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무덤 속 벤 호건도 부러워 할 야간 골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공식대회 사상 첫 야간경기 열려

‘골프는 햇빛 아래서’는 고정관념

낮경기 야구도 밤에 하면서 인기

야간 라운드 골프산업 발전 도움

중앙일보

유럽여자 투어 두바이 문라잇 클래식이 열리는 에미리츠 골프클럽의 야간 조명. 대회를 앞두고 LED 조명으로 교체했다. [사진 에미리츠 골프클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설적인 골퍼 벤 호건(1912~97)은 해가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연습을 할 수 없는 어두움이 싫었다. 당시 기술로 불을 켤 수는 있었지만, 공이 떨어지는 지점까지 환하게 밝힐 수는 없었다. 골프는 낮에 하는 것이었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 야간에도 불을 켜고 골프 연습은 물론 라운드도 한다. 골프 야간 경기의 시초는 1999년부터 미국 ABC가 방송한 ‘월요일 밤 골프’였다. 수퍼스타 타이거 우즈가 100만 달러를 놓고 다른 선수와 경쟁하는 이벤트였다. 우즈는 99년 데이비드 듀발과 ‘셔우드의 결투’, 2000년 세르히오 가르시아와 ‘빅혼의 전투’ 등을 치렀다.

당시 야간 경기는 어려움도 있었다. 조명 빛 때문에 카메라가 공을 놓치기 일쑤였다. 2007년부터 야간 라운드를 하는 스카이72 골프장의 박선영 홍보팀장은 “인공조명과 태양 빛이 장단점이 있다. 밤에는 습기가 올라와 그린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시간이 또 지났고 기술이 더 발전했다. 이제 공식 대회에서도 야간 경기가 열린다. 1일 두바이 에미리츠 골프장에서 개막한 유럽 여자투어(LET) 오메가 두바이 문라잇 클래식. 달이 뜬 밤에도 태양 빛과 큰 차이 없는 조명을 켜고 경기한다.

아직 야간 골프에 걸림돌은 남아있다. 자연을 접하는 스포츠인 골프는 자연광 속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꼭 그럴까.

중앙일보

해가 지면 연습을 할 수 없어 아쉬워했던 20세기 중반의 전설적인 골퍼 벤 호건. [중앙포토]


야구에 야간 경기가 도입된 건 1927년이다. 비공식 이벤트 경기인데도 반발이 컸다. 당시 뉴욕 자이언츠 존 맥그로우 감독은 “야구는 낮에 하는 게임이며, 메이저리그에 인공조명을 켜는 야간경기 도입 시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시내티 레즈는 주중 관중이 3000명이 안 돼 파산 위기였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1935년 조명탑을 달고 메이저리그 첫 야간경기를 강행했다. 2만 명 이상의 관중이 찾아왔다. 조명을 설치한 GE는 “스포츠의 혁명”이라고 자찬했다. 관중이 늘고 TV 시청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니 틀린 얘기는 아니다. 야간경기는 프로스포츠가 평일 일과 후 여가 수단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이제 다른 실외 종목도 야간경기가 일반적이다. 아무도 야구는 낮에 하는 스포츠라고 하지 않는다.

골프 코스는 야구장보다 넓다. 전력 소비가 많다. 전력난이 심했던 2011년, 정부는 골프장 야간 개장을 금지했다. 그러나 곧바로 철회했다. 고용과 생산 감소 등 부작용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정이 좋다. 스포츠 조명회사인 진우엘텍 박열구 사장은 “신형 LED 조명을 쓸 경우 18홀을 5시간 켠다면 조명 전기료는 25만 원 정도다. 수명도 기존 조명의 10배 이상이고, 골프장 밖으로 나가는 불빛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낮에는 지하에 감췄다가 밤에 꺼내는 조명탑도 개발됐다.

야간 라운드는 골프 코스 활용도를 높여 골프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 한국의 스포츠 조명 기술이 뛰어나 동남아 등지에 수출 가능성도 있다. 야구 야간경기처럼 투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KPGA 송병주 전무는 “관중과 시청률 증가를 고려할 때 야간 경기는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라고 말했다. KLPGA 최진하 경기위원장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야간 경기는 빛과 어둠의 대비 속에서 치러진다. 예술 공연장처럼 관중은 더 집중하고, 경기는 더 극적이 된다. 무덤 속 벤 호건이 이 광경을 본다면, 밤에 연습은 물론이고 경기도 할 수 있는 요즘 골퍼들을 부러워할 것이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