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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의 후회 "위건에서 돌아온 것, 내 인생 최대 실수"[위크엔드인터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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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가 서울 청담동 저스트풋볼아카데미에서 본지와 만나 인터뷰한 후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정다워기자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조원희(37)는 한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를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선수다.

지난해를 끝으로 축구화를 벗은 조원희의 축구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K리그(울산 광주상무 수원 경남 서울이랜드)와 일본(오미야), 중국(광저우헝다 우한), 그리고 잉글랜드(위건) 등 총 9개 구단을 오가며 동.서양 축구를 두루 겪었다. 특히 2009년 프리미어리그 위건에 입단한 것은 한국 축구사에 신선한 사건이었다. 설기현을 비롯해 이천수, 박지성, 박주영 등 공격수나 공격이 가능한 미드필더들의 유럽 진출은 비교적 자주 일어났지만 수비형 미드필더 빅리그 진입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포지션 특성상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조원희가 남긴 발자국은 분명히 있다. 그는 최근 본지와 만나 자신의 축구인생을 되돌아봤다.

◇“나도 나름 주인공이었다, 월드컵 못 뛴 것은 아쉬워”

현역 시절 조원희는 주연보다 조연에 가까운 선수였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원래 화려한 포지션은 아니기 때문에 팀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국가대표팀은 물론이고 수원, 위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난 튀는 선수가 아니었다. 빛나는 선수들 뒤에서 묵묵하게 제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었다”라며 회상한 후 “그래도 나름 주인공이었다. 확실한 색깔이 있는 선수였다는 점에 스스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K리그 포항의 최영준을 보면 제 생각이 많이 난다. 요새는 과거에 비해 수비형 미드필더도 많은 조명을 받는다. 제 역할이 있었다고 본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아쉬움도 남는다. 바로 월드컵에서 뛰지 못한 것이다. 조원희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 갔지만 출전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는 23인 엔트리에서 빠졌다. 그는 “한 번이라도 뛰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축구선수로서 꼭 해봐야 할 일이었는데 지금도 아쉽다. 제 축구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파트너, 백지훈”

조원희는 화려한 공격형 미드필더를 지원하는 스타일이었다. 뒤에서 굳은 일을 담당하며 동료들이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조원희가 꼽는 최고의 파트너는 최근 은퇴를 선언한 백지훈이다. 두 사람은 수원의 황금기를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원희는 “지훈이는 솔직히 수비를 못했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혼이 많이 나기도 했다”라며 “저는 지훈이를 도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공격 재능이 워낙 특출났기 때문에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궁합이 정말 잘 맞았다. 저는 공을 잡으면 지훈이부터 찾았다. 공을 주면 알아서 잘 하더라. 정말 좋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최고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백지훈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원희형이 최고의 짝꿍이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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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가 서울 청담동 저스트풋볼아카데미에서 본지와 만나 인터뷰한 후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정다워기자


◇“위건에서 돌아오지 말았어야”

원래 조원희는 2009년 여름 프랑스 리그앙 AS모나코로 이적할 예정이었다. 박주영이 맹활약하던 시기였는데 조원희도 회장의 러브콜을 받아 모나코까지 갔다. 그런데 이적할 예정이었던 미국의 축구천재 프레디 아두가 팀을 떠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외국인 쿼터가 빠지지 않는 바람에 자리가 사라졌다. 결국 모나코에서 7주를 보내다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조원희는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훈련을 함께했는데 내가 정말 잘했다. 계약이 안 돼 당황스러웠다. 마침 유럽 에이전트가 날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있던 위건에 추천했고 테스트를 받게 됐다”라고 말했다. 불안감 속에 위건으로 떠난 조원희는 한 눈에 브루스 감독을 사로 잡았다. 그는 “나 때문에 11대11 테스트 매치를 했다. 굉장히 긴장하고 경기에 들어갔는데 내가 2골을 넣었다. 감독이 바로 경기를 끝내더라. 그러더니 등번호를 선택하라고 하더라. 바로 계약이 이뤄졌고, 노동허가서도 나와 프리미어리거가 됐다”라는 당시 상황을 얘기했다. 적응은 쉽지 않았다. 유럽 생활은 처음이었던 조원희는 “힘들었다. 노력했어야 하는데 불평만 많아졌다.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박)지성이 형이 많이 도와줬지만 스스로 힘들어 포기해야 했다”라고 털어놨다.

마침 차범근 당시 수원 감독이 2010년 위건까지 찾아와 조원희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조원희는 “정말 감사했다. 힘든데 손을 내밀어주시니 갈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그런데 그 선택은 제 인생 최대 실수라고 본다. 오지 말았어야 했다. 더 도전하고 부딪혔어야 했다. 그때 새로 부임한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현 벨기에) 감독과 정말 잘 맞았다. 그도 저를 쓰겠다고 했다. 절대 가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믿지 못했다. 후회되는 결정이다. 지금도 마르티네스 감독은 꼭 다시 만나고 싶다”라며 유럽에서의 생활을 마감한 것에 대한 아쉬움 마음을 밝혔다.

◇“해설 재미있어, 좋은 지도자 되고 싶다”

조원희는 최근 K리그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현영민, 김재성 등 은퇴한 동료들처럼 TV를 통해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조원희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 조금 안정을 찾았다. 이제 편해진 것 같다”라며 웃은 후 “제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다. 저는 딱 틀에 짜여진 해설보다는 저만의 색깔로 나가고 싶다. 이상윤 해설위원처럼 적당히 유머도 섞어 편하게 다가가고 싶다”라는 바람을 얘기했다. 시행착오도 있다. 워낙 예민한 게 K리그 해설이라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조원희는 “실제로 SNS로 연락이 오더라. 그래서 제가 잘 설명드렸다. 그랬더니 이해하시고 응원해주시더라”라며 “해설을 하다 보면 어떤 분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제가 최대한 그런 부분은 줄여야 한다.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조원희는 은퇴 후 착실하게 지도자 수업도 받고 있다. 조원희는 “제가 얼마 전 지도자 교육을 들어갔는데 어떤 강사 분께서 저에게 좋은 지도자가 될 자질이 있다고 칭찬해주셨다”라는 일화를 꺼냈다. 그는 “돌아보면 저는 늘 감독의 사랑을 받았다. 괜한 이유가 아닐 것이다. 저는 팀을 위해 저를 희생하는 스타일이었다. 나중에 지도자가 된다면 선수 시절처럼 똑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제 욕심이 아니라 팀과 선수를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전술, 전략적인 부분도 중요하겠지만 선수가 가진 능력을 100% 꺼낼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라는 바람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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