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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욕하면서도 본다'는 부부 예능, 그 싸움 붙이는 게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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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회 맞은 TV조선 '얼마예요?' 손범수

지난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TV조선 스튜디오. 복도 바깥으로 여러 남녀의 목소리가 섞인 고성(高聲)이 터져 나왔다. 월요일 밤 10시 예능 프로 '인생감정쇼―얼마예요?' 녹화 때면 수시로 벌어지는 일. 또 남편들이나 아내들 중 어느 한 편이 지탄받을 발언을 한 것이다. 제작진은 이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오히려 반긴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손범수(55) 아나운서가 스무 명이나 되는 출연진 한가운데 서서 이쪽저쪽 목소리를 듣고, 언쟁도 붙이는 독특한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6시간 넘게 이어진 녹화에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었다. 다른 출연진은 내내 의자에 앉아 있는 반면 그 혼자 360도 무대 중앙에 서서 진행하는 강도 높은 노동. 개성 넘치는 스무 명 출연자 한 명 한 명이 악기 연주자라면, 토크의 완급을 조절하고, 논쟁거리를 찾아 불을 댕기는 그의 역할이 지휘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조선일보

지난 16일 TV조선 예능 '인생감정쇼-얼마예요?' 녹화 현장에서 만난 손범수는 "출연자를 최대한 빛나게 해주는 것이 진행자"라며 미소를 지었다. 19일 100회를 맞는 '얼마예요?'에서 그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출연자들끼리 언쟁을 붙이는 익살스러운 '지휘자' 역할을 맡고 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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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는 주인공이 아니에요. 출연자를 돋보이게 하고 최대한 빛나게 해줘야죠." 녹화 현장에서 보니 그는 우리가 TV에서 보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매끄러운 흐름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 '아이들이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더 따른다'는 출연자 푸념에 "그렇지, 할머니는 자기들한테 잔소리 안 하니까" 맞장구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에 대한 원성(怨聲)을 유도하는 식이다.

TV조선 인기 예능 '얼마예요?'가 19일로 100회를 맞는다. 달랑 6회 방송하고 종영하는 프로그램도 수두룩한 '예능 무한 경쟁' 시대에 방송 6개월 채 안 되어 최고 시청률 6.5%(수도권 유료 가구·닐슨)를 내며 종편 예능에 진기록을 남긴 프로그램. 부부 갈등부터 고부(姑婦) 다툼, 시누이 험담까지 담아내며, 시청자들 사이에선 "욕하면서 본다"는 말까지 나온다. 우리네 삶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확인하는 묘한 프로그램.

1990년 KBS 공채로 데뷔한 손 아나운서는 30년 MC 생활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했다. KBS 인기 교양 프로그램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를 진행할 때는 기존의 '근엄한' 아나운서 이미지를 깨고 성대모사를 시도했다. 하마부터 앵무새, 도마뱀까지 동물 목소리를 직접 입으로 내는 진행자는 분명 신선한 충격이었다. 종영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손범수' 하면 아직도 이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그는 '얼마예요?' 제안을 받고서 '분명히 뜬다'는 확신을 했다고 한다. "모두 자기 입장을 갖고 출연하고, 시청자들도 자기 입장에서 보는데 어찌 몰입이 안 되겠어요." 남들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모습에 위안을 느끼는 '따뜻함'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반짝하는 베스트셀러보다 은근하면서도 꾸준한 스테디셀러로서의 요소를 더 많이 갖췄다"고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좀더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담아낼 수 있는 방송을 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제작진에 살짝 물어보니 "부부를 한꺼번에 섭외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끌어내기 위해 5년 이상 결혼 생활을 이어온 중년 부부를 섭외하는 것이 원칙. 실제 부부들이다 보니 '19금(禁)' 발언도 간혹 나오지만,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녹화만 하고 방송될 내용은 편집에서 잘라낸다"고 했다.

19일 밤 10시 방송되는 '얼마예요?' 100회 특집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주제로 다시 보고 싶은 부부로 뽑힌 '이병훈―백영미' 부부가 출연해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주말 부부가 된 사연을 소개한다. 터줏대감 부부로 통하는 이윤철―조병희도 과거 방송에서 못다 풀었던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의문의 '핑크색 투피스'에 대한 사연을 들려준다.

[신동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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