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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비욘세처럼 영감을 주는 가수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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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키디비, 법정싸움 딛고 컴백

경향신문

새 싱글 <사이코(psycho)>로 돌아온 여성 래퍼 키디비는 지난 14일 경향신문과 만나 “음악을 못했던 지난 2년의 시간을 <1718>이란 제목의 앨범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뉴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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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가 되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가수잖아요. 저 또한 대중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래퍼 키디비(30·본명 김보미)의 꿈은 비욘세였다. 스스로를 ‘강강약약’(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하다)이라 소개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며, 피해자에게 더 강한 잣대를 들이미는 세상에서 “여리고 정 많은 사람”으로 자라난 그였다. ‘약한’ 자신을 위해,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더 강하고 훌륭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김보미가 아닌 ‘키디비’는 그렇게 탄생했다. 2015년 엠넷 <언프리티 랩스타2>에서 강렬한 랩과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았던, 2017년 랩 가사와 퍼포먼스로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여 모욕한 래퍼 블랙넛을 고소한 바로 그 키디비 이야기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블랙넛의 모욕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디스(diss)’가 이루어지는 힙합 음악에서도 특정인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을 쓰면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가 최종 확정된 순간이었다. “사회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며 고소 동기를 밝힌 키디비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심각한 불안장애와 대인기피증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최근 새 싱글 <사이코(psycho)>로 돌아온 키디비를 지난 14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음악을 못했던 지난 2년의 시간을 <1718>이란 제목의 앨범으로 만들고 있어요. 다시는 안 볼 일기장을 만드는 거죠.” 지난해 6월 발매한 EP <1718[SALEM]>의 수록곡 등과 함께 앨범 <1718>에 실릴 예정인 ‘사이코’는 과거 <언프리티 랩스타2> 등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래핑보다는 몽롱하고 나른한 보컬 실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노래에 맞춰 춤을 췄대요(웃음). 그만큼 음악이 좋았어요. 랩만큼이나 노래도 즐겨 했죠. 다만 랩으로 더 칭찬받는 것 같아서 래퍼로 데뷔한 것뿐이에요.”

열여섯 살 때, 언더 힙합을 들으며 가사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힙합 크루 오빠들 만나러, 경기 시흥에서 서울 이태원까지 꼬박 4시간씩 걸려 가곤 했죠. 금세 실력을 인정받았고, 데뷔 앨범도 수월하게 냈던 것 같아요.”

국내 힙합 첫 여성 아티스트 크루 결성…‘여성의 삶’ 꾸준히 노래

‘약한’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 위해 더 강해지고 싶었던 그


2012년 첫 앨범 <아임 허(I’m Her)>를 내고 활동에 나섰지만 어딘가 결핍이 느껴졌다. 2013년 국내 힙합 최초의 여성 아티스트 크루 AMRT(Amourette)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동료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늘 관심이 많았죠. 알음알음 알게 된 후디, 니아, 세리와 함께 우리끼리 ‘으쌰으쌰’ 해보자는 마음으로 결성했어요. 전례가 없으니 ‘역사의 깃발을 꽂아보자’는 생각에 서둘러 진행했죠.”

그의 삶은 곧 음악이 됐다. <언프리티 랩스타2> 경연곡 ‘RRF(론다 로지 Flow)’부터 2016년 발표한 ‘두잉 굿(Doin’ Good)’ ‘노바디스 퍼펙트(Nobody’s Perfect)’까지 그는 여성들이 겪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이 곡들을 발표한 뒤, 다양한 프레임에 씌워져 있는 분들이 ‘큰 위로가 됐다. 울었다’는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셨어요. 그 이후로 제 방향은 한층 확실해졌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아티스트가 돼야겠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닌 것만 같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성적 모욕을 당했고, 가해자의 팬들은 키디비에게 매일 욕설이 담긴 메시지로 2차 가해를 일삼았다. “피해자들이 겪는 일들에 대해 모두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쓴 가사가 있어요. ‘성폭행 피해자처럼 입을 꼭 다물고 마네. 죄진 것 없는데 소문이 돌아다녔다 하네.’ 저 역시 고소 이후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후회 안 해요. 인간으로서 꼭 해야 할 선택이었고, 사회의 잘못된 부분들을 더 많이 알게 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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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동굴 빠져나왔으니 더 많은 분께 감동 주도록 노력할 것”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고 어렵게 다시 음악으로 돌아온 키디비. 그는 더욱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음악 그만둘 생각요? 너무 많이 했죠. 그렇지만 제게 위로를 준 것도, 감정을 만들어준 것도 다 음악인 걸요. 소송을 진행하면서 너무 지쳤어요. 지나고 나도 ‘그때의 경험을 거름 삼아 좋은 음악을 하겠다’는 흔한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쳤죠. 하지만 결국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예술을 하는 사람이에요. 깊고 어두운 동굴에서 빠져나왔으니 앞으로 저의 생각, 저의 감정을 노래하며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드리고 싶어요. 더욱 노력하는 예술인이 되겠습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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