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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호프는 왜 그토록 원고를 지키려 했을까.
창작 뮤지컬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이다. 지난해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 선정 작품으로, 카프카 유작 원고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현대 문학의 거장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의 소유권을 두고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1924년부터 30년간 재판 중인 78세 노파 에바 호프가 주인공이다.
호프는 이 동네의 미친 여자라고 불릴 만큼 괴팍하고 고집 센 노인이다. 법원에서도 거친 말을 서슴지 않는, 말투부터 행동까지 가까이 다가가기 꺼려지는 인물이다. 그는 내용도 모르고 읽어본 적도 없는 원고를 지키기 위해 수십 번의 항소를 거듭하며 기나긴 재판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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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 원고를 그깟 종이 따위라고 말한다. 호프를 종이 쪼가리에 평생을 바친 여자라고 조롱한다. 하지만 호프에게 원고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원고는 곧 자신이자 그가 살아온 증거다. 원고 때문에 어머니도, 연인도 곁에 없고 이제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고 덕분에 외로운 삶을 버텨올 수 있었다. 엄마 마리에게도, 호프에게도 원고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지옥 같은 세상을 버티게 해준 유일한 삶의 이유였다.
엄마처럼 살기는 죽기보다 싫다고 했지만 어느새 돌아보니 엄마와 다를 바 없이 원고만 남은, 원고에 집착하는 여자로 늙었다. 오랜 시간 진행된 재판은 겉으로는 원고의 소유권을 가리고자 하는 것이지만, 알고 보면 삶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원고가 돼버린 호프가 두려움을 내려놓고 온전히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110분이라는 시간에 호프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생애를 담아낸다. 관객으로 하여금 재판을 지켜보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호프의 삶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도록 만든다. 요제프 클라인의 원고를 K라는 인물로 의인화한 점이 독특하다. 절망 속에 자신을 미뤄놓고 사는 호프에게 자신이 없어도 빛날 거라며 진심으로 행복으로 빌어주는 모습은 뭉클함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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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클라인의 원고를 마리에게 맡긴 베르트와 원고의 주인을 가리는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 법정 재판장, 호프를 배신한 연인 카델과 호프와 대척점에 있는 도서관을 대변하는 변호사 등 1인 2역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빛나잖아’, ‘안녕’, ‘길 위에 나그네’, ‘호프’, ‘빛날거야 에바호프’, ‘나의 집’ 등 넘버는 잔잔하면서도 슬픔을 극대화해 여운을 짙게 남긴다.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은 몰라. 전부를 잃고 남은 게 하나라면 그 하나를 위해 난 전부를 걸어’라고 노래하는 호프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관객은 없을 터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법정이 배경이지만 다양한 장면을 구현해낸다.
김선영, 조형균, 송용진, 이하나 등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졌다. 구부정한 노인으로 변신한 배우 김선영의 변신이 돋보인다. 백발에 버짐이 핀 얼굴, 낡은 옷을 입은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락없는 할머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섬세한 연기가 요구되는 역할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극이 진행되는 만큼 유년기부터 젊은 시절, 초라한 노인이 되기까지 호프의 감정에 이입해야 한다. 어느새 늙어버린 호프가 과거 아픔을 겪는 젊은 호프와 어머니를 마주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김선영은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한 베테랑답게 전 생애에 걸친 호프의 감정에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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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5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110분.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알앤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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