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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50년 인생에 대한 철저한 반성문, '야구는 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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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해태 시절 무등산 폭격기, 국보로 불렸던 대투수 선동열.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현역 시절 ‘국보’로 불리던 선동열 전 한국야구대표팀 전임감독은 이른바 ‘야구 바보’다. 가끔 소주 한잔하며 나누는 대화의 90%는 야구 얘기다. 현역시절 추억을 꺼내기도 하고, 현재 한국야구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십 수 년간 토막토막 들었던 선동열의 야구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야구는 선동열’. 부제는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하라(도서출판 민음인·사진)로 달았다. 야구 밖에 모르던, 제목도 그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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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시작한 계기부터 감춰왔던 가족사까지 총망라했다. 읽다보면 묘한 감상에 젖는다. 이 책은 자전적 에세이이자 선동열의 야구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냈지만 반성문으로 귀결된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것처럼 선수로, 감독으로, 야구인으로 성찰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억울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해명했고 부족한 점은 깨끗이 시인했다. 수세에 몰려도 정면돌파를 선택한 ‘국보’ 다운 기개가 필체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면서 교과서다. 선수들 특히 투수들이 귀담아 들을만 한 선동열식 투구 철학이 비교적 상세하게 담겨있다. 유년시절부터 매일 왕복 10㎞ 이상 달리기를 했고,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에 입단한 1996년 2군을 거쳐 교육리그까지 내려가는 치욕을 맛봤을 때 스텝 앤드 스로(Step and throw)라는 기본으로 돌아가 밸런스를 회복한 얘기는 성과에 매몰돼 기본을 등한시 한 수 많은 선수들이 되새겨볼 만 한 얘기다. 고교시절 일기장에 썼다는 ‘야구 10계명’도 흥미롭다. 초구는 항상 스트라이크를 잡고, 습관적인 투구 패턴은 상대타자에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등 고교생 선동열이 나름 구축한 투구관을 여과없이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프로 감독생활까지 한 뒤 10계명에서 수정해야 할 것들을 적어 후배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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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최동원과 해태 선동열이 선발 맞대결을 앞두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책에는 ‘선배’ 최동원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기록 돼 있다. (스포츠서울 DB)


군부독재 시절 정권의 방해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한 선동열은 광주 민주화항쟁으로 피해를 입은 동향 시민들을 위해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고 고백했다. 현역시절 국보로, 무등산 폭격기로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는데,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전임감독이 되고도 국회로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버림받은 얘기는 불과 1년 전이라 더 잔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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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통털어 가장 아픈 시기였을 지난해 10월.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국가대표 전임감독직을 사임하던 순간.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선동열은 “나는 국보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주니치 시절 등에 꽂힌 태극기의 무게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철저한 자기 성찰은 수 많은 반성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한국 야구를 향한 제언은 그의 패스트볼처럼 묵직하고 슬라이더처럼 예리하다. 가족에게 보내는 반성문 또한 스스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을 등에 업고 한국 최고의 투수가 됐는지에 대한 고마움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게 선동열은 반백년 야구인생을 한 번 정리했다. 그는 책을 통해 “멈추지 않고 또 한 걸음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9회말 2사 만루 위기를 막아내고 곧바로 다음 경기에 선발등판하는 투수처럼.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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