 감독자리를 놓고 협상한 게 들통났다. 부끄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팬은 물론 국민도 공분할 만큼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더욱이 OK저측은행이 먼저 감독 제안을 한 것이 아니라 김 감독 스스로가 “기회를 달라”고 OK저축은행에 추파를 던졌다는 사실은 지도자의 도덕성에 치명적 흠집을 남겼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지난 19일 급거 열린 대한배구협회(회장 오한남)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김 감독에게 내려진 자격정지 1년의 징계는 사태를 조기에 마무리 지으려는 협회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아직도 김 감독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커녕 자진사퇴를 조건으로 징계 수위를 협상대상으로 활용한 정황이 감지돼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명장(名將)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한 김 감독의 수준이하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화려한 광채 뒤에 숨겨진 그의 추악한 얼굴은 세월의 흐름속에 차곡차곡 쌓여져 있음을 모두가 알아야겠기에 서랍속에 처박아 뒀던 빛바랜 취재수첩을 뒤적여 보았다.

필자는 지난해 김 감독이 남자 국가대표 전임 사령탑으로 선임된 뒤 최천식 남자 경기력향상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김 감독은 국가대표 전임 감독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 등 굳센 철학보다는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밝기 때문에 프로쪽으로 도망갈 가능성이 높다”며 경각심을 일깨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필자의 우려에 최 위원장은 “배구인들이 뜻을 모아 만든 사상 첫 전임 감독제인데 설마 그러실라구요”라고 반문하며 필자의 날선 대화의 예봉을 꺾어버렸다.

꼭 1년만에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이번에는 최 위원장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 이야기 들으셨나요.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전화기를 타고 흐른 최 위원장의 성난 질문에 답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 비밀을 가슴에 묻어두려 했지만 사태가 본질을 흐리는 곁가지의 폭로전으로 치닫고 있어 세월이 기억하는 김 감독의 탐욕스런 민낯을 공유하는 게 이번 사태의 깔끔한 마무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기자의 예측능력은 어설픈 감각과 직관적 본능에 기인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경험하면서 축적된 정보와 그 정보속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행동패턴과 전개양식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 생긴다. 김 감독의 일생에서 도드라진 행동패턴은 감독자리가 났을 때 두 팀을 끌어들여 몸값을 올리는 수법을 즐겨 썼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무려 세 번이나 이 수법을 썼다. 특정구단과 계약서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감독 계약에 합의한 뒤 이를 빌미로 또 다른 구단에 접근해 협상내용을 슬쩍 흘리며 몸값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본인이야 한껏 오른 계약조건에 신바람이 났겠지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돼버린 다른 구단은 낭패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김 감독의 수법이 처음으로 알려진 건 2010년 4월 경이다. KB손해보험의 전신인 LIG손해보험과 감독계약에 대한 구두 합의를 마친 뒤 돌연 현대캐피탈에 잔류한 이 사건은 큰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 김 감독이 배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명성이 워낙 대단했던데다 넋놓고 당한 LIG손보 측이 기업 이미지와 자존심 탓에 쉬쉬하느라 사건의 실체는 덮어진 채 그냥 넘어갔다. 전날 새벽까지 김 감독과 만나 보도자료 검토까지 마쳤던 LIG손보 측은 다음 날 아침 김 감독이 현대캐피탈과 재계약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숫제 넋을 잃었다. 감독 영입을 주도했던 사무국장은 수원 숙소 앞에서 비정하게 떠난 김 감독을 하릴없이 기다리는 촌극을 펼치기도 했다.

김 감독의 이중플레이가 소문이 나자 수면 아래 감춰졌던 또 다른 비사(秘事)도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대한항공은 2007~2008시즌 도중에 김 감독과 비밀리에 접촉해 다음 시즌 감독 영입 협상을 벌였고 김 감독이 요구한 무리한 조건을 힘들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 감독이 시즌 종료 후 뜬금없이 “없던 일로 하자”며 이적을 거부하고 현대캐피탈에 잔류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현대캐피탈 관계자가 대한항공 측에 전해준 말에 따르면 김 감독이 “대한항공이 이만큼 주기로 했다”면서 대한항공을 이용해 재계약 몸값 인상을 이끌어냈다고 증언했다. 세 번째 이중플레이는 KOVO 관리구단인 드림식스를 후원했던 러시앤캐시(현 OK저축은행)가 2013~2014시즌 제 7구단으로 창단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창단 감독으로 사실상 내정됐던 김 감독이 똑같은 수법으로 몸값을 올려 현대캐피탈로 말을 갈아탔다. OK저축은행이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김 감독에게 두 번이나 당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 출신 명장의 민낯이 드러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 체육의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결과와 성적이 모든 걸 덮어주던 시대에서 다양한 체육의 가치, 그 중에서 지도자의 도덕성과 신뢰감이 중요해진 시대가 도래했다. 양심이 없는 이중플레이로 늘 돈의 가치만 좇던 김 감독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난 이상 앞으로 그를 코트에서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팬과 국민이 등을 돌린 지도자에게 지휘봉을 쥐어줄 구단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세월이 기억한 그의 탐욕이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한 두번 넘어갔다고 해서 진실을 은폐하고 세상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건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바야흐로 ‘김호철 시대의 종언(終焉)’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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