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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지방체육과 정치의 잘못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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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지난해 연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한국의 정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해야하는 정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고 삶의 걸림돌이 되는 일을 조장한다면 그건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을 금지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결론적으로 법 개정 명분에도 맞지 않는 최악의 법이다. 체육의 자율성 확보와 정치로부터의 체육을 독립시키겠다는 게 법 개정의 이유이자 명분이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벌써 예비 정치인들이 지방체육회장 선거를 위해 뛰고 있거나 향후 2년 사이에 열리는 총선거와 지방선거 그리고 대통령선거를 앞둔 각 정당들이 체육을 정치 조직화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의 자율성 확보와 탈정치화를 위해 도입한 법개정이 되려 체육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자기모순,이게 바로 지자체장의 체육회장 겸직금지안을 골자로 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의 생생한 민낯이다.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지방체육계는 충분한 논의없이 단행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며 반대하고 있지만 현실은 냉랭하다. 수준낮은 정치권(?)은 여전히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지방체육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줘야할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는 무슨 속셈인지 해괴한 논리로 발을 빼고 있는 형국이다. 뒤늦게 바뀐 법이 몰고올 파장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치권과 체육계의 힘겨루기에 눈치만 보고 있다. 현장에 바탕을 둔 심층적인 고려없이 체육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하고 접근한 정치인과 관료들의 성급한 정책적 결단이 두고 두고 아쉽다. 뻔히 예상되는 법 개정의 폐해를 뒤늦게나마 반상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절실하건만 눈앞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물론 국민을 볼모로 볼썽사나운 자존심 싸움마저 벌이고 있어 가슴이 답답하다.

지자체장 체육회 겸직 금지안과 관련돼 터져 나오고 있는 문제점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17개 시·도체육회와 전국 228개 시·군·구 체육회는 다양한 정치적 셈법에서 벗어나 순수한 체육의 관점에서 현장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분석한 뒤 총의(總意)를 모았다. 바뀐 법이 야기할 수 있는 후폭풍이 예상보다 훨씬 크며 이는 체육을 돌이킬 수 없는 회오리바람 속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 지방체육 관계자들이 정치권과 대한체육회에 요구하고 있는 사항은 두 가지다. 첫번째는 지방체육의 재정과 시설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국민체육진흥법령 속에 지방체육 분야를 신설해달라는 데 목소리를 모았다. 두번째는 민간 체육회장을 선거인단으로 뽑는 게 아니라 총회에서 추대 혹은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법치국가에서 통과된 법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접점을 찾자는 게 체육계의 요구다. 17개 시도처장협의회(회장 정창수)는 이 두 가지 제안을 수용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발의를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아직도 정치공학적 셈법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지역정당의 색깔이 뚜렷한 몇몇 정당은 지자체장의 체육회장 겸직금지안을 통해 향후 2년새 열리는 3개의 큰 선거의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태도가 역력하다. 대한체육회는 지방체육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는 특정 정당을 끌어들여 이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비화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여 걱정스럽다. 대한체육회가 지방체육계가 쌍수를 들고 반대하는 선거인단 선거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처사라는 게 체육계의 공통된 견해다.

법개정 명분과 정면 배치되는 체육의 정치화는 체육계는 물론 국민도 바라지 않는 구 시대의 적폐다. 대한체육회와 정치권이 지방체육계가 요구하는 두 가지 제안을 적극 수용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체육은 힘있는 자의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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