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경자년(庚子年) 첫 날, 묵은 걸 털어내고 희망 찬 새해를 맞자고 다짐했건만 마음 한켠에 펴지지 않는 주름 같은 게 남아 있어 신경이 거슬린다. 꼭 물먹은 피륙을 걸치고 있는 듯한 개운찮은 느낌이 드는 것은 새해의 기운보다 묵은해의 관성적 힘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아서다. 불길한 예감은 늘 그렇듯 들어맞는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비껴났으면 하는 게 간절한 바람이다.
묵은해의 관성적 힘이란 체육계를 들썩이게 한 엘리트체육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다. 지난해 한국 체육은 그야말로 혼돈,그 자체라고 할 만큼 시끄러웠다. 바람 잘 날이 하루도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터지는 사건과 사고는 차치하고서도 프레임을 짜놓고 접근하는 문제의식은 생산적인 담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안타까움을 안겨줬다. 엘리트체육과 생애체육의 가치는 충돌하는 게 아닌 양단불락(兩端不落)의 상생의 가치임에도 둘 중 하나는 포기되어야 시대에 부합한다고 보는 편견은 ‘열린 사회의 적’으로 여겨질 만큼 천박했다. 압축성장 시대의 스포츠 국가주의(state amateurism)의 폐해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드러난 약점을 침소봉대해 마치 이를 전부인 양 판단하는 태도는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체육이 엘리트체육과 반엘리트체육의 진영으로 나뉘어져 반목과 갈등으로 으르렁대기는 처음이다. 한국의 체육 생태계가 다양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체육을 권력의 쟁투로 여기는 세력들의 그릇된 욕심도 첨예화된 체육 갈등의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다. 체육을 권력의 쟁투로 여기면 필연적으로 엘리트체육 대 반엘리트체육의 진영으로 나뉘어질 수밖에 없는 게 한국 체육의 서글픈 현실이다. 과학적 분석과 합리적 판단이 배제된 채 진영의 논리로 치고받는 최근 한국 체육의 민낯은 바로 이러한 체육의 사유화 과정에서 빚어졌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얽히고설킨 중층적 모순구조의 한국 체육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고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구랍 19일 취임한 최윤희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제 2차관의 어깨가 무겁다. 워낙 복잡한 현안이 많거니와 맺힌 매듭 또한 워낙 견고해 난국을 돌파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체육단체 통합이후 혼돈의 시대로 접어든 한국 체육은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정치와 관료가 체육을 견인하는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새로운 관치체육의 질긴 사슬은 끊어내는 게 마땅하지만 최 차관에게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는 마음을 영 불안하게 만든다.
한국 체육사상 최악의 정책은 지난 2016년 단행한 체육단체 통합을 꼽고 싶다. 그 이후 한국 체육은 격랑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갔다. 당시 대한체육회 수장이 유도 국가대표 출신인 김정행 회장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하다. 체육계의 자존심을 걸고 당당히 맞서야 할 회장이 꼬리를 내리면서 치욕적인 도장을 찍었고,그걸 신호탄으로 새로운 관치체육이 시작됐다. 김 회장은 낙마가 예상됐지만 비굴하게 살아 남았다. 시계추를 돌려 당시 문체부 고위 관료가 사석에서 들려준 말을 떠올리면 지금도 섬뜩하다.
“철학도 능력도 없는 인물을 굳이 낙마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경기인 출신이라는 명분을 십분 활용하면서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게 오히려 더 유리하잖아요.”
최 차관 역시 그런 불편한 흑역사에 이용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문체부는 새해 들어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안을 관철시키려 용심을 쓸 게 뻔하다. 경기인 출신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을 꼭두각시로 삼아 체육인들이 그토록 반대한 통합을 관철했던 슬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최 차관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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