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이덕희, 청각장애 딛고 ATP투어 본선 첫승… ‘인간승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윈스턴세일럼 오픈 단식 1회전 승 / 정현·권순우 이어 男 테니스 희망 / 나달·조코비치 등 톱스타 큰 관심 / “어려움 많았지만 좌절않고 도전 / 남은 경기도 최선다해 노력할 것”

세계일보

이덕희가 2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윈스턴세일럼 오픈 1회전에서 자신의 APT투어 첫 승을 거뒀다. 그는 APT투어에서 사상 최초로 단식 본선에서 이긴 선수라는 의미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ATP홈페이지 캡처


이덕희(21·서울시청·세계랭킹 212위)는 세계무대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어보지 못한 무명의 선수다. 하지만 이미 2년 전 남자프로테니스(ATP) 홈페이지에 인터뷰가 실렸을 정도로 이 종목에서는 주목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선천적으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 3급의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프로선수로 당당히 세계무대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도전기는 세계 정상급 스타들도 큰 관심을 가져, 이덕희가 2013년 성인 랭킹 포인트를 처음 따내자 라파엘 나달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이덕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나달은 2014년 프랑스오픈을 앞두고 이덕희를 초청해 훈련을 함께 했다. 이듬해인 2015년 노바크 조코비치는 윔블던 훈련파트너로 그를 초청했다. 이 같은 관심에 힘입어 이덕희는 꾸준히 실력을 쌓아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선수로 성장했다.

이런 이덕희가 이번에는 ATP 홈페이지의 메인을 장식했다. 세계무대 도전 끝에 마침내 첫 승리를 따낸 것. 그는 2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에서 열린 ATP 투어 윈스턴세일럼 오픈 단식 본선 1회전에서 헨리 라크소넨(27·스위스·120위)을 2-0(7-6<7-4> 6-1)으로 제압했다. 이날 승리로 이덕희는 1972년 창설된 ATP 투어 사상 최초로 단식 본선에서 이긴 청각 장애 선수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 의미 있는 승리는 ATP 홈페이지뿐 아니라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유수 언론도 별도의 뉴스로 전하며 비중 있게 다뤘다.

그는 지난해부터 남자테니스 최상위 무대인 ATP투어 도전을 준비해왔고, 지난해 6월 터키 안탈리아오픈 예선 이후 약 1년 2개월 만에 투어대회 예선에 도전해 마침내 생애 첫 투어 본선 무대 진출에 성공했다. 이어 첫 투어 경기임에도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잡아내며 기선을 제압한 뒤 2세트에서는 한 차례도 브레이크 포인트를 내주지 않고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번 첫 승리를 기반으로 이덕희는 ATP투어 도전을 본격화한다. 현재 한국 남자테니스는 지난해 선풍을 일으켰던 정현(23·150위)이 부상으로 잠시 주춤한 사이 이덕희의 국내 라이벌로 꼽혔던 권순우(22·90위)가 세계랭킹 100위권 이내로 진입해 투어대회에서 속속 승리를 쌓으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이덕희까지 합세해 한국 남자테니스는 세 명의 20대 초반 선수가 투어급 대회에서 함께 경쟁하며 성장해나갈 수 있게 됐다.

이덕희는 경기 뒤 인터뷰를 통해 “공이 코트, 라켓에 맞는 소리나 심판 콜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공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상대 몸동작 등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으면서도 “일부 사람들이 저의 장애를 비웃기도 하고,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 등 주위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청각 장애가 있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서 “남은 경기도 오늘처럼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