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머 하시노?"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의 이 대사는 지금도 곧잘 패러디가 될 만큼 유명하다. 이 장면의 압권은 아버지 직업을 묻는 교사(김광규)에게 고교생 준석(유오성)이 "건달입니다"라고 답하자 교사가 손목시계를 푸는 '디테일'에 있었다.
2000년대 이전 고등학교를 다닌 남자라면 교사가 시계를 푸는 행위에 담긴 의미를 모를 리 없다. 이는 마치 '이제부터 너를 흠씬 두들겨 패겠다'는 예고와 같았다. 1990년대 중반 학창 시절을 보낸 기자 역시 몇몇 교사가 교탁에 손목시계를 풀어놓는 날이면 두려움에 떨곤 했다.
지난 11일 축구를 보면서 그 나쁜 기억이 되살아났다. 울산 현대와 대구 FC의 K리그 25라운드. 상황은 이랬다.
후반 14분 대구 세징야의 킥이 울산 수비수 윤영선의 팔에 맞았다. VAR (비디오 판독)을 통해 김대용 주심이 대구의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그러자 김도훈 울산 감독이 폭발했다.
젊은 대기심에게 눈을 부라리며 거세게 항의하던 김 감독은 주심이 퇴장 명령을 내리자 가슴을 들이밀었다. 그러다 급기야 시계까지 풀었다. 일이 커지겠다 싶어 코치진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김 감독에게 붙어 말렸지만, 이를 거칠게 뿌리친 그는 이번엔 대기심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소동으로 경기가 5분 이상 중단됐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은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표현이 과할 수 있다. 팀을 위한 행동이었다"며 행위를 정당화했다.
전북과 살얼음판 선두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판정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할 순 있다. 그동안 판정에 쌓였던 불만이 일시에 터져 나왔을 수도 있다. 올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졸전 끝에 탈락하며 큰 실망을 안긴 김 감독은 K리그 우승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팬들은 무슨 죄인가. 시원한 골 장면을 보며 무더위를 날리려 했던 팬들은 지나친 항의에 '불쾌지수'만 더욱 올라갔다. 경기장을 찾은 어린이 팬들은 김 감독의 과격한 행동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더구나 그 장면은 명백한 페널티킥이었다.
올 시즌 K리그는 25라운드까지 관중 120만7597명을 동원하며 지난 시즌 1~38라운드 총관중(124만1320명)을 가볍게 넘어설 기세다. 지난달 '날강두' 호날두의 '노쇼' 사건으로 팬들 앞에서 최선을 다한 K리그 선수들에 대한 호감도도 덩달아 상승했다.
긍정적 공기가 가득 찼던 축구장에서 '아부지, 머 하시노?'와 같은 장면을 볼 줄은 미처 몰랐다. 14일 상벌위원회에서 김 감독은 추가로 3경기 출장 정지 징계(총합 5경기)를 받았다. 감독석을 떠나 있는 동안 시계를 푸는 대신 열심히 응원하는 팬들을 바라보며 책임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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