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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베이스볼 라운지]더 이상 ‘좌우놀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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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LOOGY’. 좌완 스페셜리스트를 뜻하는 단어다. ‘스페셜리스트’는 특별한 느낌이지만 LOOGY는 일종의 낮춤말로 ‘Lefty One Out GuY’의 줄임말이다. 아웃카운트 1개만 잡는 왼손이라는 뜻이다.

투수 분업화를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명장 중 한 명인 토니 라루사 감독이 고안했다. 경기 중후반 상대팀의 강한 좌타자 1~2명만 상대하고 내려오는 왼손 투수다. 왼손 타자에게 왼손 투수가 강하다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이다.

좌타자에게는 좌투수가, 우타자에게는 우투수가 비교적 강하다. 좌우 투수에 따라 좌우 타자를 반대로 배치하는 전략을 ‘플래툰’이라고 한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있다. 지난 18일 류현진이 선발 등판했을 때 상대 애틀랜타 타선은 투수를 뺀 8명 중 7명이 우타자로 구성됐다. 내셔널리그 타점 1위인 프레디 프리먼만 좌타자였다.

KBO리그에서도 플래툰 전략이 자주 쓰였다. 이른바 ‘벌떼 야구’라 불렸던 투수 기용은 상대 타자의 약점을 이용한 전략이었다. 좌우는 물론 사이드암과 언더스로 등을 모두 조합해 상대 타선을 흔들었다. 불펜의 구색을 맞추는 것은 팀 전력 구성에 중요했다.

문제는 KBO리그에 쓸 만한 좌투수가 없다는 데 있다.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19일 현재 구원으로 1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좌타자 상대 피OPS가 가장 낮은 투수는 두산 함덕주로 0.439를 기록 중이다. 2위는 키움 오주원으로 0.455다. 둘 모두 LOOGY라기보다는 마무리에 가깝다. 5위(0.491)에 올라있는 삼성 임현준이 리그에서 거의 유일한 좌완 스페셜리스트다. 임현준은 야구에서 희귀한 좌완 사이드암스로 투수다.

좌타 상대 구원투수(10이닝 이상) 상위 20명 중 좌완 투수는 이들 3명에다 SK 김태훈(17위·0.612), 두산 권혁(19위·0.620) 등 5명이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우투수다.

KBO리그에서도 ‘데이터’가 강조되면서 과거 좌투수에 좌타자를 붙이는 ‘심리적 이점’보다 드러난 숫자를 더욱 중시하게 됐다. 감독들의 선택도 과거와 달라졌다. KT 이강철 감독은 경기 중후반 좌타자 상대 카드로 우완 주권을 기용한다. 주권의 체인지업이 좌타자에게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반대로 좌완 정성곤은 우타자 상대로 투입한다. 정성곤의 체인지업 역시 같은 효과다.

두산 김태형 감독 역시 좌타 상대 우선 카드로 권혁보다 김승회를 우선했다. 아웃카운트 1개를 위해 투수를 기용하는 대신 좌타자 상대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1이닝 이상 끌고갈 수 있는 카드다. LG 류중일 감독은 “진해수가 빠질 경우 임찬규, 김대현 등이 좌타자를 상대로 쓸 수 있는 카드”라고 설명했다.

키움은 더욱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장정석 감독은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우완 사이드암 양현을 기용한다. 우완 사이드암은 전통적으로 좌타자의 먹잇감으로 인식된다. 장 감독은 “양현의 싱커가 좌타자 바깥쪽에서 매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양현은 좌타자 상대 피OPS가 0.478로 리그 전체 5위다.

올시즌 좌타자들의 고전이 이어지는 것은 단지 공인구의 반발력뿐만 아니라 데이터에 익숙해진 감독들의 투수 기용이 바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식’은 ‘진리’가 아니다. 야구는 끊임없이 바뀌고, 더 이상 ‘좌우놀이’는 없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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