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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목함지뢰로 다리 잃은 하재헌의 목표, 도쿄패럴림픽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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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하재헌.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스포츠서울 배우근 기자] 장애인 조정 국가대표인 전 예비역 중사 하재헌(25)의 목표는 2020도쿄 패럴림픽 출전이다. 그런데 도쿄에 입성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다음달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7위 이내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 도쿄 패럴림픽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다. 만약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순위내에 들지 못하면 내년 4월 아시안컵에서 메달권에 진입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일단 최우선 목표는 오스트리아 세계선수권 7위 진입이다.

하재헌은 지난해 군인 신분으로 전국체전 우승, 아시안컵 준우승 등 5개 국내·외 대회에 참가해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재활로 시작한 조정이었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후 그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해 전역을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 4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장애인 조정선수단에 입단해 본격적인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SH공사의 지원속에 물살을 가른지 이제 3개월 째. 하재헌은 “아직 세계 규모의 대회에 나가본 적이 없다. 상대 선수들의 영상을 보며 분석하고 있는데, 가서 부딪혀 봐야 할거 같다”라고 하면서도 “이제 조정이 확실한 직업이 되니 좀 힘들긴 해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재헌이 세계선수권과 패럴림픽에서 출전하는 종목은 조정 PR1싱클스컬이다. PR1은 가장 중증 등급으로 의족 없이 허리 이하를 쓰지 않은 채 팔의 힘으로만 노를 저어 2㎞를 가야한다. 그는 “바람이나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순풍이면 그나마 낫지만 역풍이면 마라톤 풀코스에 비유할만큼 힘이 든다. PR3 등급은 다리를 함께 쓰고 PR2는 다리 하나를 절단한 경우다. 팔로만 가야하는 PR1이 가장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하재헌은 하체 근력이 중요한 조정에서 상체를 이용해 타다보니 자연스럽게 덩치가 커졌다. 군인시절 상의가 100사이즈였다면 현재는 110을 입고 있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재헌은 지난 2015년 육군 제1사단 수색대대 소속으로 DMZ 수색작전에 투입됐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수색로 통문 인근에 매설된 ‘목함지뢰’를 밟았다. 스무번 이상의 수술을 받고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양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오른쪽 다리는 무릎 위,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 정강이 부분을 절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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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헌. 페이스북 캡쳐


하지 절단의 경우 뛰지 못하기 때문에 유산소 활동으로 사이클과 조정을 할 수 있다. 하재헌은 재활을 위해 조정을 선택했고 2015년 실내 조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시작했다. 그런데 장애인조정연맹 임명웅 감독이 남다른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선수 생활을 권유했다. 하재헌은 수도병원에서 근무하며 조정 선수로 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실내가 아닌 실제 강에서 배를 타며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병원에선 재활에 얽매어 있었는데 강 위에서 너무나 자유롭고 마음이 편해졌다. 장애인 되고 나서 시작한 첫 운동이 조정이었는데, 그때 이게 내 길인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하재헌은 여름이면 반바지 차림으로 의족을 드러낸다. 언론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유는 조금이나마 비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다. 그는 “많은 장애인이 밖에 나가는 걸 꺼리고 집에만 있다. 장애는 부끄러운게 아니다. 우릴 보고 안타까워하는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무시하는 눈빛은 반갑지 않다. 누구나 예비 장애인이다. 나도 한순간에 장애인이 됐다. 내가 의족을 드러내는 건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 느껴진다. 신기하게 보이니까 쳐다보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웅성거리며 여러번 쳐다보는 건 부담스럽다. 장애인도 그냥 평범하게 대해 달라”라며 편견과 싸우는 이유를 밝혔다.

하재헌은 조정선수라는 인생 2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국내최초 장애인 조정실업팀 선수이며 장애인 조정 국가대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좌절과 원망의 시기도 있었지만 하나씩 극복해 나가며 긍정의 시선으로 새 삶에 도전하고 있다. 의족을 끼기 전엔 ‘어떻게 걸을까’를 고민했고 의족의 도움으로 걷게 되면서 부터는 ‘어떻게 하면 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과정과 결과가 모여 현재의 하재헌은 힘차게 물살을 헤치고 있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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