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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핵사이다 언니들의 대사맛집 '검블유'의 남다름[게기자의 뭐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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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이게은기자]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


일종의 복수극이나 치정 싸움에서 튀어나온 말이 아니다. tvN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 배타미(임수정 분)가 자신을 모욕한 국회의원 주승태(최진호)에게 던진 나지막한 일갈이다.


주승태는 만천하에 자신의 성매매 의혹을 제기한 배타미에게 "난 너 같은 년들이 제일 싫어. 욕망에 눈멀어 지 살 길만 강구하는 개 같은 새끼들"이라며 막말을 뱉는다. 하지만 배타미는 초연하게 "내가 욕망에 눈이 멀면 왜 안 되는데?"라고 맞서다가, 자신이 내린 욕망의 정의로 한 방을 날렸다. 여성은 계기가 있어야 비로소 복수심에 불타올라, 가까스로 욕망을 갖게 된다는 프레임을 분해한 돌직구다.


욕망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이다. 진취적인 태도를 담은 단어이지만, 이게 뭐 그리 무게 잡을 일이라고.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과 욕망은 비틀어진 형태가 아니고는 공생하지 못했다. 그 계기가 성공이든 자기실현이든 밥벌이의 치열함이든 '여성의 욕망이 그래서 뭐?'라고 묻는 이 핵사이다 발언은 '검블유'의 남다름을 보여주는 선언이다.


'검블유'는 참으로 독특하다. 포털 업계의 면면을 최초로 다루며 흥미를 끌었고, 현실적이면서 능동적인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매회 물음표를 던졌다. 중반부를 향해가면서는 단단하고 야무진 세 여자 배타미(임수정 분) 차현(이다희 분) 송가경(전혜진 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며 시청자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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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블유' 주인공 여성 3명은 국내 양대산맥 포털 회사 종사자들이다. 업계 2위 포털 바로 TF팀의 팀장 배타미, 바로 소셜 본부장으로 배타미와 앙숙이자 동료 차현, 재벌집 딸이지만 공허하게 사는 업계 1위 유니콘 이사 송가경. 모두 일터를 종횡무진하는 30대 후반 커리어 우먼들로, 경력 단절은 먼 이야기다. 세 사람은 으르렁거리긴 하지만 한때 연대하기도 했던, 혹은 아직 의지하고 있는 꽤 복잡한 관계도를 그린다.


직장에서의 배타미는 선후배나 동료에게 망설임 없이 직언한다. 때문에 그의 대사는 소음을 내고 쌩 지나가는 오토바이처럼 종종 날카롭다. 유니콘에서 팽당할 땐 "권력과 손잡고 여론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썩어빠진 회사에서 제 스스로 퇴사한다"라며 사표를 던졌다.


그렇다고 해서 외골수도 아니다. 팀원들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하며, 적재적소에 진솔함을 표현한다. 자신을 경계하는 차현에게 "그런 시각이 나한테 필요하다. 대놓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함께 일하자고 설득하는 배포도 가졌다. 유니콘을 떠나기 전, 동고동락했던 후배들에게는 "난 반드시 유니콘을 업계 2위로 주저앉힐 생각이다"라고 선전포고 하면서도, "그러니까 너희들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 나한테 배운 거 하나도 빠짐없이 다 써먹고. 내 약점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해.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너희들이니까"라고 말한다. 이토록 인간적인 당근과 채찍이 또 있을까.


사랑에 있어서도 솔직하고 당차다. 배타미는 박모건(장기용 분)에게 점점 빠져들지만, 10세 연하라는 사실과 첫 만남에 하룻밤을 보낸 상대라는 점을 들어 줄곧 밀어냈다. 그러면서도 박모건의 직진 사랑에 수줍어하고, 연락이 두절되자 박모건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강릉까지 차를 몰았다. 배타미는 박모건에게 "난 지금 이럴 시간이 없는데, 넌 내가 자꾸 시간을 내게 해"라고 돌직구도 날린다.


이제 배타미는 박모건과 로맨스를 키우지만, 그렇다고 배타미의 삶이 연애로 무작정 휘청이는 건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워커홀릭이고 박모건은 삶의 일부다. 삶의 무게중심을 박모건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작품 속 여성은 일과 사랑 중 사랑을 선택하고 커리어를 뒤로했다면, 배타미는 일직선상에 두고 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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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도 배타미 못지않게 입체적인 인물이다. 자신을 성추행한 남성을 폭행해 폭행 전과를 갖고 있는가 하면, 양다리를 걸친 남자친구를 응징하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 회사에서는 그 누구보다 냉철하고 일도 똑부러지게 처리한다.


유도선수 출신으로 우직하고 단순한 그녀는 일상의 중요한 낙 중 하나인 막장 드라마에 열광하고, 그 드라마 덕분에 알게 된 무명배우 설지환(이재욱 분)에게 그야말로 무장해제로 빠져든다. 라이벌 회사 출신 배타미가 팀장이 되자 "배타미 의견에 반대만 하겠다"며 경계했지만, 배타미가 검색어 조작의 희생양이 됐을 땐 진심으로 그를 감쌌다. 강해 보이지만 의리와 인간미를 더해, 냉온탕을 얄밉지 않게 오고 간다.


반면 송가경은 비교적 수동적인 삶을 산다. 시어머니 장희은(예수정 분)에 순응하며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정략 결혼으로 맺어진 남편 오진우(지승현 분)와는 부부가 된 지 10년이 됐지만 아직 남 같다. 송가경은 "꿈이 무엇이냐"는 장희은의 질문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답한다. 고단한 처지가 축약된 처량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진화 중이다. 먼저 유니콘 메인에 가짜 뉴스를 띄우라는 장희은의 강권에 반기를 들었다. "유니콘을 못 가진 어머님이 지금만큼 정치적으로 매력적일까요? 유니콘은 제 겁니다. 제가 일궈 놓은 유니콘에 더 이상 손대지 마세요"라며 맞섰다. 또한 자신의 부모님이 장희은에게 무릎을 꿇자 "10년 개로 살았으면 빌어먹을 충성.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라며 오진우와 이혼을 선포했다. 송가경이 온전한 자아를 쟁취할 수 있을지 기대감을 더한 대목들이다.


혹자는 생각할 거다. 현실에 배타미나 차현같은 야무진 마이웨이 삶을 몇 명이나 살고 있겠냐고. '검블유'는 그런 이들에게 당신도 충분히 당당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여성들에게 이는 마냥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며, 누구나 욕망을 드러내고 삶을 주도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이상적인 인생이란 정답은 없지만, 최소한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는 말자고. 그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면, 송가경의 자아 찾기 여정을 지켜보는 것도 '검블유'가 제시한 또 다른 가능성이다. 회사에 청춘을 바치고 열정을 쏟다가도, 불합리한 처우에는 "회사한테 내가 부품인진 몰라도 난 내가 소중하다"고 스스로를 지키는 배타미처럼. 모두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고유 영역을 지킬 자격이 있다고 '검블유'는 말한다.


eun5468@sportsseoul.com


사진ㅣ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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