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이런 분위기의 대표팀 본 적 없어"… 마음으로 통한 '원 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U-20 대표팀, 최상의 팀워크

지시 아닌 이해시키는 리더십… 훈련땐 호통 대신 웃음소리 넘쳐

16일(한국 시각)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폴란드 U-20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우치 스타디움 앞. 경기를 앞두고 만난 소녀 팬 구지선(17)양은 폴란드 주재원인 아빠를 졸라 이번 대회를 한 경기만 빼놓고 다 봤다고 했다. 이강인과 이광연의 사진이 박힌 피켓에 '부케 대신 트로피'라고 쓴 구양에게 이번 대표팀의 매력을 물었다.

"'케미(케미스트리의 준말로 사람 사이의 호흡을 뜻함)'가 너무 좋잖아요. 서로 잘 지내는 모습에 반했어요."

◇마음으로 통한 '원 팀'

이번 대회를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본 수많은 대표팀 중 가장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다. 감독이나 코치의 호통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깼던 예전 훈련장 풍경과 달리 정정용호(號)엔 항상 웃음이 넘쳐 흘렀다. '덕장'으로 불리는 정정용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 속에 대표팀은 자연스레 '원 팀'이 됐다.

조선일보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 내내 한 팀으로 똘똘 뭉쳐 새로운 역사를 일궜다. 출신과 나이 등에 얽매이지 않은 이들은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뛰었다. 사진은 16일 U-20 월드컵 결승전(폴란드 우치)을 앞두고 21명의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가 어깨동무를 하며 전의를 다지는 장면.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8세 이른 나이에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2006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로 활동한 정정용 감독은 '지시가 아니라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지도 철학으로 선수들을 가르쳤다. 라커룸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틀거나 노래를 크게 부르는 것도 젊은 세대의 개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했다. 휴대전화 사용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다. 가벼운 숙소 밖 외출은 오히려 장려할 정도였다. 정정용 감독은 "이번 대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성적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월드컵에서 한 경기라도 더 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독이 선수를 아끼니 선수들도 마음으로 감독을 따랐다.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풀어질 법도 했지만 선수들 스스로 알아서 선을 지켰다. 선수들은 서슴없이 "운동장에서 '감독 선생님을 위해 뛰어보자'고 할 때가 있다"(고재현), "감독님은 평생 못 잊을 사람"(이강인)이라며 애정을 표시했다. 정 감독은 결승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특별한 제자들과 함께한 특별한 시간이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수들도 서로를 선후배가 아닌 동료로 대했다. U-20 월드컵에 2회 연속 출전한 맏형 조영욱(20·서울)부터 막내 이강인(18·발렌시아)까지 선수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장난을 쳤다. 두 살 어린 막내 이강인이 팀 분위기를 끌고나갈 만큼 '위계질서'란 단어는 이 팀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규혁까지 모두 뛰었다

대회를 앞두고 정우영(20·바이에른 뮌헨)의 소집이 불발되며 대체 선수로 뽑힌 수비수 이규혁(20·제주)은 준결승전까지 단 1초도 뛰지 못했다. 하지만 이규혁은 먼저 나서서 "경기에 못 뛴다고 뒤에서 싫은 소리를 하지 말고 다 함께 응원했으면 좋겠다"며 팀 분위기를 추슬렀다.

정정용 감독도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벤치 멤버들에게 '특공대'란 별명을 붙여줬다. 미드필더 고재현은 "감독님이 '너희가 잘 준비해야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며 "제가 특공대장, 이규혁이 응원단장을 맡았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벤치에서 누구보다 큰 소리로 동료를 격려한 '응원단장' 이규혁은 결승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10분가량 뛰었다. 이로써 박지민과 최민수 두 명의 후보 골키퍼를 제외한 19명의 필드 플레이어들은 모두 이번 대회에서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규혁은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이 '네가 못 뛰어 가장 힘들었을 텐데 잘 참아서 박수를 보낸다'고 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정정용 감독은 16일 출국에 앞선 공항 인터뷰에서 "이규혁을 투입하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었다"며 "오늘 아침엔 선수들을 볼 낯이 없어 식사 자리에 일부러 가지 않았다. 고생한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대회 기간 편두통이 심해져 귀에 이상이 왔다는 그는 "우리 선수들은 더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대표팀은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우치(폴란드)=장민석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