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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알바도 뛰고 모델도 했지만… 난, 바스켓에 미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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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원주 DB의 루키 김훈

연세대 진학 후 슬럼프로 공 놓고 접시닦기·서빙·패션모델 등 방황

농구 그리워 3대3 대표로 뛰다가 올해 일반인 신분으로 프로 데뷔

35점으로 신인 중 최다득점 질주

'농구선수 김훈'이라고 하면 대부분 팬은 1990년대 연세대 전성기를 이끈 '스마일 슈터' 김훈(46)을 떠올린다. 문경은·이상민·우지원·서장훈과 함께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며 1994년 농구대잔치 정상에 올랐던 김훈은 현재 유소년 농구 교실을 운영 중이다.

프로농구 원주 DB의 루키 김훈(23)은 이름이 같은 선배와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연세대 선수일 때 선배님을 뵌 적이 있어요. 선배님이 '너도 김훈이야? 잘해서 좋은 곳에서 만나자'고 하셨죠. 이제는 DB의 김훈을 알릴 차례입니다. '슛 하면 김훈이다'란 말을 듣고 싶어요."

조선일보

김훈은 "3대3 농구 국가대표 시절 210㎝가 넘는 선수 앞에서 슛을 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며 "다양한 경험을 한 덕분에 농구가 더욱 소중해졌다"고 했다. 김훈이 원주 DB 체육관에서 공을 들고 포효하는 모습. /사진=장련성 기자,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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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삼성전은 신인 김훈의 존재를 농구 팬들에게 널리 알린 경기였다. 3점슛 5개를 포함해 이번 시즌 신인 최다 득점인 17점을 올렸다.

최근 원주 팀 숙소에서 만난 그는 "신인상은 정말 탐이 난다"며 "먼 길을 돌아온 만큼 더 간절하다"고 했다. 김훈은 지난달 열린 2019 KBL(한국농구연맹) 신인 드래프트에서 유일하게 일반인 신분으로 지명을 받았다. 연세대 휴학 중인 그는 전체 15순위로 DB 유니폼을 입었다.

연세대 '15학번'인 김훈은 1학년 때부터 준주전급으로 활약한 기대주였다. 하지만 2학년 들어 극도의 슬럼프가 찾아왔고, 밝히기 어렵다는 개인 사정까지 겹치며 농구부를 나왔다. 가족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아버지는 그동안 아들이 농구로 받았던 상패를 모두 내다버렸다.

"운동을 그만두고 '알바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뷔페식당에서 반년 동안 접시를 닦고 서빙을 했어요. 발레파킹도 하고, 공사판에서 시멘트도 날랐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구나 새삼 느꼈죠."

그러다 우연히 간 패션쇼에서 마음을 빼앗겼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털어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근육질 농구형 몸매를 깡마른 모델형 몸매로 바꾸려고 95㎏에서 69㎏까지 체중을 줄였다. 성실한 태도로 아카데미를 수료했을 땐 모범상을 받았다.

"모델로 길게 활동하진 못했지만, 무언가 목표를 이루려고 열정을 다한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농구가 다시 그리워지더라고요." 지인의 소개로 농구 예능 프로그램 '리바운드'에 출연했고, 3대3 농구에 입문해 23세 이하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농구가 다시 재밌어진 그에게 작년 11월 KBL 신인 드래프트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3대3 농구에서 인연을 맺은 강바일(삼성)을 응원하려고 찾은 드래프트장에서 김훈은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새 유니폼을 받아든 선수들을 축하해준 뒤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봤는데 잔뜩 차려입은 저 자신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더라고요. 1년 뒤엔 내가 저 자리에 서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김훈은 하루도 쉬지 않고 농구에 매달렸다. "올해 드래프트장에서 제 이름이 안 불릴까 봐 엄청나게 떨었어요. 다행히 이상범 감독님이 절 선택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보답해야죠."

김훈은 당시 자신보다 이름이 먼저 불린 14명을 제치고 올 시즌 신인 중 가장 많은 득점(35점)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여전히 높다. 그는 10일 삼성전에선 7분을 뛰고 무득점에 그쳤다.

프로 무대에서 성과를 내 주전으로 발돋움하려면 슛 정확도를 더 높여야 한다. 그는 슛을 하루 800개에서 1000개씩 던진다. 틈날 때면 NBA(미 프로농구) 정상급 슈터인 클레이 톰프슨과 대니 그린, 카일 코버 등의 영상을 찾아본다. 연세대 재학 시절 최희암 전 감독이 놀러 와 자신을 보고는 "슛 폼이 너무 뻣뻣해. 더 간결해야지"라고 조언한 것도 잊지 않고 있다.

김훈의 좌우명은 '하루살이처럼 뛰되 하루살이처럼 살지는 말자'. 코트에선 모든 것을 쏟아붓지만, 한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자는 뜻이다. "팬들이 저에게 '미훈(미친 김훈)'이라고 하세요. 미친 듯이 슛을 넣는 그런 슈터가 되어 볼게요!"



[원주=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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