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 / 블락비 멤버 박경 SNS글 파문 / 김간지 “앨범 내자 브로커 접근” / “나도 제안 받았다” 폭로 잇따라 / 해외에 서버 두고 음성적 활동 / 업계 인사들 “검은손 분명 존재” / “음원 경쟁 부추기는 현실 문제” / 차트 중심 시스템 개선 목소리
가요계가 다시 음원 순위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보이그룹 블락비 멤버 박경(사진)이 지난달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6개팀의 실명을 언급하며 “OO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는 글을 올리면서 의혹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명 가수의 선전을 ‘사재기’를 통한 결과로 매도하는 것을 경계하는 한편 차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고질적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재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3년 SM·YG·JYP엔터테인먼트와 스타제국은 음원 조작행위를 조사해달라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기도 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2015년에도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특정 가수에게만 ‘팬 맺기’를 한 동일 패턴 아이디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던 ‘음원 추천제’가 폐지되기도 했으나 조작 논란을 일으킨 주체가 처벌되는 일은 없었다.
지난해 닐로의 ‘지나오다’와 숀의 ‘웨이 백 홈(Way back Home)’이 유명 아이돌의 신곡들을 제치고 장기간 정상을 밟으면서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련 의혹 조사에 나섰지만 지난 2월 “사재기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음원 순위 조작 논란은 ‘음모론’에 불과한 것일까. 가요계 관계자들은 업계에 ‘검은손’은 분명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사재기 업체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활동하는 등 음성적인 데다 수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어 이들의 실체를 포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블락비 박경. |
가요계에 따르면 사재기 업체는 1억원에 1만개 아이디로 특정 음원의 스트리밍 수를 늘려 순위를 끌어올리는 방식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1개 휴대전화 또는 PC로 30~50개 아이디를 제어하는 식으로 추정된다.
다른 가수들도 브로커에게 사재기 제안을 받았다며 폭로에 가세하고 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김간지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작년에 앨범을 냈을 때 브로커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수익을 8대 2로 나누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성시경도 라디오에 출연해 “사재기 업체에서 제목을 바꿔라, 전주를 없애라 등 관여를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고, 딘딘도 SNS에 “(사재기에 대해) 내 귀로 듣고 내 눈으로 봤다”고 밝혔다.
마미손은 지난달 26일 신곡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에서 “유튜브 조회수 페북으로 가서 돈 써야지”, “기계를 어떻게 이기라는 말이냐” 등의 가사로 현실을 꼬집었다.
의혹이 이어지자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8월 콘텐츠공정상생센터에 신고 창구를 열었다. 음악산업 종사자가 증빙자료와 함께 신고하면 음원사이트 업체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하고 행정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보이그룹 블락비 멤버 박경이 지난달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 게시글에 언급된 6개 팀은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하며 법적대응에 나섰다. 트위터 캡처 |
그러나 음원 이용자의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이상 패턴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비교할 만한 데이터가 축적돼야 해 당장 사재기를 근절하기는 쉽지 않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합리적 의심에 의해 논의가 이뤄지다 보니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어려움이 있다”며 “제보나 신고의 구체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요계에서는 차트 중심의 음원 시장에 대한 자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윤종신은 SNS에 “차트는 현상의 반영인데 차트가 현상을 만드니 어떻게든 차트에 올리는 게 목표가 된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상당수가 무심코 톱100 곡들을 전체 재생하는 이용 습관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트에만 진입하면 장기간 인기와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음원 경쟁을 과도하게 부추기고 외부 자극에 쉽사리 요동치는 실시간 차트를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미국 빌보드 차트는 주간 단위로 데이터를 집계하고 있으며, 아이튠스는 일간 단위 차트를 운영한다. 아울러 세계적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은 차트 대신 취향에 따른 추천 음악을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의혹을 단순한 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업계 인사들의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이번 박경의 발언을 계기로 사재기 의혹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계자 처벌은 물론 과도한 영향력을 가진 실시간 차트의 존폐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간이나 주간 단위로 차트를 운영하거나 큐레이션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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