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전교 1등도 '열정 슛'… 즐기다보니 전국 최강팀 됐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걸스 두 잇] [2] 하계중학교 핸드볼팀

4년연속 서울시 대회 여중부 1등

다들 핸드볼과 무관한 진로 꿈꿔… 전교 10등 이내 학생들 수두룩

"공부에 운동이 방해되지 않아요"

전국에서 핸드볼을 가장 잘하는 여중생들이 서울 노원구 하계중학교에 있다. 2016년부터 4년 연속 서울시 대회 여중부 1등을 했다. 2018년까지 3년간 전국대회 3연패도 달성했다. '선수' 중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있지만, 다들 핸드볼과 무관한 진로를 꿈꾼다. 남녀공학이라 핸드볼팀에 남자 학생들도 속해 있다. 기술 훈련 등은 남녀 학생이 함께하고, 연습 경기와 대회 출전은 따로 한다.

조선일보

서울 하계중 핸드볼팀 여학생들이 4일 오후 학교 체육관에서 연습 경기를 하는 모습. 학생들은 "연습하다 보면 학원 갈 시간이 되는 게 싫을 정도로 재밌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자 팀원 19명 중엔 전교 1등을 포함해 10등 안에 드는 우등생이 여럿이다. 이들은 "공부에 운동이 방해되지 않아요"라고 한다. 한국에서 비인기 종목으로 통하는 핸드볼에 여중생들이 빠진 이유는 빠른 공격 전개와 강한 슈팅 때문이었다. "농구는 림 안으로 정확히 공을 넣어야 하지만, 핸드볼은 공을 세게 던지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오민서·17) "말하지 않아도 서로 합이 잘 맞을 때 쾌감을 느껴요."(이서원·16) 정낙영 교장은 "핸드볼을 하면서 학생들이 체력을 기를 뿐 아니라 교사, 친구들과 소통도 활발해졌다"고 했다.

◇체육 선생님이 쏘아 올린 작은 공

하계중 핸드볼팀의 승승장구 스토리는 2015년 체육 교사 유신열(55)씨가 부임하며 시작됐다. 그는 앞서 근무했던 신상중에서 핸드볼을 처음 접했다. 애초에 팀을 만들었던 다른 교사가 전근 가는 바람에 유씨가 얼떨결에 팀을 맡긴 했는데, 이 스포츠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첫 대회에서 15점 차 패배를 당한 뒤 '또 이렇게 질 순 없다'는 오기가 생겨 대한핸드볼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협회가 강사로 파견한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남은영씨가 남자부를 지도했다. 남자부가 전국대회 우승을 거머쥐자 여학생들도 핸드볼을 배우고 싶다며 유씨를 찾아왔다. 유씨는 하계중으로 옮기고 나서 다시 협회 지원을 받아 팀을 꾸렸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윤현경씨가 강사로 나섰다. 하계중 여자팀 선수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유튜브 영상으로 핸드볼 공부를 한다.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한국 대표팀 에이스 류은희, SK코리아리그 선두팀 부산시설공단을 이끄는 권한나의 팬이 많다. 강사 윤씨는 "아이들이 프로·실업 선수가 구사하는 스핀슛 같은 기술을 유튜브에서 보고 방법을 묻는다"며 "아이들이 운동을 즐기니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핸드볼 통해 얻은 교훈

하계중을 졸업한 여학생 대다수는 길 건너 혜성여고에 진학한다. 이 학교엔 핸드볼팀이 없었다. 하계중 졸업생들이 혜성여고 교사들을 찾아가 "공부 열심히 할 테니 핸드볼팀 만들어달라"고 졸라 2018년도에 신설됐다. 체육관이 지어지기 전이었고, 골대도 없이 맨땅에서 연습했는데 그해 서울시 대회 여고부 정상에 올랐다. 혜성여고 팀은 지난해 서울시 대회 결승에선 1점 차로 졌다. 하계중 출신으로 혜성여고 핸드볼팀에서 활약 중인 하귀주(18)양은 "우승 이후 자만해서 연습을 덜 한 것 같다. 방심하면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운동하며 배운다"고 했다.

하계중에 핸드볼을 꽃피운 교사 유씨는 새 학기에 다른 학교로 떠난다. 제자들은 이달 초 연습을 마치고 미리 준비한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전근을 앞둔 선생님에게 핸드볼팀 졸업생·재학생 선후배들이 마련한 깜짝 파티였다. "이 녀석들아, 이게 뭐야!" 웃음소리가 체육관을 채웠다.

[김상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