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고(故) 남보원의 빈소.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원로 코미디언 남보원(본명 김덕용)이 지난 21일 세상을 떠난 가운데, 고인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이용근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사무총장은 한 매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남보원 선생님이 6개월 전에도 감기로 입원한 적이 있고, 이번에 5일 전에 입원했는데 결국 영면에 드셨다”며 “우리나라 원맨쇼 코미디의 일인자였으며, 후배들에는 자상한 선배였다.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셨는데 비보를 접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故) 남보원을 조문하는 엄용수 대한민국방송코미디협회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대한민국방송코미디협회장인 코미디언 엄용수는 “남보원 선생님은 우리나라 야전쇼의 1인자다. 실제로 관객들을 만나 웃기는 데에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 동물 소리, 악기 소리, 기계 소리 등 못 내는 소리가 없어서 원고 없이 올라가도 즉흥으로 코미디쇼를 하셨다. 전천후 원맨쇼의 넘버원, 남보원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선생님이 무대를 너무 좋아하셨다. 사람을 웃기는 재미에, 자부심에 무대에 오르면 내려올 줄 몰랐다. 사람을 웃기겠다는 집념이 강하셨다. 사람을 웃기는 걸로 봉사를 하려는 천생 코미디언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공연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관객들을 찾아가기도 하셨다. 그걸 우리와 10여 년 정도 했는데, 항상 우리에게 간식을 챙겨주는 정 많은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코미디언 남희석은 자신의 SNS에 남보원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진짜 코미디언. 선생님 뵙고 반성 많이 했다. 감사하다”고 애도했다.
코미디언 남희석(왼쪽)과 고(故) 남보원의 생전 모습. /사진=남희석 인스타그램 |
김선근 KBS 아나운서도 자신의 SNS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그는 “누군가 ‘롤모델이 누구냐’라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늘 남보원 선생님이었다”며 “어릴 적 ‘테레비’에서 보았던 선생님의 기차소리와 뱃고동 소리는 원맨쇼라는 존재를 알게했고 방송이란 꿈을 꾸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더 열심히 노력해서 조금 더 나아진 방송인이 되면 선생님과 꼭 한 번 함께 출연해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선생님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이젠 저 혼자만의 속앓이가 되고 말았다”며 슬퍼했다. 이어 “선생님, 저를 만난 적도 없으시고 알지도 못하시겠지만 저에겐 선생님이 롤모델이고 닮고 싶은 어른”이라며 “천국에서의 원맨쇼도 선생님답게 유쾌하고 즐거울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고인은 폐렴으로 지난 21일 오후 3시 40분께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별세했다. 1936년생인 고인은 북한 평안남도 순천 출신의 실향민이다. 1951년 1·4후퇴 대 가족과 함께 월남했으며, 1957년 동국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후 1960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1963년 영화인협회가 주최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로 입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게 됐다. 그는 영화 ‘단벌 신사’ ‘오부자’ ‘공수특공대작전’ 등에도 출연하는 등 극장부터 안방극장까지 무대를 가리지 않고 한국 코미디계 대표 주자로 활동하며 오랜 전성기를 누렸다.
고인은 어떤 사람, 사물이든 한 번 들으면 그 소리를 그대로 복사해내는 성대모사 능력과 구수한 평안도 사투리를 바탕으로 한 원맨쇼로 사랑 받았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3일 오전이다. 장지는 남한산성에 있는 가족묘다. 장례는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으로 치러진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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